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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간다 ㅣ 창비시선 366
이영광 지음 / 창비 / 2013년 8월
평점 :
두부
이영광
두부는 희고 무르고
모가 나있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도 있고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 나는 두부도 있다
두부같이 무른 나도
두부처럼 날카롭게 각 잡고
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시집 [나무는 간다 (창비 2013)]-중에서
시인께서 두부집을 차린 우리를 위해 쓴 시는 아니지만^^
저희에게 맞춤한 "두부"를 시집을 뒤적이다 발견했네요.
'콩콩두부家'아니었다면 무심코 읽고 말았을 테지요.
관심을 갖지 않으면 쉽게 지나치는 것들이 처처에 있지요.
'두부'를 좋아해서 '두부'를 만들게 되었지만 이토록 무르고 까칠하고 예민한 녀석일 줄은 몰랐습니다.
매번 새롭고 경이로워서 만드는 사람을 겸손하게 해줍니다.
두부는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 나는"
신산한 세상살이의 다른 이름이고,
"날카롭게 각 잡"은 두부처럼 살기 위해서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을 가지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가는 삶의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월, 봄입니다.
순두부처럼 담백하고 깊은 봄,
환한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