꽃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술 한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봄밤
지구여 봄밤이다 흔들리지 마라 꽃상여처럼 너울너울 길 가지 마라 새들이 꿈을 꾸며 잠들고 있다
지구여 봄밤이다 흐느끼지 마라 상주들도 상여꾼도 곡을 멈춰라 새들이 알을 낳고 잠들고 있다
길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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