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저집에서 닭죽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왔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대접이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묵어가면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게다가 후퇴하는 사람들이니 내색은 안 해도 떨떠름하게 대하던 주민들이 명절날이나 잡는 귀한 닭을 자진해서 잡는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인민군들은 별말도 없이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인민들을 확실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맛있는 닭죽을 얻어먹으면서 그는 새로운 사실에 무릎을 치고 있었다. - P266
낯익은 백운산 정챙이골에 다시 서자 감회가 새로웠다. 굶어죽기 직전 그들은 백운산을 떠났었다. 그때는 어떻게든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다시 오고 싶지 않던 곳이었는데, 그러나 아프고 지긋지긋한 추억일지라도 오히려 그 아픔만큼 그리움도 깊어지는 것일까. 꼭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10월 초, 백운산에도 서서히 단풍이 오르고 있었다. 이런 행군이 처음인 대부분의 대원들이 너무 지쳐 있어서 그는 대원들을 정챙이골에 남겨둔 채 몇 사람만 데리고 광양군당과 선을 대기 위해 광양 옥룡골로 떠났다. 여수와 광양에서 후퇴한 기관원들이 우글거리는 옥룡에서 백운산 지구당책으로 내정된 정귀석과 유격대 사령관으로내정된 유몽윤을 만난 그는 도당의 지구당 결성 결정을 통보하고 즉시 각군당과 연결하여 지구당 결성을 서둘렀다. 지구당 결성과 더불어 훈련방법, 월동대책, 투쟁방향 등이 제시됐다. 같이 왔던 인민군들은 기어이 후퇴를 하겠다며 지리산으로 떠나갔다. - P267
후퇴하는 마당이라고 관공서는 물론 학교까지 불태우는 초토화작전을 펴고, 사전 선전작업도 없이 과다한 현물세 징수를 해 인민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고, 그래서 만약 이 조국해방 전쟁이 수포로 돌아간다면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설사 이런 문제가 조국해방 전쟁 실패의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투쟁이 정당할 수 있는 것은우리가 고통 받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인민의 삶을 파괴하면서 어떻게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한 번의 실수가, 한두 사업 오류의 결과가 이토록 엄중하고 냉혹한 것인가. 그는 두려움을느꼈다. 군당 위원장으로서 내려야 할 무수한 결정들 앞에서 얼마나 신중하고 정확해야 할 것인가. 오류를 저지르고 나면 냉혹한 자기비판으로도책임질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남는 법이었다. 그 실패가 곧 역사와 인민의 퇴보요 슬픔이요 패배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 P283
그는 천천히 담배를 끄고 호롱불도 끄고 드러누웠다. 이제라도 늦지않았다. 몇 가지 사업의 오류로 인민들의 지탄은 받고 있지만 결정적인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인민들은 우리 편이다. 이제부터 나의할일은 바로 인민의 마음을 잡는 것이다. 첫날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하던 그날의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렇다. 인민의 마음만 잡으면 된다. 수십 번후퇴를 하더라도 인민들이 이 뜨뜻한 방구들처럼 우리를 녹여준다면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다. 지난 오류에 매달려 절망할 필요는 없다. 혁명가에게 과거란 없듯이, 과거가 쌓아올린 현재의 자리와 당장 싸워야 할오늘의 임무와 빛나는 내일이 있을 뿐이다. 등허리가 시큰거리게 뛰어다녀야 할 내일을 위해, 새로 인선해야 할 간부들의 이름이며 자꾸 떠오르는 수많은 일거리를 다 지워버리고 그는 애써 잠을 청했다. - P283
바로 눈앞에 두고 볼 수 없다는 것도 못지않은 고통이었다. 서로가자신의 일로 바쁘기도 했고, 간부쯤 되는 사람이 시간이 된다고 해서 함부로 그녀를 찾기도 어려웠다. 사랑을 하면서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원칙을 이탈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작은 원칙의 파기로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6.25 직후 해방 소식을 듣고도 동지들의 손에 처형당해야 했던 전인수만 해도 그랬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신경이 쓰이고 더 잘해주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게 분명한 임무를 맡을 때, - P299
더욱이 자신은 그 임무를 부여하는 사람일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사람을 제외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테지만, 그 임무는 해도 좋고 안 해도좋은 일이 아니라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고통을 외면하고 마음 편한 대로 사랑하는 이를 특별대우해서 임무를 해제시킬 때 순간이야 즐겁겠지만 기다리는 것은 더 큰고통이다. 사랑하는 이 대신 그 어려운 임무를 맡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과 똑같은 동지인 것이다. 사적인 감정에 얽매인 간부를 어느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소문이야 어차피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남녀문제만큼 민감하고 미묘한 게 또 어디 있는가. 문제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는가였다. 동지들 앞에 떳떳하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랑을 하기위해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 특별한 전투 없이 평온한 봄이 찾아왔다. 봄비가 몇 차례 내리고 나더니 불쑥 봄이 무르익은 3월 20일경이었다. - P299
물이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둣빛 새싹이 돋기 시작하고 그 새싹은나뭇잎으로 금세 무성하게 자랐다. 녹음이 짙을수록 빨치산의 생활은 안정을 찾아갔다. 군경도 전면적인 토벌작전을 중지하고 야산 수색과 보급로 차단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백아산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도당과각 군당도 서서히 자기 지역으로 거점을 옮겨갔다. 곡성군당도 5월 20일, 드디어 곡성 한복판에 있는 통명산 말골 골짜기(곡성군 오곡면 말골마을이있는 골짜기)로 전 군기관이 거점을 옮겼다. 후방교란 작전으로 매복습투쟁, 도로파괴, 통신망 교란투쟁 등과 보급투쟁은 쉬지 않고 진행되었지만 이렇다 할 큰 전투는 없었다. 비교적 조용한 여름이 깊어갔다. 여름과 함께 소련이 유엔에서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한번 해방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여순사건, 작년 여름의 광주 입성, 그 짧았던 해방의 순간들이 스쳐갔다. 의지만으로움직여지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 P313
미제의 완전한 한반도 점령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저지되었다. 세계의 복잡다양한 얽힘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고 부숴졌다. 그렇게 세상은 흘러가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거대한 역사의 덩어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확신하면서도 웬일인지 정체 모를 허전함은 마음 깊숙이 똬리를 틀고 사라지지 않았다. 생성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아름답고 분명한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에는 슬픔도 있는 것일까. 한인간, 그 개체는 죽도 인류는 발전한다는 위대한 진리 앞에서도 그는 가끔씩 섬뜩한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 - P314
따뜻하지만 어쩐지 쓸쓸해 뵈는 웃음을 지으며 김선우는 그를 내보냈다. 그제야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수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가. 김선우에게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겠는가. 그와 김춘옥이 남몰래 눈을 부딪치며 얼굴을 빛낼 때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한편으로는 위원장의 사랑을 축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두고 온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나 외로움으로 밤잠을 설쳤을지도 몰랐다. - P315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간신히 말을 마친 박영발은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졌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였다. 그는 깜짝놀라서 기요과장을 불러댔다. 깜빡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박영발은 말도못하고, 기요과장을 부르지 말라는 듯 힘없이 손을 저었다. 그러나 곧 기요과장이 뛰어 들어왔다. 한 마디도 더 말할 수 없을 지경까지 박영발은꼿꼿이 앉아 그와 얘기를 했던 것이었다. 놀라운 자기 절제력이었다. 이상하게 그는 박영발을 볼 때마다 잔뜩 독기를 품고 꼿꼿하게 목을 추켜세운 한 마리 독사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풀숲에서 그런 뱀을 만날 때면 두려움에 떨면서도 징그럽다기보다는 묘하게 화려하고 고독한 아름다움에넋을 잃고 지켜보곤 했었다. 박영발에게는 바로 그런 독기 서린 무서움이있었다. - P330
지금보다 몇 배는 끔찍했던 빨치산 경험을 한 그로서도 충격적이었는데, 경험이 없는 사람이야 충격을 넘어 엄청난 고통이요 절망이었을 것이었다. 휴전회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렇게 죽어가면서 언제까지버틸 수 있을 것인가. 세균전, 네이팜탄, 미국……….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스쳤다. 새벽길을 밟아 군당으로 돌아가는 길, 이슬에 젖은 숲은 아침 미명을 받아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 P331
2년여의 세월 동안 우리 모두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기차표 파느라고 정신이 없던 그가, 강제로 다가오는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를 짓누르는 그물에서 도망치고싶어 술이나 마시던 그가 어떻게 변해 있는가? 여수로 생선 떼러 갔다오는 생선장수 어머니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자기 인생에 분노하던 조용식이 얼마나 즐겁게 자기 인생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며 살다 죽어갔는가? 낭자한 머리가 온통 헝클어진 채로 자기 일의 의미도 모르고 밥이나 짓던 양봉순이 얼마나 당당한 인민의 전사로 성장했는가? 그는 그제야 오랫동안 짓눌러오던 조용식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웅성거리는 말골 골짜기에도 점점 뜨거운 태양이 내리찍기 시작했다. - P347
"비홉디다, 비호. 내 생전 그렇게 전투에 도가 튼 사람은 첨 봤소. 여자가 아니드라고요." 그 대원은 침을 튀겨가며 양봉순 칭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하튼곡성군당은 양봉순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무기까지 확보한 셈이었다. 얼마 후 양봉순은 남부군으로 떠나갔다. 양봉순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전투에 단련된 탄탄하고 거친 손길이었다. "위원장 동무! 꼭 살아계시씨요이. 구빨치 때부텀 얼매나 고생했는디꼭 살아서 좋은 세상 봐야지라." 눈물을 글썽이며 살아서 좋은 세상 보자던 양봉순은 그 뒤로 다시 볼수 없었다. 그것이 서로의 마지막 모습인 줄도 모르고 그들은 오랜 동지를 아쉽게 떠나보냈다. 그렇게 살아있자고 다짐했던 양봉순이 먼저 세상을 뜨게 될 줄은 그도 양봉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P362
묻혀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 최근 들어 간혹 한두 사람의 묻혀진 이야기들이 비밀스럽게 들춰지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흐름이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한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거대한 물줄기의 한 지류일 뿐이고, 그 작은 흐름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은 도도한 윈 물줄기가 제자리를 잡을 때뿐일 것이다. 후세의 평가가 어찌 됐든 전남도당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시기가 다가왔다. 얼마 전부터 정찰활동을 시작했던 수도사단의 대공세였다. 51년11월 말부터 다음해 2월까지 계속된 수도사단의 공세가 끝나자, 지리산으로 2천여 명을 파송하고 난 뒤에도 천여 명이 넘었던 전남도당은 불과3백 명으로 줄어 있었다. - P363
그렇게 소박하고 순박한 이였다. 다를 것 없는 그들이 서로 총을 겨누어야 했던 세상, 누가 그런 세상을 만든 것일까. 순박한 그 형사의 말대로그가 그 형사를 살린 거라면 한호현은 바로 그를 살린 장본인이었다. 한호현의 집안은 곡성에서도 괜찮은 편에 속하는 집으로 중학까지 마친 삼형제가 모두 함께 입산을 했다. 한호현은 그중 막내였는데 큰형도 사람이무던하고 좋았으며, 곡성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한호현은 그가 특별히아끼는 사람이었다. 인텔리이긴 했지만 당성도 좋았고 능력도 있었으며진지했다. 대중성이 없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사사건건 원칙을 들먹이고 나서는 바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김윤옥을알아보고 존경한 것도 바로 그와 한호현이었다. - P375
2월 29일 도당과 선이 닿았다. 석 달 만이었다. 곡성의 상황보고를 올렸더니 잠시 후 그에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전남도당 조직부부장으로 임명했으니 당장 백운산 도당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곡성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새도 없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몇하고만 급하게인사를 나누고 그날 밤으로 곡성을 떠났다. 만 1년 3개월간의 곡성 생활, 곡성 사람들은 그를 눈물로 떠나보냈다. 이별이 아쉬웠다.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무사할지, 지금까지처럼 철저하게 지형을 이용하면서 살아남아야 할 텐데………. 이 중에는 다시 못 볼 사람도 있을 터였다. 한 사람이라도 더 쳐다보려고 자꾸 뒤돌아보는 동안 어느새 사람들은 하나의 아득한 점으로 사라지고 사연 많았던 통명산도 멀어져갔다. - P376
박갑출도 전적으로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은 보랏빛 먼 날의 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간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이전과 같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당장 다시 오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후까지 싸우다 죽는 것과, 언제일지 모르지만언젠가는 다시 오고야 말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해 도시로 들어가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길뿐이었다. 그날이 언제쯤일까? 10년 뒤일 수도 있고 어쩌면 50년 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뿌린 싹이 해방의 그날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았고, 살아서 볼 수 없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좋았다. 단지 이결정적 시기를 해방으로 성공시키지 못한 쓰라림이 남는 것뿐이었다.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 P384
정지아, 지아. 이 이름에는 저주와 눈부신 은총이 함께 새겨져 있다. 저주받은 꿈을 ‘품고 붉게 타오르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어미와 눈 덮인 백아산을누빈 아비는 어쩌자고 하나뿐인 딸의 이름을 지아(智我)라고 붙였을까. 꿈꾸는 일은 쉽고도 아름답다. 그러나 꿈처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정지아는아직 쓰라리게 사랑하고 기억해야할 무엇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살이 에이는 문장으로 진술하고 있다. -방현석 소설가 • 중앙대 교수
나는 실천문학사 대표였던 1990년 계간 <실천문학>에 4회에 걸쳐 연재됐던 빨치산의 딸을 세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가 공안당국에 의해 구속되는 일을 겪었고, 작가 정지아도 수배되어 수년간 갖은 풍상을 겪었다. 세월이 흘러 이 책이 재출간되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정지아가 응어리진 가족사의 멍에에서 벗어나 지난 세월과화해하기를 바란다. 그를 아끼고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활발한 작품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이석표 문화유통북스 대표
남로당 중심의 진보세력들이 벌인 정치활동에서는 합법과 비합법 또는 무장투쟁이라는 복합적인 전술이 구사되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공개된 사실자료와 함께 이 운동에 직접 참여한 핵심인물들의 체험과 증언에 의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요구를 훌륭히 충족시키고 있다. 이들의 역경과수난의 가족사는 우리 현대사의 한 전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통일된 자주국가의 수립만이 그를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남식 현대사연구가
다 잊혀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 떠내려간 세월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대지의그림자가 사라지는가? 남북 어디에 있든, 또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한다. 전쟁은, 분단은, 역사는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존재의 망각‘ 상태에 빠진 이들에게 《빨치산의 딸》은 말한다. 이 통렬한 과거사가 우리의 오늘을 만들고 있다! 너무 실감 나서 숨이 막힌다.
김형수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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