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역시
시로 적은 것 말고는
하잘것없다
추려봐도
부스러기뿐이다
구태여
적지 않는다

이 시집을 내기까지
걱정하고
손 잡아준 분들이 있다
따로
챙겨준 분이 있다
사람의 정이
이리
가슴 저리다

2007년 1월
위선환 - P-1

새의 길


새가 어떻게 날아오르는지 어떻게
눈 덮인 들녘을 건너가는지 놀빛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지
짐작했겠지만
공중에서 거침이 없는 새는 오직 날 뿐 따로
길을 내지 않는다
엉뚱하게도
인적 끊긴 들길을 오래 걸은
눈자위가 마른 사람이 손가락을 세워서
저만치
빈 공중의 너머에 걸려 있는
날갯깃도 몇 개 떨어져 있는 새의 길을
가리켜 보이지만 - P9

협착


문 닫은 지 여러 해 되어서 폐철더미가 다 된 
삼화철공소 묵은 담장 그늘이 담장 아래로 길게 난 골목길을 거의 덮어버려서 남은 길의 폭이 반 뼘도 안 된다. 몸을 잔뜩 비틀어서 어깨부터 들이민다 해도 당장 몸을 끼워 넣는 것부터가 어렵겠다. 저 골목길을 어떻게 빠져나가나…… 참으로 옹색한 협착이 있다. - P19

화석


지층이 뚝, 잘려나간 해남반도 끝에다 귀를 가져다대면 느리게 길게 날개 젓는 소리가 들린다. 공룡 여러 마리가 해안에 깔린 너른 바위 바닥에 발목이 빠지면서 물 고인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때는 새가 돌 속을 날았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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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에서는 늦게까지, 소지감이 영가를 위하여 목탁을 치며 지장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백골이 되어 돌아온 지난날의 동지, 아니친구,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친구일 수도 없었고 동지일 수도 없었던 이상한 만남으로 이루어졌던 교류를 생각하면서 소지감은 목탁을 두드리고 독경을 하는 것이었다. 진보적 사회주의자였던 이종이범준, 그가 진주의 형평사운동에 가담하면서 동지가 된 송관수, 그 인연으로 하여 알게 된 송관수와 소지감, 살아온 역정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생리적으로도 친구가 될 수 없었으며 더더구나 동지도 될 수 없었던 사이, 그런 그들의 교류는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민족의 동질감이었을 것이다. 운동권 밖에 있었던 소지감이 십여 년 전 군자금 강탈 사건에 미약하나마 가담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민족의 동질감 때문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소지감이 산사람이 된 데는 해도사의 존재도 컸지만 송관수와의 만남이 무관하다 할 수 없고 삭발하고 가사 걸친 중으로 변신한 것에는 군자금 강탈 사건의 영향이 컸던 것을 부인 못한다. 소지감은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토록 긴 방랑, 그토록 깊은 고뇌를 끝내고 젊은 날입산한 일이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와 지금 목탁을 치고 있는 것이다. 소지감의 마음은 비통하지 않았다. 평화스러웠다. 소지감의 마음은 서글프고 쓸쓸하지가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도 송관수를 위해서도 어딘지 모를 뿌듯함이 있었고 교류가 아닌 합류(合流)를 느끼는 것이다. - P145

강쇠가 어찌 그들 마음을 몰랐겠는가. 하루 이틀 사귄 사이도 아니요 십여 년을 산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처지, 신분의 차이라든지 식자유무 따위는 벌써 옛날에헐어버린 담이었다. 그것은 강쇠가 인간으로서 그릇이 크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청춘을 다 바쳐 그림자같이 따라다녔던 김환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강쇠의 판단력, 사고의 깊이는 본래의 소박함, 우직을 능가했고 한 우두머리의 풍모를 엿볼 수 있어 결코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들의 노는 푼수가 그러했고 유독 오늘 밤 강쇠 비위를 긁은 것은 말하자면 참담한 일에대한 살풀이 같은 것이라 할까. 송관수의 죽음은 사실 죽음 그 이상의 의미로서 이들을 응축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술잔을 메어치고 강쇠는 밖으로 나왔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무작정 걷는데 가슴이 타는 듯했다. 입속이 바싹 말라서 혀가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발에 익은 산길을 한참 지나서 개울가까지 온 강쇠는 엉덩이를 치켜들고 물을 굴컥컥 들이켠다. 손바닥으로 입가를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별안간 중천에 떠 있는 서늘한 달이 슬렁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마치 밤바다에 떠 있는 차디찬 해파리처럼. 동시에 산기운이 싸! 하고 전신을 감싸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한기가 든다. 그러나 얼굴은 뜨거웠다. 목에서는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개울가에 있는 썩은 등걸나무에 걸터앉은 강쇠는 옷 앞자락을 끌어당겨 얼굴을 문질러본다.
‘다아 끝장난 기라. 끝장이 났어‘ - P153

도솔암으로 돌아온 일행은 철마당 여기저기 
흩어져 우두커니 서있다가 여자들과 안서방 짝쇠는 집으로 올라갔고 나머지 다섯 명의 사내들은 절방에 모여 앉았다.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시종 말이 없었던 영광이 호주머니 속에서 접은 봉투 하나를 꺼내었다.
"먼저, 이것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저씨."
봉투를 강쇠에게 건네주려 하자
"아저씨라니, 사돈어른이라 해야지."
해도사가 나무라듯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저씨믄 우떻고 아부지믄 우떻노. 괜찮다, 한데 이기이 멋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홍이형님한테 남긴 유서입니다."
"그래?"
언해는 겨우 해독하는 강쇠가 봉투 속에 든 것을 꺼내었다.


홍이 보아라. 내가 아무래도 심상찮은 병에 걸린 것 같다. 신경으로 돌아가자니 심상찮은 병 때문에 어러불 것 같고 가다가 죽어도 곤란한께, 아무튼지 만일을 생각해서 한자 적기로 했다. 자손한테 물리줄 전답 한때기 없는 처지에 무신 놈의 유서인가 할지 모리겠다마는 이대로 내가 가믄 남은 사람들 가심에 한을 심을 것 같애서…… 와 이렇게 맴이 담담한지 참 내가 생각해도이상타.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가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장돌 - P158

뱅이로 장바닥을 돌믄서 투전판이나 기웃거릴 놈이, 하늘 밑의 혈혈단신 계집이나 어디 하나 얻어걸리겠나. 그렇다믄 많이 출세한 거 아니가. 새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 넘한테 큰 실수 안 하고 이렇기 가는 것도 다행 아니겠나. 이것은 진정이다. 여한이 없다. 자식들은 제 갈길 갈 것이고 다만 내 모친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자식된 도리, 시신이 어느 산천에 묻혔는가 모리고 가는 것이 나한테 남은 응어리다. 그라고 내 내자가 불쌍할 뿐이다. 그러나 본시 심성이 착하고 가는베(布) 재놓은 듯키 말이 없는 사람이니 크게 남한테 폐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사람을 당부한다고 전해주라. 홍이 니한테는 신세 많이 졌다. 고향 산천이 보고 싶고 작별하고 싶은 얼굴도 많다마는 어차피 사람은 혼자 가는 거 아니겠나. - P159

"그것도 마 괜찮겄십니다. 당분간 절에 기시믄서 관수 명복도 빌고 그러는 기이 신양에 좋을 깁니다. 너거들도 너무 우기지 마라.
어무이가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기라."
강쇠는 단을 내리듯 말했다. 영광과 영선은 서로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자식들과는 함께 살지 않으려 하는가, 영선이나영광은 알고 있었다.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영선네 결심을. 어쩌면 그는 지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그의 출생의 멍에는 무겁고도 가혹한 것이었다.
영광은 산에서 이틀을 더 묵었다. 그러는 동안 매부 김휘와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고 산속을 헤매어 다니기도 했다.
산에 남은 영선네와 그곳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산을 떠날 때는 영선의 식구들과 함께였다. 그들도 통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화개까지 나와 강가에서 나룻배를 타고 하구(河口)를 향해 배가 내려갈 때
"처남 이거 받아두소."
하며 휘가 접은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통영 우리집 주소요."
영광은 그것을 받아 호주머니 속에 간직한다.
"오빠 꼭 한번 오이소. 우리 사는 것도 보고"
아이를 안고 옆에 있던 영선이 말했다.
"그래 갈께."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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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통상조약의 폐기와 영일회담의 결렬
그리고 국제연맹이사회의 중국 원조 결의안가결 등 일련의 국제 정세에서 일본 패망의 조짐이 날이 갈수록 짙어가는 1940년부터1945년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서울· 간도. 진주 · 일본 · 하동 등지를 무대로.
대하소설의 마지막 부()인 5부가펼쳐진다.
일본이 곧 패망하리라는 희망적 조짐을예 감하면서도, 또 그만큼 더 강도가 높아진 일본의 억압 아래 놓이게 된. 조선 내부의현실은 점점 더 암담해지기만 한다. 독립자금강탈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허탈과 무위에 빠진 ‘길상‘은 갑작스런 송관수의 죽음을 듣고 자신의 지나간 삶을 반추하며 뼈저린 통한에젖는다. 이를 계기로 몸담아 일하던 동학당모임을 해체하기에 이르며, 자신은 도솔암에서 원력(願力)을 모아 한 점의 관음탱화를그리게 된다. - P-1

드 유신체제가 빚어낸 숨막힐 듯 황량한 70년대의 풍경 속에서, 남편을 감옥에 뺏긴 딸을 둔 어머니, 그 소설가가 천길 벼랑 위에 선 듯, 혼신의 힘으로 펼쳐낸 『土地』의 세계, 우리는 간난한한국근대사를 자욱자욱 딛고 서희와 평사리농민들이 걸어간 그 곤고한 여행을 어떤간절함으로 동반해 왔던 것이다.
-元植 
인하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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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선옥 아주머닐 처음엔 자네 친어머님인 줄 알았지. 착하고 아름답고 그같이 천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위로 삼아 한 말이었으나 감정에 북받치는 홍이 분위기에서는 어설프기만 했다. 송장환은 당황했던 것이다. 어릴 적에는 적잖이 개구쟁이였던 홍이가 조선으로 나간 뒤 가정을 이루고 다시 용정촌으로 돌아왔을 때 점잖고, 여간하여 감정을 나타내지 않으며 신중한 사내로 변모된 것을 보았으며 그 후에도 자질구레한 가정사나 자기 개인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무너지듯 나약하고 섬세한 자기 내면을 들내보인 적은 처음이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생각해보면 나쁜 조건에서 태어난 제가 평생 쓰고도 남을 선물을 받은 거지요. 피도 살도 닿지 않는 분들께서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꾸밈없고 우러나는 그분들 애정은 시궁창에 떨어질 수도 있었던 저를 건져주셨지요 아주 어릴 적의 일입니다만 보따리 하나를 든 아저씨를 따라 해란강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사주는 사탕을 손에 쥐고서, 강가에 갔 - P24

을 때 아저씨는 절 보고 돌아서라 하더군요. 입은 옷을 빨려구 새옷으로 갈아입을 참이던가봐요. 하얀 광목옷이었던 것 같습니다. 옷을 갈아입은 아저씨는 신선같이 보였습니다. 씨꺼멓게 담배진에 절은 들쑥날쑥한 이빨에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어린 눈에 아주 고귀한 사람같이 보이더군요. 그분은 학이 날개를 펴듯 두 팔을 활짝들어올리고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해란강을 향해 새타령을 불렀습니다.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명창 뺨치게 좋은 소리꾼 아닙니까. 그 소리가 해란강 물결을 타고 멀리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광경을 저는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합니다. 순진무구(純眞無垢), 그때 일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와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뼈에 사무치는 한(恨)을 느끼게 됩니다.
아저씨의 외로움은 늘 그렇게 아름다웠습니다. 잘 웃고 만사를 익살로 넘기든 그분이 왜 그렇게 서러워 보이든지요. 다만 수집어할때만 우서웠습니다." - P25

"왜 그런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같았고 형님 같았고 친구같이 임우럽고 언제나 감싸주는 고향 같았습니다. 내가 죽거든 홍이 니가 묻어라, 하시더니 살아나 계신지, 소식을 전할 수 없는현실을 알면서도 마치 그쪽에서 소식을 끊기라도 한 것처럼 배신감을 느낄 때도,"
홍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송장환은 말없이 바라본다. 그 말들은 모두 홍이 자신의 외로움이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장례식에 나타난 것도 그 외로움 때문일 거라고 송장환은 생각한다.
"전에는 더러 건방진 생각을 하며 우쭐대기도 했지요. 오가는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제가 한다구요."
"그건 사실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의
 울타리였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불안하구 긴장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거든요. 요즘은 고립무원, 외토리가 된 것 같고 길을 가다가도 목덜미가 설렁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 P25

"그 기분은 알 만하다. 나도 요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 많은사람들이 빠져나갔거든."
송장환은 담배를 붙여문다.
"마치 쏘아버린 화살같이 떠난 사람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같고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도 자신도 없어지구요."
"희망은 있다. 자신을 가져도 돼. 다만 일본이 어떤 식으로 망하느냐 그게 문제다."
쏟아놓다시피 한 마음을 추스르듯 홍이는 송장환 술잔에 술을부었다. 몹시 계면쩍고 후회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스승이 아니었다면, 친구지간이라 해도 그런 내면적, 감성적 얘기를 홍이로서는 할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입지는 지금 절망과 희망의 양면을 지닌 날카로운 칼끝으로 볼 수 있는데, 자네 근심도 그런 것에 대한 예감일 게다."
- P26

"떠나기만 하고 화살같이 돌아오지 않는다. 우선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나 돌아와도 이미 활동 구역이 달라졌을 경우를 생각할 수 있고 또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일본군의 전선(戰線)확대 때문일 수도 있고, 보기에 따라 점령 지역이 넓어지면서 밀리어 달아나거나 잡혀서 죽는 확률도 높아진다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속사정은 판관이다. 점령 지역의 확대가 이번의 경우, 이기고 있는 전쟁이라 할 수 없거든. 일본 정부나 군부는 점령, 전과를 내세우며 군민을 교묘히 오도하고 있지만 실상 그들의 내부적 고민이야말로 각일각, 목을 죄는 느낌일 게다. 일본은 여태까지 전면전(全面) 장기전(長期戰)을 치른 일이 없었다. 역사상 한번, 임진왜란을 들 수 있지만 전면전 장기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실패한 게야.
일본은 이번 전쟁에서 속전속결, 국지전으로 결과가 날 것으로 믿으려 했지. 장개석(蔣介石)이든 모택동(毛澤東)에 의해서든 중국이통일되기 전에, 사실 서안사건(西安事件) 후 장개석이 공산당 토벌을 중지하고 항일로 돌아선 것과 중국 국민의 여론이 한결같이 항일로 굳게 뭉친 것은 일본에게 더 기다릴 수 없는 초조감을 안겨주 - P26

었고, 과거에는 물론 근자에 있는 만주사변 역시 속전속결, 국지전으로 계속 재미를 본 그 단꿈도 버릴 수 없었고, 때에 따라서 불안이나 불확실하다는 것이 결단력을 부추기고 자신(自信)을 부추기는경우가 있지. 결국 일본은 시기상조를 주장하는 신중파를 누르고 전쟁으로 건너뛴 건데, 돌아가신 권필응 선생님도 말씀하신 적이있지만 소위 남경(南京)의 대학살은 속전속결, 전략의 일환이었던거야. 중국인에게 극단적 공포심을 심어서 전의(戰意)를 잃게 하는것, 자국 병사에게는 추악한 본능의 짐승으로 만들어 구원을 잃은절망적, 발광적 용기로 내몰려는 것, 그게 모두 단기전 전략에 의한것으로 볼 수 있지. 일본이 그 얼마나 속전속결을 원했는지 짐작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어. 지구전론(持久戰論)을 발표한 모택동은 물론이고 전쟁의 시작부터 장개석은 장기전을 각오했으니까, 일본은 거대한 공룡에 물린 격이고 헤어날 수없는 늪에 빠진 거다.  - P27

그들은 이미 국가총동원령(國家總動員令)을선포했고 인원과 물자를 모두 전쟁에 투입한다는 것인데 인원과 물자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서 물리적으로 일본은 무너지기시작하는 거야. 시간은 힘을 소모하고 자리는 넓어지면 넓어질수록인원과 물자가 얇게 깔릴 수밖에 없고 성글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결국 녹아버리게 돼 있어. 엷어지고 성글어지고 힘이 빠진 곳을지금 팔로군(八路軍)이 뚫고 있는 게야. 장개석은 오히려 일본은 도외시하고 전쟁 후 중공에 대비하여 군사력 소모를 견제하고 있는 형편이며 국민당에서 이당활동제한변법(異黨活動制限辯法)을 내놓은 것만 보더라도 그간의 사정을 알 수 있지. 그러나 일본은 끝없는 높인 줄 알면서도 고통스런 행군을 아니 할 수 없게 돼 있다. 일본을 위해 중재에 나설 나라도 없고 전쟁 물자를 대주기는커녕팔아주는 곳도 없어. 작년에는 미국에서 미일통상조약(美日通商條約)을 폐기했고 영일회담(英日會談)은 결렬, 국제연맹 이사회(國際聯盟理事會)에서는 중국원조 결의안을 가결했고 뿐인가, 여태까지 소련은 무제한으로 중국을 원조해왔거든. 중국에서 손털고 철군하는것 이외 일본은 달리 방법이 없다. 그것은 패전을, 항복을 의미하는 - P27

거니까 높이든 지옥이든 갈 데까지 가보자, 한가닥 희망은 지금 구라파에서 독일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과 국공(國共)이 분열하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그러나 일본은 너무 깊이 물려버렸고바닥이 나버렸어. 문제는 우리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다."
송장환은 술을 마셨다. 홍이는 묵묵히 비어버린 술잔에 술을 채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깊은 이 밤에 멀리서 아슴푸레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 민족은 일본의 볼모다. 일본이 망하리라는 희망적 정세 앞에서 우리가 앞날을 어둡게 절망적으로 내다보는것은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소모될 것인가, 얼마나 살아남을 것인가, 해서 희망과 절망의 양면을 지닌 날카로운 칼끝에 우리가 서 있다고 말한 게야. 벌써 수많은 우리 동포가 각처로 끌려나가 고혈을 짜내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지원이지만 머지않아 징병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몰아낼 것이며 남경 학살 때도 그랬지만 여자들은 성(性)의 도구가 될 것이다. 일본은 조선 민족을 지옥까지 동반할 거야. 참으로 무슨 힘의 가호 없이는."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볼모가 된 조선 민족이 저들의 패망 과정에서 어떠한 환난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먹물 들고 의식 있는 사람이면 대개 해보는 걱정이다. 특히 만주 일대에서는. 그러나 홍이는 신경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날 밤의 얘기가 고약같이 눅진눅진 머릿속에 들어붙어 기분이 좋잖았고 송장환의 우울한 얼굴이 때때로 떠오르곤 했다. - P28

"이해해주십시오. 공연이 끝나도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으면 돌아오실 때까지 신경에 남아 있겠습니다. 약속하지요."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
"그리고 제가 왔다는 것, 집에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 이유가 뭣인가."
"어머니가 두렵습니다."
"어머니가 두려워?"
"네."
영광은 눈을 들어 달을 본다.
"그 어진 분이 어째 두렵나."
한동안 말이 없다가 두 손으로 머리를 긁듯이 쓸어넘기고 나서
"배신했지요...... 어머니를 말입니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 홍이는 큰 바위를 안고 넘어진 것 같았다. 진득진득 발이 빠지는 갯벌, 해질 무렵에 부는 바람 소리 같은 것이 심장을 휩쓸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로, 그것은 복병의 습격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61

‘그랬구나‘
그때 가족을 만나지 않고 그냥 가버렸을 때 홍이는 영광을 망나니가 아니면 옹졸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 생각했다. 부자간의 문제이기보다 기실, 가장 강하게 의식했던 사람이 어머니 영선네였다는것을 훙이는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사실 홍이는 지나치게백정에 대하여 과민했던 송관수가 못마땅했고 그 때문에 때론 관수가 몹시 왜소한 사내로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들의관계에 초점이 맞았을 때 홍이는 거의 본능적으로 모든 형편을 여실하게 파악한 것이다. 낮추고 또 낮추고 자기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듯 영선네의 그같은 모습이 새삼스럽게 홍의 마음을 뜨겁게했다.
핏줄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어머니, 그 속에서 생명이 생겨났고 그 속에 머물렀던 모태를 부정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 P61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다. 해서 부정의 그 깊이만큼 넓이만큼, 또 농도(濃度)만큼 배신했다는 회한도 깊어지고 넓어지며 짙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상승 작용하는 것이며 끝없는 평행선인 것이다. 홍이는 뼈저리게 그 갈등을 겪었고 임이네가 세상 떠난 지 십여 년이지난 지금도 기억이 되살아나면 용납할 수 없었던 생모에 대한 죄의식과 회한에 사로잡히곤 한다. 영광의 경우, 백정을 부정한 것은 어머니를 부정한 것이며 가정과 가족을 버린 것도 결국은 어머니를 버린 것이 된다. 인연을 끊었다면 그것도 어머니와 인연을 끊은것이다. 홍이는 그 따위 곰팡내나는 생각, 더군다나 젊은 사람이,
하고 나무랐지만 백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 자식을 백정의 자식과 함께 공부시킬수 없다, 벌떼같이 학부형들이 몰려오면 백정의 자식은 학교를 떠나야 했다. 사춘기에 흔히 있는 여학생과의 편지질도 신분을 감춘 백정의 혈통이기 때문에 부모가 들고 일어나 문제삼는 것이다.  - P62

송관수가 비밀 조직 속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관헌의 눈을 피하여 전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 신분의 노출을 꺼려 부초같이 일가(一家)가 떠돌아야만 했던 청소년 시절, 부딪치는 것은 넘을 수 없는높은 벽이었으며 스스로도 정신적 울타리를 치지 않고는 안주할수 없었다. 의식이나 생활면에서도 그것은 가둠을 당한 상태, 동굴속과도 같이 외부와 차단된 세계였다. 영광은 자기 존엄에 상처를 받은 분노 때문에,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것은 어머니를 부정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행동이었다. 최참판댁의 길상으로부터 학자금 지급의 제의를 받았을 때, 완곡하게 마지막까지 환국이 설득하려 했을 때도 대학 진학을 마다하고 학원을 전전하며 경음악의 길로 들어선 것은 물론 재능이 있었고 취미도 있어 그랬지만 영광으로서는 최소한도 그러한 자신의 처지에서 해방되기를 원한 때문이다. 그는 높은 교육을 받아도 그들 계층에 들어설 수 없으며 설령 들어섰다 하더라도 더욱더 자신을 옥죄는 존재가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홍이와 그가 다르다면 영광이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했다는 점일 것이다. - P62

"자 술들 드십시오."
술은 몇 순배 돌았으나 방금 떠들썩했던 것과는 달리 모두 말이없다. 알콜이 목구멍을 타고 창자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뿐, 마치 시간이 멎어버린 것처럼 묘한 침묵이다. 사랑에서 남자들이, 그것도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돌잔치 운운하는 것도 쑥스러운일이겠지만 도시 뭣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는지, 모여서 술상머리에 앉았는지조차 까맣게 잊은 듯한 그런 분위기다. 어느 순간에 찾아온 우울증, 불안 같은 것, 정체 모를 공포 같은 것이 산전수전 다겪은 이들에게 찾아왔던 것일까. 하기는 비단 이 세 사람뿐이랴. 조선인들은 모두 순간 순간 그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 억압에서 빚어진 습성 같은 것이지만 이제는 북녘땅에서실려오던 신화(神話) 같은 것은 없다. 한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 있을 뿐 전쟁의 함성 전과(戰果)만 대서특필, 전해질 뿐, 모든것은 일본이 파놓은 깊이 모를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창씨개명, 조선어 금지, 지원병 제도, 민족 신문의 폐간, 노동력 차출, 식량 공출, 유명무명의 조직 확대, 관리들과 학교 교사까지 준군복(準軍服)인 카키빛 국민복으로 갈아입은 지도 오래이며 중학교는 물론 여학교까지 교련이라는 명칭 하에 군사 훈련이 실시되고있었다. - P122

그들은 낯선 사람도 아니었으며 꽤 오랫동안 서로를 보아온 처지다. 그럼에도 오늘은 왜 그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말을 할 수 없었을까. 물론 송관수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지만 길상은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착오, 의문에 부딪혔던 것이다. 왜 자신이 이곳에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전적인 부정 그것이었다. 지리산 골짜기든 만주 벌판이든 자신은 그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는 뼈저린 통한, 사명감도 양심의 소리도 아니었다. 길상은 다만 자신의 삶의 진실한 의미를 물었던 것이다. - P130

기적을 울리며 멈춘 종착역, 쏟아져나온 사람들 속에 송관수의 유해를 안은 영광과 영선네도 있었다. 그들은 진주 시내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후주레한 짚베 치마 저고리를 입고 흰 댕기를 감은쪽에 나무비녀를 찌른 영선네는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없이 아들 등뒤 숨듯 걷는다. 얼마 만에 찾아오는가. 그러나 영광에게 진주는 낯선 고장이었다. 남의 땅, 하염없이 송화강 강가에 앉아 있곤했던 길림보다 멀고 스스러워지는 진주, 참으로 얼마 만인가. 저녁노을에 잠긴 남강(南江)은 아름다웠다. 둥지를 찾아가는지 무리지어 우짖으며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남강 다리 위에서 영광은 과연 저 강물에서 어릴 적에 개구리헤엄을 치며 놀았는지 의심스러웠다. 촉석루와 이혜미 바위를 오가던 기억, 일렁이는 강가 대숲에과연 어린 날의 꿈이 실려 있는가 의심스러웠다. 그런 심정은 영선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그는 더더욱 가슴이 메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에게는 고향이 없는 것과도 같았다. 그것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틀 자리가 없었다는 뜻도 된다. - P130

"고맙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런 말 마라. 그라믄 내가 부끄러버서 우짜노."
"아닙니다. 아버지가."
하다 말고 목이 메는지 말을 끝맺지 못한다.
"우리는 살아 있고, 그래 우리는 살아 있는데, 젤 고생 많이 한 형님이 먼저 갔으니 원통하고 억울하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살아있으니 적인 아니가."
연학은 길상이 한 것과 꼭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병으로 그리 됐는데, 어쩔 수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자네는 모를 기구마. 우리들 맴을 모를 기다."
부지런하고 지혜로우며 온갖 뒤처리를 도맡아 해온 연학이, 냉정하고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것으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는데그 둑이 터진 듯 주체하질 못한다. 그러한 자신을 추스르듯
"하여간에 이야기는 두었다 하기로 하고 내일 아침 일찍이 출발해야 할 기다."
"차편은 어떻게 됩니까."
"자동차로 하동까지 가서, 거기서 나룻배를 타믄 된다. 그라고 화개에 가믄은 아마 사람이 나와 있을 성싶다. 사람을 못 만날 경우를 생각해서 일러두는데 찾아갈 곳은 도솔암이다. 알겄제?"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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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연민인가요?"
"아니야. 차라리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일 거야."
하다가 퍼뜩 무라가미의 말이 생각났다.
‘혼자 여행이란 사무치게 외로우면서 한편 달콤하거든. 그건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일 거야‘
저도 모르게 오가다는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쓸어내린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보고 결혼하라, 그건 잔인한 거야."
그러나 세츠코는 분개하는 것은 아니었다. 열려진 창문에서 들어왔는지 나방이 한 마리가 전등을 맴돈다.
"지로상."
"응."
"산다는 것, 그거 대단한 거야? 대단한 것도 아니지 않아."
"산다는 것은 위대해. 아무리 평범하게 살아도 삶 자체는 대단한거야."
"이기적으로 사는 게 훨씬 인간적이며 정직한 거 아닐까? 인생에뭐 그리 거창한 의미가 필요해? 사랑의 순결 같은 것도 하나의 의식 과잉, 그건 자연이 아니야. 정직하다 보면 인간의 치부 같은 것뭐 그리 대단하게 죄악이라 할 수도 없잖아."
하면서도 세츠코의 표정은 몹시 쓸쓸해 보였다. 오가다는 세츠코를 빤히 쳐다보았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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