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내가 바라보이는 야산의 공동묘지 위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쫑쫑 땋아 내린 자그마한 몸집의 소녀가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울다 지쳐 넋을 잃고 멀리 들판의 아지랑이 너머로 아른거리며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씩 그녀는 사랑하는 이라도 어루만지듯 정겨운 손길로 무덤을 어루만졌다. 봄에 구례 읍내에 있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그녀의 일과는 이 무덤가를 찾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 어쩌면 앞으로는 어머니를 못 찾아 올란가 모르것소. 나 일본으로 갈라요. 일본 가서 고학이라도 할라요. 일본 가는 증명 벌라고 호적등본도 떼다 놨소. 할머니한테 말도 일러놨고...... 어머니, 내일 또 올게요." - P105
그녀가 아무리 쌀쌀맞게 대해도 시집오기 전부터 그녀를 알았다는 남편 최규복지극정성이었다. 호리호리한 키에 거무잡잡한 얼굴의 최규복은 장난기가많아서 언제나 웃음을 몰고 다녔다. 유달리 식성이 까다로운 시할머니가밥상을 물려놓고 맘에 안 들어 인상을 쓰고 있으면 할머니 앞에서 곱새을 추고 여자 치마를 둘러 입고 한바탕 난리를 치러서 기어이 할머니를 웃기고 마는 최규복이었다. 베틀을 못 이겨 하는 그녀를 밀쳐내고 자기 솜씨를 한번 보여주겠다며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해준 것도 남편이었다. 곯아떨어졌다가 간혹 눈을 떠보면 남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의팔다리를 주무르고 있기도 했다.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괜찮은 사람일 뿐, 자기의 삶과 관계된 사람이고 집이라는 생각은 좀체 들지 않았다. 온몸의 힘을 모아 간신히 가마솥 뚜껑을 열어 밥을 푸다가도 불현듯 한숨이 나왔다. 내가 왜 여기서 밥이나 푸고 앉아 있을꼬. 공부를 하러 가야하는데……….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건가. 밥 하고 반찬 만들고 빨래나 하며 사는 것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거미줄에 걸린 나방은 최후의 힘까지 짜내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고죽는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느껴졌다. - P114
떠나기 전날 밤, 남편은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살아가기 힘들 것이오. 바보같이 나 기다리지 말고, 몇 해 기다려서오지 않거든 다른 사람 찾아가오. 내가 가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어질 텐데………. 당장 당신 외가로가 있으려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간다고 그녀의 삶이 달라질 리없었다. 남편이 떠난다는 애절한 슬픔도 없었고, 정말 다시 못 올 길을 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잠시 어디 다녀오겠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담담했다. 다음날 구례읍 경찰서 앞에서 징병 떠나는 사람들의 환송식이 열렸다. 말이 환송식이지 조선 사람 치고 남의 전쟁터로 끌려가는 자식과남편을 환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봄햇살은 유난히 화사하고, 수십개의 깃발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을 가득 안고 펄럭였다. 출정식이 끝나고 남편이 잠시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어제 저녁 같지 않게 남편은 평소의 당당한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 P115
"우리 여자들도 남자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근데 우리가 언제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여자라고 공부도 못했고, 부뚜막에서 밥을 먹어야 했고, 딸자식은 딴 집 식구니 입이나 줄이자고 철도 안 든 나이에 시집을 가야 했습니다. 우리들은 친정에서나 시집에서나 태어나면서부터 종처럼 살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여자들이 남자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으려면 봉건적 잔재와 계급을 타파해야 합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합니다." - P123
49년 3월 20일경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도 서서히 봄이 오고 있었다. 어떻게 보낼까 난감하기만 했던 겨울이 어느새 봄기운에 쫓겨 가고 있었다. 유격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봄은 가장 즐거운 소식이었다. 여전히 폭설이 내리는 날도 있었지만, 눈이 내려도 양지쪽은 하루만 지나면 질퍽하게녹았다. 그녀의 아이도 따스한 봄빛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잘 나오지도 않는 젖을 두 손으로 다부지게 움켜쥐고 빨아대는 아이를 가만히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편하게 집에서살던 때라면 최씨문중 종손이니 떠들썩한 돌잔치라도 치렀으련만 잔치는커녕 언젠지도 모르고 돌이 지났고, 굶기를 다반사로 했던 아이였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작은 이빨이 돋으면서 칭얼거리기도 하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꺄르륵 꺄르륵 숨이 넘어가도록 잘 웃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의 웃음을 봐도 암담할 뿐이었다. - P149
그게 바로 적들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나는무엇을 할 것인가? 그녀의 눈빛은 날이 갈수록 단단하고 매서워졌다. 키가 작아 동생을없으면 동생의 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던 어린 시절 종이가 없어 검정 숯으로 벽이란 벽마다 잔뜩 글씨를 썼다가 두들겨 맞던 여자, 공부가 하고싶어 일본으로 가려다 아버지에게 들켜 강제로 시집을 가야 했던 여자, 시집가기 싫어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던 그 여자는 이제 자신의 삶을 갉아먹던 모든 족쇄를 끊고 당당한 인민의 전사로 우뚝 서가고 있었다. - P152
낯선 능선에 홀로 서서 어디로가야할지 막막하게 서 있던 그녀는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화엄사골에 있을 광의면당을 찾기 위해 무조건 동쪽을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으니 무작정 해 뜨는방향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토벌대의 눈에 띌까봐 그녀는 좋을 길을 버리고 아사리 구멍(가시덩굴이나 잡목이 꽉 들어찬 숲을 헤치면서 능선을 몇 개 넘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작은 소릿길이 나왔다. 아무래도 산사람들이 다니는 길 같아 그 길을 따라 걷던 그녀는 무심코 앞을보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십 미터 앞이 온통 누랬다. 기백 명이 넘어 보이는 토벌대의 누런 군복 때문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그녀는 이미 산비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 P155
단오 이전에는 아무 풀이나 먹어도 독이 없다던 간부들의 말이 생각나냇가에 비죽비죽 고개를 내미는 고사리밥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참꽃(진달래)을 따먹기도 하고 닥치는대로 나물을 뜯어먹으며 최대한 쌀을 아꼈지만, 이십 일이 지나자 가져온 식량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사나흘간은나물만 한 솥씩 삶아 배를 채우거나 물로 끼니를 때웠다. 나물이 독했는지 계속 설사를 하는 바람에 탈진상태가 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처참한굶주림이 계속되었다. 쌀이 떨어진 지 열흘이 지나도 연락원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나물이고 물이고 입에 닿기만 하면 소태처럼 써서 아무것도 입에 댈 수가 없었다. 손발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차츰 눈이 어두워지고 힘차게 들려오던 물소리도 가물가물 멀어져갔다. 아이는 기를 쓰고 젖만 빨아댔다. - P158
하부는 상부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제일의 철칙이던 빨치산에게 구례군당의 조직적인 하극상 사건은 도당 전체에 한바탕 회오리를 몰아왔다. 구례군당을 지도하던 백운산 특각에서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당의 명령을 어긴 전원을 총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은 문제의 원인도 모른 채 원칙을 어겼다고 해서 무조건 총살할 수는 없다는 다수의 뜻에 따라 조사단이 파견되고 신오동 및 몇몇 지도부의 반당적인 행위가 샅샅이 밝혀져 그들이 제명되거나 부서이동을 당하는 것으로 사건은 막을 내렸다. 전남도당에서는 최초이자 최후의 내부 사건이었다. - P164
뒤돌아볼 경황도 없이 최정호의 뒤를 따랐다. 어디를 어떻게 해서 토벌대가 겹겹이 둘러싼 뱀사골 능선을 빠져나왔는지, 얼마나 걸었는지, 다음날 피아골 군당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다래덩굴 아래서의 그 숨막히던 기억만, 그 다래덩굴 아래만 그녀의 머릿속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아이가 죽었다는 걸 그녀는실감할 수 없었다. 슬픔도 서러움도 없었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저밑도 끝도 없는 막막함만이 아이를 낳으려고 쫓겨난 빈집을 찾아가던 날매섭게 휘몰아치던 눈보라처럼 오랫동안 그녀를 휘감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아이가 죽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항상 아이를 추스르던 버릇으로어깨를 으쓱하다 보면 등은 텅 비어 있었다. 언제나 정겹게 등을 짓누르던 아이의 무게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아이가 아무데도 없음을, 그녀의 등에도 품에도 다른 어디에도없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 P172
아이를 낳던 날 방구들을 파내던 경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태어난날부터 내쫓겼던 아이, 죽는 날까지 울음 한번 시원하게 터뜨려보지 못하고 쫓겨 다니던 아이, 네 앞에서 결코 부끄러운 어미는 되지 않겠다. 무엇이 우리에게 이토록 질긴 운명과 슬픈 이별을 강요하는가. 어미는 그것을 부숴버리고야 말겠다. 이 땅의 모든 어미가 밥을 달라고 우는 아이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야 말 테다.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나는 날 어미는 네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테다. 네가 큰 소리로 맑은 웃음을 터뜨려도 입을 막지 않고, 같이 웃으며 힘차고 뜨겁게 너를 안아줄 테다. 여기서 쓰러지는 건 아이를 두 번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내색하지않아도 아이를 잃은 충격은 역시 컸던 모양인지 뱀사골에서 좀 좋아지던건강이 다시 나빠졌다. 당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건강이 최우선이었다. 예전처럼 다른 동지들의 짐만 될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의 일꾼으로, 아니 아이까지 두 몫의 일꾼으로 이제는 제 할 일을 다하는 투사가 되어야 했다. - P173
성원 전체가 보급투쟁을 갔는데 그날 오후까지 살아 있는 게 확인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박종하의형박정하도 바구리봉부근에서 적에게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박춘산도 여기서 죽고, 그를 따라입산했던 여동생 박정숙도 며칠 뒤 전사했다. 부대 사람들 모두 어두운얼굴이었다. 하기는 더 이상 병력을 보충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니 전남도당의 최후가 머지않은 셈이었다. 그날 바구리봉에 걸린 태양도, 노을도유난히 붉었다. 동지들이 흘린 핏빛처럼. - P186
해방의 그날까지 우리가 살아있다면 그때쯤엔 웃으며 오늘을 기억할 수 있겠지. 어쩌면 혁명사업이란 소태 같은 것이 아닌가. 쓰디쓰지만 먹고 나면 몸에 좋은 것. 쓰디쓴 날을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해방은 기어코, 기어코 오고야 말 테지. 그러나 살아서 그 서글픈 추억을 되씹을 수 있었던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좋은 추억이 되겠다던 김선우도, 영원히 잊지 않겠다던 오금일도 54년 빨치산 최후의 무렵에 적과 대항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람 좋은 미소만 띠고 있던 구례의 ‘각시순사‘ 김병추도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다. 소태처럼 쓰디쓴 혁명의 물결에그들은 하나뿐인 생명까지 던져버린 것이다. - P190
고민이 있어 보이는 대원에게 일부러다가가서 말을 들어주기도 하고, 상담한 내용은 상부에 건의하여 반영하기도 했다. 자신의 활동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기일이 아주 좋았다. 이현상이 처음 했던 말대로 정말 그녀의 역할은 어머니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현상은 아이를 잃고 난 그녀의 마음을 그렇게 달래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녀로서는 입산한 지 두해가 다 되어가지만 아이 때문에 체계적인 조직생활을 해보지 못하다가처음으로 구체적인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당에 대한 죄책감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차츰 엷어져갔다. 너무 바빠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 P197
그 후로도 남편은 그녀가 하는 일마다 불쑥 나타나서 무슨 트집을 잡아서든 그녀에게 경고를 내리기 일쑤였고, 행군이라도 하는 날이면 가장 무거운 짐을 그녀에게 맡기곤 했다. 오기가 치솟아 그녀도 두말없이 남편이가져온 짐을 짊어졌는데 당연히 맨 나중에 처지기 마련이었다. 대열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걷다 보면 남편이 혼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나타나면 짐을 받아줄 생각도않고 자기 혼자 앞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또 처지면 말없이 기다리고, 보다 못한 박종하가 가끔씩 그녀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도 못마땅한 기색으로 보거나 달려와서 말리는 남편이었다. - P200
한 달이 지났다. 몸이 약해 늘 비실거리던 그녀도 이제는 웬만한 남자못지않게 행군을 하고 보초도 설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남편의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현상의 그 말없는 웃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렇게 조금씩 그녀를 단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녀를진정한 혁명가의 길로 한 걸음씩 이끌기 위해 더 큰 사랑을 선택한 것이었다. 남편의 사랑에 비하면 그녀의 사랑은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동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난생 처음으로 온몸이 떨리는 흥분을 맛보았던 자신의 가슴속에는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여자를 남자에게 종속적인 것으로 보는 세상의 편견이 숨어 있었음을 그녀는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그런 기대가 배신당한 아픔의 표현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이 자신의 실수를 눈감아주고 약한 자신을 보호해주길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곧그녀를 영원히 나약한 여자로, 남자의 종속물로 만드는 함정일 뿐이었다. 남편은 그녀를 자기의 아내로만 본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한길에서 살아갈동지로,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대우한 것이었다. - P201
이제는 무거운 짐을 지고도 대열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보초도 제법 노련하게 설 수 있게 된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남편 역시 자신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의 사랑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남편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솟구쳤다. 남편이 징병에 끌려갈 때 솔문에 매달려 휘날리는 일장기를 보고 착잡해했던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남편이 살아 돌아왔을 때 반가웠던 것도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어쩔 수 없이 함께 보낸 시간과 그 시간속에서 길들여진 정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 P201
낯설고 재미없던 세상이 그녀 곁으로 쑥쑥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남이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바둥대는 것 같던 지난날의 삶도 이제 그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소박당한 채 어린아이들을 거느리고밤마다 이야기책으로 외로움을 달래야 했던 어머니의 삶도, 그 어머니를버려야 했던 아버지, 여자니까 일본글 같은 것 배울 필요 없다며 결혼하기 싫어서 머리까지 잘라버린 그녀를 한 달 만에 시집보낸 그 아버지의삶도 이제 그녀는 흐르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여자가 공부하는 것조차 싫어 서둘러 시집보낸 딸이 남편과 함께 더 새로운 공부를 하며 이렇게 살고 있는 줄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아버지가 준 최고의 선물은 그러고 보면 서둘러서 지금의 남편에게시집보내준 것이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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