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펀더ANNA FUNDER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국제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호주 정부에서 재직했다. 동독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평범한 사람들과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Stasi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의 실화를 다룬 <슈타지랜드Stasiland》(2003)는 고전 반열에 올랐으며, 2004년 영국최고의 논픽션상 새뮤얼 존슨상(현 메일리 기포드상)을 수상했다. 1930년대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네 명의반히틀러 활동가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장편소설 <음댓아이엠All that I am>(2011)은 호주에서 가장 권위 있는문학상 마일즈 프랭클린상을 수상했고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과 영연방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책 <조지 오웰 뒤에서》(2023)는 <뉴욕타임스> <더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가디언> <선데이타임스> 등 주요 매체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파리, 베를린, 뉴욕에서 살았고 현재는 가족들과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서제인
번역을 하면서 세상이 거기 있다는 걸 확인한다. 옮긴 책으로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노마드랜드> <아무도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형식과 영향력><코펜하겐 3부작> <목구멍 속의 유령> <고통을 말하지않는 법> <벌집과 꿀》 등이 있다. - P-1
사랑은 ... 성적인 것이든 아니든 힘든 일이다. 조지 오웰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꾸며낸다. 필리스 로즈
남자들과 여자들은 ...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비비언 고닉 - P-1
2005년, 조지 오웰의 첫 번째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가 가장 가까운친구였던 노라 사임스 마일즈에게 보낸 여섯 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그 편지들 속에는 아일린이 오웰과 결혼해 살았던 1936년부터1945년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다. 아일린의 편지들은 이 책에서 다른 서체로 등장한다. - P-1
나는 오랫동안 조지 오웰을 사랑해 왔다. 이제는 안다. 그 사랑은, 한 남자가 애써 숨기려 했던 한 여성을 사랑하는 일과도 같다는 것을. 플롯으로 세상을 직조하고, 사람들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는자신의 언어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읽게 만들었던 작가 조지 오웰 그 뒤에 서 있던 여자. 이중사고의 주인공 아일린. 그녀는 조지 오웰이 걸작을 써내는 동안 일을 하고, 살림을 하고, 그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다. 조지 오웰은 분명 알고 있었으리라. 아일린이라는 진실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을. 덕분에 나는 그가 "광기의 집합"이라 불렀던 ‘삶‘에 아일린이 어떤 활력을 불어넣었는지 알게 됐다. 그래. 삶이란 분명 어둠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두려움을 감수하고 도전해 볼 만한 모험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일린의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제 나는 조지 오웰의 글에 더 충만한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은 그의 뒤에 서 있던 한 영민한 여성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아일린의 헌신에 감사를 전한다. _강화길(소설가, 《치유의 빛> 저자) - P10
소피아 톨스토이, 젤다 피츠제럴드, 시시 챈들러, 캐서린 디킨스, 매리 워즈워스 이름은 낯설지만 성은 익숙한 이 여성들은 모두 유명 작가의 아내다. 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작품들도 많지만, 정작 이들의 이름은 빛을 보지 못했다. 여성들은 남성작가, 예술가의 삶과 작업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창작 과정의 일원이었음에도 기껏해야 ‘뮤즈‘ 정도로 불렸을 뿐 대부분은 ‘아내‘라는 배역으로 그 존재가 지워지거나, 교묘하게 가려진다. 원서의 제목 와이프덤 wifedom은 흥미로운 단어다. 아내라는 단어에 농노신분serfdom, 노예신분 slavedom 같은 표현에서 흔히 보는 접미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름을 알 필요가 없는 노예들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존재를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 아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책은 가상의 폭정에 저항한 조지오웰이 현실에서는 자기 아내 아일린의 기여와 존재를 얼마나 의도적이고, 교묘하고, 철저하게 지우려고 했는지 보여준다. 특히 오웰의 생각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는 자기연민과 근거 없는 피해의식과 얽혀 있어 21세기의 많은 남성들이 직시해야 할 거울이 된다. _박상현(오터레터 발행인, 《친애하는 슐츠 씨》 저자) - P11
조지 오웰은 누구인가? 그는 난봉꾼, 강간범, 교활한 겁쟁이, 착취자였다. 이것이 오웰의 ‘참모습‘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문학과 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이보다 더 논리적이고 정교한 책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 톨스토이, 아인슈타인이 예외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성별 분업 사회에서 그들은 조지오웰과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내는 남자에게 두 개의 삶을 선사한다."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삶과 아프거나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으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삶. 이것이 가부장제의 작동 원리다. 이 책은 오웰의 아내 아일린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일린의 남편 오웰의 이야기, 역설적인 여성의 역사이다. 저자는 글쓰기의 깊이와 두터움을 통해 현기증을 일으키는 분노를 체험케 하는 새로운 형식의 전기를 선보인다. 조지 오웰의 모든 글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_정희진(문학박사,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 P12
이제 접시를 제자리에 정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골집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노동이 아일린의 몫이니까. 노라에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골집에는 위생 설비도, 난방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처참했던 재래식 변소 사건에 대해서도 변변치 못한 섹스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생각들은 (거의)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 깨닫게 된다. 절친한 친구에게 하지 않는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다 보면 결국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이런 식으로 일부러 자기 계급에서 떨어져 나와 조지의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을 - 옥스퍼드에서 받은 교육을, 그리고 이른바 ‘재능‘을 -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건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심한 일이다. 절대 언급하지 않을 사실이 있다면 다음 주에 조지가 참전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가라고 격려한 사람은 아일린이었지만, 이렇게 간신히 허약하게 유지되는 결혼이라는 상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다음번 편지에서는 말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일린은 대신 자신의 새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 P25
나는 반짝이는 물결 너머로 코카투섬을 바라보며 내가 오늘 하루 동안 일상에서 경험한 실패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유독한비닐, 주차장에서 죽어버린 영혼, 비참하게도 끝없이 수영장 트랙을 돌고 있는 가엾은 프랑스인 교환학생, 미처 끝내지 못한 작업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들은 이제 걱정스러운 빨간 깃발을 단 채받은 메일함에 쌓이고 있었다. 나는 ‘불쾌한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그 사실이란 이랬다. 내 남편인 크레이그와 나는 살아가고 사랑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우리가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품고 있던 최선의 의도를 깔아뭉개 주려고 지금껏 음모를 꾸며온 듯했다. 그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은 노동을 해온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우리는 더는 그 격차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세상사의 여러 가지를 알아차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내 눈으로 보면, 그리고 아홉 살 난 우리 아들의 입도 빌리자면, 이건 ‘대실패‘였다. 나는 다시 그 페이지로 눈을 돌렸다. "대략 서른 살이 넘으면" 오웰은 쓴다. "사람들 대부분은 개인적 야망을 포기하고 - 사실 많은 경우엔 자신이 개인이라는 감각조차 거의 포기해 버리고 - 주로 남들을 위해 살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힘겹고 단조로운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 P31
"[오웰은] 아내들이 섹스라는 수단을 이용해 남편을 통제한다"고 암시했다. 이는 여성이 실제로 ‘통제‘하고 있는 건 자기 몸에 접근하려는 시도인데도 남성을 통제하고 있다고 묘사하는 여성혐오적인 수사다. 그러니 이것 역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특히 오웰이 자기 아내의 육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을 때는 말이다. 전기 작가들에게는 여성과 아내와 섹스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오웰의 분노 발작을 다룰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것을 들어내 버리거나, 그 충동에 공감하거나, 그것을 ‘일시적인 감정‘이라며중요하지 않아 보이게 만들거나, ‘픽션‘이라고 부인하거나, 다름 아넌 그 여성을 탓하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오웰의 생각들은 읽기 고통스럽다. 여자들은 그를 혐오하고, 그는 자신을 혐오한다. 그에게는 피해망상이 있는데, 거짓된 ‘자신들의 모습‘을 세상에 ‘기만적으로 내세우는‘ 추잡한 여자들의 정치적·성적 음모에 속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오웰은 여자들을, 다시 말해. 아내들을 그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는지, 혹은 무엇을 요구하는지‘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청소는 충분하지 않고 섹스는 너무많이 요구한다고 말이다. 그럼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내게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이렇다. 아마 청소는 너무 많이 해야 했고, 섹스는 충분치 않았거나 충분히 근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작품에서 삶으로, 그 남자에게서 그의 아내에게로 옮겨 가게 되었다. - P35
나는 다시 웃는다. 오웰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아이의 통찰력에 놀라서다. "아마도, 내가 나쁜 인간이라서?" 나는 말한다. 딸아이에게 이 비슷한 말을 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아이는 조금도 주저 없이 대답한다. "누구나 다 조금씩은 나쁜인간 아닌가요?" 작업실로 돌아온 나는 책상이 놓인 돌출된 창가에 앉는다. 말벌들이 덧문에 집을 짓고 있다. 잘록한 허리로 주위를 맴도는 벌들은휴식을 취하는 중인 듯하다. 육각형 벌집 주위를 미적거리는 모습만 보고 벌들의 일과 생활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나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이런 게 청소년기 자녀를둔 부모의 전형적인 감정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였던 존재들이 세상을 알게 되는 걸 지켜본다. 우리가 15년 넘게그 애들에게 감추려고 헛되이 애써 온 그 세상을, 세상의 본모습을바라보는 걸 지켜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본모습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감정 상태를 표현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그들의 지성이 우리가 세워놓은 시시한 보호막들을, 밀랍으로 만든 집처럼 허약한 그 보호막들을 산산조각 낼 때 느껴지는 자랑스러움, 그리고어린 시절을 벗어난 그들이 인간의 삶 속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싸움과 나쁜 놈들 천지인 세상으로 들어오는 데서 느껴지는 괴로움. 이 두 가지를 결합해 표현해 줄 단어가 - P39
그 편지들은 하나의 계시와도 같다. 마치 오웰이 세상을 떠난 뒤로 반세기도 넘게 지난 지금 그의 사적인 삶으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 열리고 그 문 안쪽에서 살아갔던 여자와 그곳에서 글을 썼던 남자가전혀 다른 빛 아래 드러난 것만 같다. 장편소설을 쓰는 건 이제 불가능했다. 그 소설은 편지들을 ‘소제‘로 삼아 삼켜버리고, 내 목소리를 아일린의 목소리보다 우위에 두어버릴 테니까. 게다가 아일린의 목소리는 짜릿하다. 나는 아일린을 되살리고 싶었다. 동시에 그를 지워버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악한 마술의 속임수를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이 작업을 ‘포용하는 소설‘을 쓰는 작업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몇 달 동안, 그러다 몇 년 동안 세상에서 멀어진채 오웰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있는 오웰 아카이브에서, 나는 아일린의 대학 시절 노트들과 그가 또렷하고 둥근 글씨체로 오웰에게 썼던 편지들을 찾아냈다. 아일린과 오웰이 1944년에 입양했던 아들 리처드 블레어와 함께 카탈로니아곳곳을 여행하면서 오웰이 스페인 내전 기간에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추적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스코틀랜드의 주라섬으로 향했고, 오월이 마지막 작품 <1984>를 썼던 집에 도착한 다음 그에게 그집을 임대했던 여성의 손자와 함께 위스키를 마셨다. - P48
그리하여, 소설을 쓰며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내가정한 소박한 기본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아일린은 되살아나 그가실제로 썼던 편지들을 다시 쓸 것이다. 절친한 친구에게 여섯 통, 남편에게 세통, 그리고 다른 편지 몇 통을. 나는 그 편지들을 쓸 때아일린이 어디에 있었는지 안다. 접시들은 싱크대 속에서 얼어붙어있었고, 아일린은 하혈을 하고 있었고, 오웰은 다른 여자와 침대에 들어가 있었으며 아일린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안다. 이이야기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일린이다. 가끔,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기반해 어떤 장면을 쓴다. 그리고 대체로, 세트장에서 배우에게 연기 지시를 하는 영화감독처럼 몇 가지만 덧붙여 넣는다. 안경을 문질러 닦는 손길, 카펫 위에 떨어진 재, 아일린의 무릎에서 주르르 쏟아지듯 내려가는 고양이 같은 것들만.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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