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초기 작품부터 빼놓지 않고 읽었다.
특히 인상적인 소설은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성적인간』,「세븐틴」 프랑스어를 그대로 일본어로 번역한 듯한 문장이 무척 멋있고, 과격하고 전위적인 점에 끌렸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뭔가 새로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도 엄청나게 많이 봤다. 우선은 남들 다 하는 대로 다카쿠라 켄이 나오는 야쿠자 영화, 신주쿠의 나카도리에 위치한 쇼와칸이라는 영화관에서 매주 세 편씩 연속상영을 했다. 「붉은모란 도박사」 같은 영화를 매주 빠짐없이 감상했다. 신주쿠 도로변에는 명화 전용 상영관이 있어서 제임스 딘이 등장하는 오래된 명화를 저렴한 값에 볼 수 있었다. 150엔 정도였던가. 그리고 ATG‘ 계열인 신주쿠 문화라는 영화관으로는 동시대의 영화 - P82

를 보러 다녔다. 기억에 남는 영화감독은 피에르 파솔리니, 프랑수아 트뤼포, 장뤼크 고다르, 페데리코 펠리니. 일본 감독으로는 마쓰모토 도시오, 요시다 요시시게, 오시마 나기사.
가장 좋았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고다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치광이 피에로」를 처음 감상한 뒤부터 그 이후의 작품은 거의 개봉 즉시 챙겨보았다. 중국 여인」, 「주말」, 「동풍」까지. 「중국 여인」은 1968년 5월 혁명 이전의 작품인데도 그것을완벽하게 예언해서 진심으로 흥분했다. 매우 대중적이고 색채감도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 시기 이후 고다르의 작품은 메타 영화라고 할까, 영화라는 형식 자체를 되묻거나 해체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졌다. 「프라우다」 「동풍」 같은 작품이 바로 그런 예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건 영화의 경향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흐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세계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은 그다음 세대 미국 작곡가들의 음악에서도 고다르와 일맥상통하는 면을 찾아볼 수 있다. - P83

나는 겨우 열 살 정도였고 그때까지 바흐나 모차르트의 음악만 들었으니 그 콘서트에서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도 음악이란 말이야?‘ ‘와아, 이런 것도 좋구나!‘ 그런 생각들을했다.
그 얼마 뒤에 작곡 공부를 시작했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베토벤을 좋아하게 되고 마침내 드뷔시를 만났다. 앞서도 말했지만 외삼촌의 레코드 컬렉션에 있던 드뷔시의 현악 사중주를듣고 충격을 받은 나는 그야말로 흥분해서 내가 드뷔시의 환생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고는 라벨,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벨러 버르토크로 조금씩 새롭게 음악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리고 올리비에 메시앙, 피에르 불레즈,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루차노 베리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를 돌아보니 도리어 학술적인 노선의 현대음악을 한바탕 훑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동일한 선상의 일본 작곡가, 이를테면 미요시 아키라, 야시로 아키 - P86

오, 유아사 조지, 다케미쓰 도루....... 모두 당시에 현역으로 곡을 쓰던 작곡가들인데, 그들의 음악도 자주 들었다.


그 한편에서 존 케이지의 음악과도 만났다. 아마 고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 때, 음악 잡지를 통해 알고서 듣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의 현대음악이 매우 복잡한 이론을 바탕으로 곡을구축해나가는 데 비해 케이지는 대담하게 우연성을 도입하고있었다. 주사위를 던져 그때마다 나온 숫자에 따라서 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건 유럽 음악의 계보에서 크게 일탈한 시도였다. 내가 작곡 선생님 댁에서 매주 공부했던 음악과도 물론 맞지 않았다. 그런 특이한 음악을 만난 일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그 충격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때 갔던 그 연주회에서 이미 케이지와 통하는 음악(어쩌면 케이지의 작품도 연주했었는지 모른다)을 접하기는 했지만. - P87

초등학생 때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바흐부터 시작해 베토벤, 드뷔시, 그리고 이른바 현대음악, 뒤를 이어 시대를 따라잡듯이 수없이 밀려들어온 서양음악은 1960년대 말 시점의 내게 동시대의 음악이 되었다. 서양음악사와 개인사를 교차시키면서 문득깨닫고 보니 나는 작곡의 현장과 동일한 시간 속에 서 있었다.
그것은 음악가들의 문제의식이 나 자신의 문제의식과 겹쳐지면서 만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무렵은 고교생으로서 마지막에 접어든 시기였다. 나는 학교나 사회의 제도를 해체하겠다는 운동에 몸을 던졌지만, 동시대의 작곡가들도 기존의 음악 제도나 구조를 극단적인 형태로해체하려 하고 있었다. ‘서양음악은 이미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우리는 종래의 음악으로 막혀버린 귀를 이제 해방해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말 그대로 해체의 시대였다.
그런 의식이 내 음악으로서 구체적인 형태를 취한 것은 한참더 나중의 일이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 P91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서양음악은 막다른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 외에도 "민중을 위한 음악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특별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음악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종의 게임 이론적인 작곡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이었다. 작곡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누구든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좀더 끈기 있게 추구해나가면 방법적으로 알맹이 있는 것이 탄생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런 바람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나 문제의식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의 내 안에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P110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하고 큰 감명을 받은 존 케이지, 발매되자마자 들었던 테리 라일리,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 그리고 라몬테 영. 그런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미술학부 친구들과는제법 말이 통했다. 그들은 미술수첩』 같은 책을 샅샅이 읽었기때문에 앤디 워홀이나 백남준은 물론이고 동시대의 전위예술에무척 박식해서 그 연장선상에서 라이히 등의 음악도 당연하다는 듯 훤히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전적으로 미술학부 쪽에만 들락거렸다. - P113

내가 공부한 방식, 즉 계통을 세워서 레슨을 받고 학교 수업으로 음악에 대한 지식이나 감각을 배워가는 것은 사실 간단한일이라고 할까. 알기 쉬운 방식이다. 스텝을 차례차례 올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호소노 씨는 그런 식의 학습을 해오지도않았는데 분명하게 그 핵심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대체 이건또 뭔가, 완전히 수수께끼였다. 뛰어난 귀를 가졌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한 도리가 없었다.
또 한 명, 거의 동일한 경이감을 느끼게 한 사람이 야노 아키코 씨였다. 아키코 씨의 음악을 들었을 때에도 고도의 이론을 모두 섭렵한 끝에 그런 음악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어보니역시 이론 따위는 전혀 알지 못했다.
즉 내가 계통을 밟아 포착해온 언어와 그들이 독학으로 얻어낸 언어는 거의 같았다. 공부해온 방식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동일한 언어로 대화할수 있었다.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 P128

그리고 재즈 평론가 아이다 아키라. 그는 현대사상을 열정적으로 연구해서 난해한 비평을 써냈다. 고교 시절에 읽은 히라오카 마사아키의 비평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가 쓴 비평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말도 통했다. 하지만 그도 아베 가오루가 사망한 직후 그 뒤를 쫓듯이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런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절친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인간이란 서로 얼마나 먼 사이인가, 나는 얼마나 그 사람을 알지 못했던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아 있을 때에는 서로 그럭저럭 말이 통했기 때문에 어쩐지 상대를 잘 아는 듯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친구가 죽었을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항상 그렇다. 내 경우에는. - P135

일용직 노동자 같은 일을 계속하면서 속절없이 나이 들어가는 뮤지션도 많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업계에서 점점 지위가 올라간다. 제자 몇 명쯤 거느리고 스튜디오를 낼 정도가 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좀 별로라고 생각했다. 이런 작은 세계에서 골목대장이 되는 식이어서는 끝장이다. 벗어나야 한다, 라는 절박감이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일 때에는 편곡자, 디렉터, 프로듀서가 있어서 그들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이를테면 음악 로봇 같은 것이어서나 자신의 음악성 따위는 거의 들이밀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솔로 앨범이든 YMO의 앨범이든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할 수 있었다. 그건 엄청나게 큰 차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날이면 날마다 새벽까지 꼬박 나만의 창작을 할 수 있었다. - P145

영화음악을 해본 경험은 없었지만 나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젊음의 기세라는 건 참 대단하다고나 할까. 하지만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막상 음악을 만들 단계가 되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 ‘영화음악?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야?‘ 영화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딱히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촬영을 통해 친해진 프로듀서 제러미 토머스에게 물어보았다. "참고할 만한 영화 한 편을 예로 들어보라고 한다면뭘 추천할 거야?" 그가 「시민 케인」이라고 대답했다. 당장 비디오테이프를 사 왔다.
그 영화에서 참고한 것은 오케스트레이션이나 멜로디가 아니라 어떤 부분에 음악을 붙이고 어떤 타이밍에 사라지는가, 즉 - P170

순수한 영상과의 관계였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지극히 단순했다. 영상의 힘이 약한 곳에 음악을 넣는다는 것. 신비한 분위기고 뭐고 없었다.
영화 일이니까 영화음악에 대해서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감독이다. 미리 음악을 어디에 어떻게 넣을지 내 나름대로 리스트를 만들고, 오시마 씨도 자신의 리스트를 만들어 와서 회의를했다. 그랬더니 음악을 넣는 부분에 대한 의견이 99퍼센트 일치했다. ‘뭐야,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네.‘ ‘프로와 똑같은 답을 냈잖아‘ 그렇게 완전히 자신감이 붙었다. 정말 혼자 잘났었다. - P171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1983년 칸 영화제에 출품되었다. 나는5월에 칸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을처음으로 대면했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중국의 마지막 황제에 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라든가 "그 영화를 위한 중국과의 협상이 너무 힘들어 죽겠다"라는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의팬이었기 때문에 행복한 기분으로 아마도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들었을 것이다. - P171

이런 매력적인 인물과 함께 일하고 싶다, 오시마 씨뿐만 아니라 베르톨루치와도 일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탐욕스러운 청년이었다. 하지만 설마 내가 그 작품의 음악을 담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쪽에서도 나한테 음악을 해달라는 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본적으로 바로 코앞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타입인 데다 애초에 YMO에 참가해 음악을 평생 직업으로 의식한 것부터가 겨우 그 2-3년 전의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참여하고 칸에서 베르톨루치를 만났던 일이 내 작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음악의 축을 서서히 만들기 시작한 계기였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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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57년의 반생과 그를 둘러싼 음악의 세계,
모든 것을 이야기한 최초의 자서전


서구권에서 먼저 명성을 얻으며 우리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그는 전자음악의 개척자이자 작곡가, 영화음악가, 영화배우, 모델, 사회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로 설명된다. 이 책에서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잡지「엔진ENGINE」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하여 류이치 사카모토의 반생을 돌아본다. 그 안에서 유치원 시절 숙제로 「토끼의 노래를 작곡했던 어린아이는 세계적인 밴드 YMO의 멤버이자 솔로 음악가, 아카데미 음악상과 골든글로브상, 그래미어워드를 수상한 영화음악가로 성장하고, 같은 학교 학생들을 동원해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10대 소년은 반전과 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운동가로 탈바꿈한다. 독자들은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그의 반생을 통해 수십 년 후에도 결코 퇴색되지 않을 그의 음악과 철학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내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속내를 밝히자면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기억의 단편을 정리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낸다는 건 사실 내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현재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적잖이 흥미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나 자신의 일이니까. 어떻게 이런 인생을 보내게 되었는지 나로서도 무척 궁금하다.
나는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지 못한다.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적도 없고, 어릴 때부터 꼭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 P7

음악이란 "시간 예술"이라고 한다. 직선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켜나가는 창작 활동이라는 말인 모양이다. 그런의미에서 애초부터 음악을 지어내는 재주는 내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공부하면 배울 수 있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은 룰을 배우기만 하면 가능하다.
룰을 외우고 그 룰대로 뭔가를 축적해나간다. 일반적으로 성장이란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생각과 어딘가 항상 어긋난 듯한 느낌이 있었다. 공부를 하면 뭔가를 잘할 수는 있겠지만, 왠지 생리적으로 그런 과정이 내게 맞지 않는 듯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래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나 자신을 정리해 이야기한다는 데에 사실은 적잖이 위화감이 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부감해보고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기억과 사건을 순서대로 펼쳐놓고그것을 연결해본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현재의 나에 대해 뭔가 보일 것이고, 그런 표현 방식을 통해서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 P10

이를테면 현재 레바논에서처럼 전쟁이 벌어져서, 이 전쟁으로 혈육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고 하자. 어느 레바논 청년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랑하는 누이를 잃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음악 세계의 소유가 되어버려서 아무래도누이의 죽음 자체로부터는 멀어진다.
분명 글을 쓰는 일도 그럴 것이다. 어떤 일을 글로 써내려가는 시점부터 이미 좋은 문장인가, 아름다운 문장인가. 힘이 있는 문장인가 하는 언어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누이의 죽음에 진심으로 비통한 심정을 품었다고 해도, 음악을 만드는 한 음악 세계의 문제로 진입하고 만다. 그것은 실제로 겪은 누이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어서 두 가지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생겨난다.
한편으로, 누이의 죽음은 그 청년의 기억이 사라지면 역사의 - P20

어둠 속에 묻혀 소멸되겠지만 노래가 되는 일을 통해 민족이나세대의 공유물로서 오래도록 남을 가능성이 있다. 개인적인 체험과의 박리를 통해서 음악이라는 세계의 실존을 얻는 것으로써, 시간이나 장소의 제약을 뛰어넘어 모두와 공유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음악은 그런 힘을 가졌다.
표현이란 결국 타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 타자와 공유할수 있는 형태가 아니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추상화라고 할까, 공동화라고 할까,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개인적인 체험이나 아픔, 기쁨은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결손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와 맞바꾸어 전혀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공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종의 통로가 생긴다. 언어도 음악도 문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 - P21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주의 깊게 듣다 보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바흐의 곡은 "여기에 조금 전의 멜로디가 나오는구나"라든가 "이번에는 반복해서 나왔어"라든가
"이번에는 두 배로 늘여서 나오는데?"라든가, 그저 멍하니 들었을 때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점점 깨달을 수 있어서 정말즐거웠다. 와아, 음악이란 재미있는 것이구나, 하고 실감했다.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그 기초는 모두 도쿠야마 선생님에게서 배운 셈이다.

도쿠야마 선생님에게서 레슨을 받는 동안 나는 바흐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보통 피아노곡은 오른손이 멜로디, 왼손이 반주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게 몹시 싫었다. 내가 왼손잡이였기 때 - P31

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흐의 곡은 오른손으로 나왔던 멜로디가 왼손으로 바뀌거나 나중에 형태를 바꿔 다시 오른손으로 나오기도 한다. 오른손과 왼손이 매번 역할을 바꿔가며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진행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건 결정적인 만남이었다. 팝이나 가요곡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자주 귀에 들어왔지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음악은 바흐였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피아노 연습을 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정말 연습이 싫다. 실은 집에서 연습이라는 걸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한번 스윽 보고 연주하지 못하는 음악은 아무리 시간이흘러도 결국 치지 못했다.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미국 팝송 같은 걸 쳐보기도 했지만, 결국은「대탈주」 드라마를 흉내 내며 놀기에도 바빠서 피아노는 거의 치지 못했다. - P33

비틀스를 만난 시기는 마쓰모토 선생님 댁에 드나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작곡을 시작한 것, 비틀스를 만난 것, 두 가지 모두 내게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처음에 머릿속을 지이잉 울린 것은 사실 비틀스의 음악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잡지 표지에 실렸던 사진. 처음 본 순간 ‘와아,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부쩍 관심이 가면서 어떤 음악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도쿠야마 선생님에게서 레슨을 받는 중고등학생 누나들이그 잡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표지를 보고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비틀스라는 그룹"이라고 알려주었다. 정말 폼 난다고 생각했다. 그게 비틀스와의 충격적인 만남이었다. 그 잡지가 뮤직라이프였던 것 같은데, 분명하지는 않다. - P41

롤링스톤스도 큰 충격이었다. 연주가 너무 서툴러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멋있다, 너무 서툴러서 멋있다, 라고 생각했다. 펑크한 감각이다. 아직 어린 나름으로도 ‘이건 음악이 약간 틀리는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틀려도 괜찮은 거야?‘라고. 그런 점에서 비틀스는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었다.
비틀스에게서 받은 영향도 물론 지대했지만, 롤링스톤스 쪽도 이후 내가 해온 음악 작업으로 이어졌다. 내 안에 롤링스톤스적인 것의 계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있었고 그건 특히 아방가르드한 쪽으로 연결되었다.
고등학생 때쯤에는 존 케이지와 백남준 같은 사람들, 그리고 플럭서스와 네오다다이즘 같은 운동에 빠졌다. 그후에는 프리재즈를 하기도 했다. 그런 이단이랄까 전위적인 것을 좋아하는 - P42

경향은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롤링스톤스에서 시작되었다. 비틀스의 음악에서 보이는 세련미도 좋았고, 롤링스톤스적인 거친 맛도 좋았다. 어느 쪽도 버리기가 어려웠다.
비틀스는 우선 하모니가 굉장히 아름다웠다. 편곡도 아주 멋졌다. 그때까지의 아메리칸 팝의 심플한 3코드 음악이 아니라매우 복잡한 하모니를 사용했다. 이 울림은 뭘까, 하고 궁금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건 조지 마틴이라는 프로듀서가 상당히 공을 들인 결과였다. - P43

내가 얼마 전에 만나서 정신없이 몰두하게 된, 드뷔시가 좋아하던 바로 그 음이었다. 이 화음에 정말 엄청나게 가슴이 뛰었다. 오르가슴 같은 쾌감을 느꼈다. 너무 흥분해서 평소변변히 대화도 나누지 않던 아버지를 스테레오 앞으로 끌고 와서 비틀스의 레코드를 들려주기까지 했다.
드뷔시를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처음 들은 곡은 다른 외삼촌의 레코드 컬렉션에 있던 현악 사중주곡이었다. 여기에도 엄청난 충격을 받아서 금세 빠져들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자신을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거의 진심으로 믿었다. - P44

결국 도쿠야마 선생님과 마쓰모토 선생님을 찾아가 이번에는 나 스스로 다시 음악을 하게 해달라고 머리 숙여 부탁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내가 음악을 꽤 좋아하는구나, 라고 실감했다. 그만둬보고서야 깨달았다. 한 번 헤어진 뒤에 다시 만나 결혼하는 연인 비슷한 심정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정말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내 인생에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연히 농구부는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농구부 주장에게 찾아가 머뭇머뭇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복도 뒤 으슥한 곳으로 끌려가서 퍽퍽 두들겨 맞고 길게 기른 머리칼을 뽑히기도 했다. 그런 시끄러운 의식을 거친 끝에 다행히농구부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음악에 빠져들었다. - P48

잠깐 멀리했던 반작용인지 나는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에 몰두했다. 이전까지 1주일에 한 번씩 산수 문제를 풀듯이 밤새 작곡숙제를 해서 선생님께 가져갔다면, 그즈음에는 좋아하는 곡의악보를 일부러 직접 구입해 숙제도 아닌데 열심히 연구했다. 이번에는 이 곡을 정복하자고 정해놓고,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나는지 콩나물 같은 음표에서부터 분석해보거나 그것과 비슷한 곡을 만들어보는 등의 연습을 자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철저히 열중해서 해독해본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이었다. 지금 들어보면 그야말로 베토벤다운,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곡이지만 그때는 왠지 그 곡이 마음에 들어 반년 동안 반복해서 레코드를 듣고 악보를 들여다보았다. 중학교1학년 후반 때쯤의 일이다. - P50

그 곡은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음악과도 달랐다. 그토록 좋아하던 바흐나 베토벤과는 완전히 달랐다. 비틀스는 물론이고.
곡을 듣자마자 이건 또 뭔가 하고 흥분해서 완전히 드뷔시에게 사로잡혔다. 지나치게 공감하는 바람에 거기에 내 자아가 녹아들었다고 할까. 벌써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드뷔시가 바로 나 자신인 양 느꼈다. 드뷔시가 다시 태어나서 내가 되었다는 생각까지 했다. 나는 왜 이런 엉뚱한 곳에서 살게 되었는가, 왜 일본말을 하고 있는가, 라고 한탄했을 정도였다. 드뷔시의 필적을 흉내 내서 수없이 사인 연습을 하기도 했다. "Claude Debussy"라고.
그러나 내 주위에는 그렇게 정신없이 빠져든 음악 이야기를 공유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 학교에도 없고 집으로 돌아와도 없었다. 악보를 들여다보며 나 혼자 슬슬 피아노를 치면서, 아아,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까, 하고 고민했다. 혼자서 음악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었다. - P51

데모에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갔다. 재즈카페에 들락거리던 무렵에 스나가와의 투쟁에서 부상을 입고 머리에 붕대를 둘둘 감고 돌아온 선배가 있어서 스티브 매퀸처럼 멋있다고 부러워하던 끝에 나도 참여하기로 했다. 우선 샤켄에 들락거렸다. 그곳에 가면 어쩐지 눈매가 험악한 선배들이 잔뜩 모여서 몹시 난해해 보이는 책들을 읽고 있었다. 나도 따라서 읽었다. 맨처음 읽은 책이 경제학 철학 초고』였던가. 레닌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도 읽었다. 솔직히 뭐가 뭔지 전혀 알지못했다. 물론 빠뜨리지 않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선언』도 읽었다. - P76

3학년 가을, 신주쿠 고등학교에서도 수업 거부 활동이 펼쳐졌다. 1969년 가을이었으니까 당시로서는 다른 학교에 비해 늦은편이었다. 안보조약이니 베트남 전쟁 같은 일반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국지적인, 학교의 개별 과제에 관한 비판운동이었다.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아마 7개 항목 정도로 정리해서 학교측에 요구했던 것 같다. 교복과 교모의 폐지, 모든 시험의 폐지, 생활 통지표 폐지 등등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인간을 수치로 평가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는 내용이 핵심 요구 사항이었다. 그건 시험을 통해서 학생의 순위를 매겨 대학에 보내는 교육 구조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학교 제도의 해체를 주장한 셈이었으니, - P78

당연히 선생님들로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평가를 하지 않으면 학생을 대학에 진학시킬 수없을 테니까. 하지만 시험을 강행하려는 선생님이 있으면 우리는 교실을 돌며 답안지를 찢어버렸다.
수업은 학생들끼리 진행했다. 바로 지금 일어나는 사건이 세계 역사라면서 베트남과 파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에드문트 후설의 책을 함께 읽으며 그의 현상학적 환원을 적용해보기도 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추진력과 용기였다. 돌이켜보면.
3학년 때는 절친한 친구 시오자키, 바바도 같은 반이어서 결속력이 더욱 강해졌다. 수업 거부가 4주일 동안이나 이어졌는데, 우리 반은 모두 마지막까지 지도부의 뜻을 따랐다. 결국 수업거부는 학생과 교사가 대화하기로 하면서 막을 내렸고, 선생님들이 그야말로 진지하게 토론에 응해준 끝에 교복도 교모도 시험도 정말로 없어졌다.
바리케이드로 봉쇄한 학교 안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헬멧을 쓴 채 드뷔시를 연주했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정작 나는 잘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그런 짓을 했다면 분명 인기 좀 끌어보려고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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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R/RETOUR 


낮이 어둠으로 물러간다
밤의 베일을 통하여 본 낮
낯빛과 어둠 사이에 드리워진 투명한 회색의 막이
하늘을 연보라색으로 녹이고
어두운 보라색으로 다시 흰색으로 밤이 뒤덮일 때까지.
나지막한 웅얼거림 하나
어둠과 밤 사이에
각 방으로 헤어지는 그들의 돌아옴을 중지시키지 않는다
그림자가 떠오르고 다시 동등하게 희미해지는 동안
버려진 방들에 걸려 있는 비밀
헤어지는 이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전달
날은 어둠으로 물러간다
불빛을 없애라 소리를 멀리로 다시 옮겨라. 
더욱더 멀리.
부재가 가득하다. 부재가 빛이 난다. 그릇들, 놓아둔 그대로.
과일도 그대로, 유리잔의 물 구슬이 잔의 가장자리로 떠오르는.
침묵의 부동 속에서 황홀하게 빛을 발한다.
밤이 날을 다시 베일로 씌울 때, - P136

말이 소리 나야 한다면, 칸막이를 통해 아주 가벼운 방식으로 반대편에 자국을 내라 반대편 서명 반대편 청문 반대편 연설 반대편 장악

순백함의 이후로는 언제나
그것은 자신을 지키고 있다, 하얗게,
능가할 수 없는, 색깔의 부재, 절대적, 지극히. 순수하다. 이를 수 없도록 순수하다.
만약 그 자체의 하얀그림자ㅡ 수의 안에서, 모든 얼룩이
사라진다면, 드리웠던 모든 과거 모든 기억이떠난다면, 이 말들의
사면과 힘을 통하여.
덮어씌우고, 장막처럼 두르고, 옷을 입히고. 자루집에 넣고. 수의를 입혀.
덧씌우고, 덧입히고, 막을 치고.
숨긴다. 급습한다.
변장, 은닉, 가면, 베일
불분명. 모호, 가리개, 침식, 은밀. - P145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도 없고 만족할 만한 것도 아니다. 평정을 가져올 만한 것. 평정이 너무 큰 요구라면, 그럼, 위로라도. 고통 없고, 적어도 아무 감각이 없는. 고통이 기억으로 번역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녀는 매 순간, 날짜, 하루의 때, 날씨, 일어났던 일이나 앞으로 올 일에 대한 간단한 요점을 설계함으로써 매번 시작한다. 그녀는 매번 이런 정화로 시작한다 마치 이 행동이 뒤따를 서곡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줄 것처럼. 그녀는 그녀의 감정과 동등한 낱말을 찾기 시작한다. 혹은 그것의 없음을. 동의어, 직유, 은유, 상투어, 부명, 유령어, 유령국가. 그녀의 여로의 지도를 기록하는 데에.
연장된 여정, 수평적인 형태의, 개념상으로는, 그것으로부터의 일부분은 아무런 표시의 증거도 없이 잘리었고, 이제는 서문에 ‘연장‘
을 ‘여정‘ 앞에 덧붙이는 것에 응해야 하게 되었다. - P152

미래가 없다. 다만 시간의 몰려옴이 있을 뿐. 설명할 수 없고, 공허하며, 무형의 시간, 그녀는 그것을 향해 움직이도록 기대될 뿐이다.
앞쪽으로 앞으로, 그리고 어떻게든 현재를 지나쳐버린다. 망각의 은총으로 스스로를 구제하고 있는 그 현재,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시킬 수 있었을까. 현재의 가시성이 없이.
그녀는 실제의 시간을 대치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녀는자신에게 시간을 앞에 전시하고 그것을 엿보는 자가 된다고. 그녀는죽음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올 수 없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녀는 - P152

죽음을 대치할 수 없다는 것을, 실제로 죽지 않고는 그것의 극복이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녀는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계속 살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치지 않고 계속 쓸 수만 있다면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 글을 씀으로써 실제의 시간을 폐기할 수 있다면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녀는 살 것이다. 그녀 앞에 그것을 전시해놓고 그것의 엿보는 자가될 수 있다면,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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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고되고 길었던 여정의 끝이
마침내 저 너머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여정의 끝에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마도 역려에 들어
잠시 몸을 누이겠지만
오래지 않아 주섬주섬
다시 여장을 꾸릴 것임을.
그래왔듯이 그 길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묻고 사유하고 걸을 것이다.

2023년 가을 삼성동에서
곽효환

흑백텔레비전 시절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은 프로레슬링이었고 내 유년의 우상이자 첫번째 챔피언은 프로레슬러 김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왜소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빡빡머리 김일. 그는경기 내내 수세에 몰리다가 막바지에 벼락같은 박치기를 선보였다. 번득이는 박치기 몇 번이면 그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큰 거구들이 사각의 링 위에서 나뒹굴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청년 시절 그는 당시 일본 최고의 프로레슬러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재일동포 역도산은 동경하여 무작정 맨몸으로 일본행밀항선에 올랐다. 우여곡절끝에 역도산을 만났지만 레슬러로서 체구가 작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던 그는 새끼줄을 칭칭 동여나무 기둥에 혹은 쇠기둥에 하루에도 수백 번씩 머리를 박고찧는 훈련을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머릿속엔 커다란 종소리윙윙 올렸고 이마는 터지고 찢어지며 쇳덩이처럼 단단하게
단련되었다. 그는 이기기 위해, 아니 링 위에 존재하기 위해 강하게 더 세게 상대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받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했지만 그의 머릿속엔 더 큰 종소리가 윙ㅡ윙ㅡ 울려 퍼졌다. 만년에 그는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박치기였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나는 시를 쓴다는 것, 혹은 그것을 계속한다는 것은 김일의 박치기처럼 필살기이지만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해야만 하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덜어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3


우수리강은 지났을까
밤 10시 45분 원동의 항구도시를 떠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홀로 깨어 칠흑의 밤을 서성인다
해삼위라 불렸던 옛 말갈과 여진과 숙신의 땅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야간열차는
간간이 멈추었다가 밤을 가르고 달린다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울란우데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그리고 모스크바까지
일곱 번의 시차를 넘나드는 9,288킬로미터
대륙의 북쪽 가르는 철길을 따라
가없는 시베리아 벌판이 열리고 또 닫힌다
하늘에는 별들 가득하고
내가 기억하는 별자리들을
하나씩 더듬고 짚어나갈 때마다
빽빽이 늘어선 하얀 자작나무숲이 펼쳐지고. 이 막막한 철길에 올랐을 붉은 얼굴들이
캄캄한 차창 밖으로 어른어른 흘러간다 - P11

기구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가족을 위해 더러는
독립과 민족과 자유를 위해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다시 더 멀고 더 깊은 대륙 저편으로
갔다가 돌아온 혹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그을린 붉은 얼굴들
나는 저 너머의 시간을 건너
오늘밤 섬섬히 빛나고 또 스러지는
몇천, 몇만 혹은 몇십만 년 전 떠났을
별들을 헤아린다 그리고
모든 것을 꽁꽁 얼려놓는 혹한과
질척질척한 혹서만이 한 몸처럼 존재하는
이 드넓은 붉은 벌판을
천형처럼 건너갔던 검은 그림자들이
어느 먼 시간을 건너
하나둘 별이 되어 돌아오는 검붉은 파노라마를 본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나도 그들도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 P12

먹먹한 슬픔과 울음으로 삼키는 잠들지 못하는 밤
열차는 먼 곳으로 끝없이 흘러가고
광막한 시베리아 벌판에 붉은빛이 든다
긴긴밤을 지나
멀리서부터 아침이 온다 - P13

장춘에서 백석을 찾다


회색 땅거미가 더디게 내려앉는
북방 도시의 여름 저녁
가난하지만 외롭고 높고 쓸쓸하고자 했던
사내가 얹혀살았다는
한평 남짓 토굴 같은 집의 흔적을 찾아 서성인다
옛 신경시 동삼마로 시영주택 35번지 
황씨 방,
이제는 동삼마로 33번지부터 42번지를 통합했다는
장춘시 남관구 장통종합대시장 건물 주변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의 남루한 삶이 
북적이지만
내가 찾는 이의 자취는 없다

초승달과 바구지꽃과 짝새를 사랑했으나
만주국 측량 보조원으로 혹은 세관원으로 살았던
가슴에 무서운 비애와 적막을 품고 요설 대신 고요히 생각하며 침묵하고자 했으나
동삼마로 토굴집과 러시아인 마을과
다시 동삼마로 작은 의원 건물 2층을 전전했다는
그는 어디에 있을까 - P39

만주국 수도에서 오족협화의 그늘 깊은 시대를 살다 간
최남선 염상섭 안수길 박팔양 박영준 그리고 그 사람
서럽고 고단하고 얼룩지고 더러는 굴절된
슬픈 그림자들이
쇠리쇠리한 석양빛 아래 붉게 흐려지더니
이내 뿌옇게 흩어진다

뿌연 먼지 속 한길이 설핏 열렸다 닫힌다
측량도 문서도 제국의 아전 노릇도 그만두고 석 섬지기 밭을 얻은 마을의 눈 녹는 
밭두둑을 걸어
촌부자 노왕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도랑을 건너고
나귀와 노새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잠시나마 홍에 벅차오르던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

뿌옇게 수증기 서린 조당澡塘의 사람들이 아른하다
털 없는 민중민숭한 다리를 한 물통에 담그고. 벌거벗은 몸을 녹이며
나주볕을 한없이 바라보며 생각하던 도연명과 - P40

은이며 상이며 월이며 진이며 하는 나라 사람들은
그 자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흙먼지 날리는 거리에서의
이 낯익은 외로움과 쓸쓸함은
그러나 조금은 우습고 무섭기도 한
이 맑은 슬픔은
이 먹먹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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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적지는 찾기를 위한 끊임없는 움직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의 영구한 유배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여기 이제 열여덟 해만에 돌아온 지금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전쟁을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고투 속에서 똑같은 목적지를 찾고있습니다. 우리는 둘로 잘렸습니다. 해방자라는 이름을 가진 추상적인적,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 그들은 이 잘림을 편리할 대로 내란이라고 불렀습니다. 냉전, 막다른 궁지.
나는 똑같은 군중, 똑같은 반란, 똑같은 항거 속에 있습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시위대 속에 갇혀 그 움직임에 따라 운반됩니다. 음성들이 울리고 한 목소리가 외치고 나면 많은 목소리가 물결처럼 메아리치고 나는 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오직 한 방향, 음성들이 울리는 단 하나의 방향으로. - P93

데. 모. 한 단어, 두 음. 너 미쳤니 가정교사가 그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교복입은 학생은 닥치는 대로 죽여. 아무나 무엇으로 너 자신을 방어할수 있지 그가 묻습니다. 오빠, 나의 오빠, 오빠는 이유를 대고, 죽어도 좋다고 합니다. 죽어도 좋아.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는 오빠를 때립니다. 가정교사는 오빠의 뺨을 때리고 오빠는 얼굴이 붉어져서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문에 기대어 섭니다. 나의 오빠. 오빠는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고 다른 모든 사람은 곧 오빠입니다. 당신은 쓰러지고 죽고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날 비가 왔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왔습니다. 비가 더 많이 더 여러 번 왔습니다. 후에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얘기가 들렸습니다. 오빠의 승리는 그후 여러 날 동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와 함께 섞였습니다. 나는 빗물이 땅 위에 떨어진 핏자국을 지우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른들로부터, 그 피는 아직도 얼룩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년 동안 비가 왔습니다. 오빠가 쓰러졌던 돌 보도의 핏자국은 아직도 짙게 남아 있습니다. - P97

18년이 지납니다. 18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여기에 왔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이 기억이 아직 생생할 때, 여전히 새로울 때, 이곳을떠났습니다.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 제2의 언어로 말합니다. 이것이내가 얼마나 멀리 있나를 나타냅니다. 그때로부터 그 시간으로부터.
나는 그때로 돌아가 지금 아주 정확하게 그 시간, 그 날짜, 그 계절, 그 연기 안개, 가랑비 속으로 정확하게 다시 돌아갑니다. 나는 모퉁이를 돌아서고 그곳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나와 마주치지 않습니다. 도로엔 온통 돌조각들, 눈을 비비려고 손바닥을 눈에 대자 눈물이 마구 흘러내립니다. 책가방을 멘 두 학동이 서로 팔짱을 끼고 난데없이 나타납니다. 그들의 하얀 스카프, 그들의 하얀 교복 셔츠, 하얀 가스의 잔여물 속으로, 그들은 울고 있습니다. - P97

나는 도로의 두 번째 모퉁이를 지납니다. 군인들은 녹색으로 나타납니다. 항상 녹색 제복의 위장 헝겊을 두릅니다. 나무들은 녹색 트럭을 위장시켜 당신을 자연과 절묘하게 섞고, 나무들은 당신을, 총을숨겨주어 아무도 당신을 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당신은 버스 옆 땅에 앉거나 기대어 몇 시간씩 몇 날씩 당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기다립니다. 틀린 움직임을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행동을 개시할 것입니다. 단 하나의 유일한 그것은 틀린 움직임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입니다. 그들의 잘못. 당신의 지루한 기다림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움직일 것이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그들에게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로, 당신은 탱크 위에 서있습니다. 다리를 정확히 몇 도의 각도로 벌리고 손을 총에 댄 채 총은 당신의 오른쪽 발과 똑같은 각도로 바닥에 세웁니다. 당신은 90도의 태양 아래 베레모를 쓰고 그늘도 없는 정문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도 없고 감히 움직일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 P98

당신은 당신의 맹세 조국의 이름으로 초소에서 근무하고 당신은 당신의 국가 당신의나라를 반동적인 침입으로부터 당신의 국민으로부터 방어합니다. 당신이 서 있는 동안 당신의 살갗은 당신의 제복처럼 짙게 그을리지만 당신은 듣지 않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듣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당신은 오직 먹잇감만 보이는 곳, 그들이 당신을 보지 못하고 당신을 볼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숨겨진 당신 마치 나무 속에서 움직이듯 군중 속에서 움직이는 당신 그들 안에서 움직이는 당신 당신은 눈을 감습니다. 찌르고 터지고 넘쳐흐르는물이 그들의 기억의 그림자를 씻기고 당신으로부터 당신 자신의 피, 당신 자신의 살이 파도가 빠져나가듯 당신을 통하여 완전히 완전히사라질 때. - P98

당신은
요만큼
꼭 요만큼 가깝다.
팔을 꼭 그렇게, 그만큼, 벌려보라. 벌리라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꼭 고만큼만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꼭 고만큼만
고만큼만
당신은 억압자체인 그 시간을 소일하려고 한다.
당신을, 구제하지 않는 시간. 당신을,
그 팽창으로부터, 차원이 없는, 그것의
경계로 정의되지 않는, 공기가 없고, 엷은.
단 하나의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잊어야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조차. 힘이 들지 않는.
힘이 들지 않아야 한다. 힘들지 않게
접근할수록 그것에 더 가까워진다.
멀리 떨어져서 시간 맞추기와 반대로
뒤에서부터 한 발짝 앞으로, 뒤로 나가기
후퇴. 뻗어나간 외곽선에서 물러나서.
상상된 것으로부터 분단에 접근하는
적어도 적도와 관계있는 숫자의 어디엔가,
적어도 모든 지도에 나와 있고 적어도 그들 사이에 장벽이 쌓이고
적어도 군대의 제복과 충들이 그들을 제지하고 있다.
상상의 경계선들.
상상 못할 경계선들. - P99

그녀에 대한 반역은 배반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 가능한 모든 이름, 서로 바꿀 수 있는 이름, 반역을 고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녀의 자신의 것. 낳지 않은 이름. 이름뿐. 실체가 없는 이름. 영원한, 영원, 끝이 없이.
언제나 있는 속임수들. 여기 악마들은 없다. 신들도 없다. 속임수의미로, 영구히 남는 시간은 없다. 스스로를 먹어 삼키기. 자기 자신을 삼켜버리는 것. 계속 사라지면서 자기 짝을 먹어버리는 곤충.
멜포메네를 충족시킨다, 뒤에서 번득이는 색깔, 보이지 않지만 뒤에서 그림자로 나타나는, 신들린 영사막을 멈추기에, 얼음처럼 금속, 유리, 거울처럼. 아무것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채택한다는 목적으로 그 누구보다도 그 자신의 것. 그녀를 계속 분산시키는 기계를 멈추어라. 멜포메네가 충분하다. 이 입으로부터 그 이름 그 낱말들 잘림의 기억을 씻어내어, 그녀를 한번불러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이 부름의 행동, 이 행동 하나로 그녀가즉시 입을 열어, 그녀를 한번 불러보도록, 별개의 말을 해야 하는 일없이. - P101

그녀를 보자마자 당신은 그녀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된다. 어떤 것이었을지 당신은 알게 된다. 당신은 비스듬히 눕고, 당신은 깜박졸고, 당신은 넘어지고, 당신은 전에 본 적이 있는 것들을 다시 눈앞에본다. 당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반복된다. 거기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여름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당신이다. 기다리고, 기다릴 줄 아는 그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어떻게. 기다리는지, 당신을 뒤따르는 남자로부터 몇 걸음 앞서 걷는 사람은 당신이다. 소나무 사이, 언덕들 사이, 꼭 세 걸음 그녀의 뒤를 말없이 걷는 사람은 당신이다. 그것은 침묵 속의 당신이다. 발설되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둘러싸고 있는그의 침묵, 침묵을 익히는 수련공이다. 오랫동안 지켜왔고, 끝나지 않는다. 즉시도 아니다. 곧도 아니다. 계속된다. 함축된다. 침묵. 말 없음.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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