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헌사
나는 여기 이것을 지금은 슬프게도 유골로 남은 오래전의 슈만과 그의 사랑 클라라에게 바친다. 나는 이것을혈기왕성한 인간/남자인 나의 피처럼 짙고 검붉은 진홍색에 바치며, 따라서 내 피에 바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것을 내 삶 속에 사는 땅의 요정들, 난쟁이들, 공기의 요정들, 정령들에게 바친다. 나는 이것을 내 가난했던 과거, 매사에 절도와 위엄이 있었으며 바닷가재를 먹어 본 적이 없었던 시절의 기억에 바친다. 나는 이것을 베토벤의 폭풍에 바친다. 나는 이것을 바흐의 중성색이 진동하는 순간에 바친다. 나를 졸도시키는 쇼팽에게 바친다. 나를 겁먹게 했으며 나와 함께 불 - P7
길 속에서 솟구친 스트라빈스키에게 바친다. 리하르트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에 바친다(이 곡이 내게 하나의 운명을 보여 주었던가?). 무엇보다도 나는 이것을 오늘의 어제들과 오늘에, 드뷔시의 투명한 베일에, 마롤로스 노브레에게, 프로코피예프에게, 카를 오르프에게, 쇤베르크에게, 12음 기법 작곡가들에게, 전자 음악세대의 귀에 거슬리는 여러 외침에 바친다ㅡ이들 모두가 나 자신은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내 내면의 어떤 영역에 먼저 도달했던 이들, 즉 내가 ‘나‘로 터져 나올 때까지 나에 대해 예언해 준 예언자들이다. 이 ‘나‘는 당신들 모두이다. 나는 그저 나만으로 존재하는 걸 견딜 수없으므로, 나는 살기 위해 타인들을 필요로 하므로, 나는 바보이므로, 나는 완전히 비뚤어진 자이므로, 어쨌든, 당신이 오직 명상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그 완전한 공허에 빠져들기 위해 명상 말고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명상은 결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명상은 그 자체만으로 목적이 될 수 있다. 나는 말없이, 공허에 대해명상한다. 내 삶에 딴죽을 거는 건 글쓰기다. 그리고ㅡ그리고 원자의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알려져 있다는 걸 잊지 말라. 나는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을 많이 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것조차 입증할 수 - P8
없으니, 그저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울면서 믿으라. 이 이야기는 비상사태 즉 재난 중에 벌어진다. 이책은 미완성인데, 왜냐하면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누군가가 내게 그 답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일까? 이 이야기는 약간의 화려함을더하기 위해 총천연색으로 진행되며, 맹세컨대, 내게도 그런 게 필요하다. 우리 모두를 위해 아멘.
(이 헌사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작성함) - P9
포르투갈어 homem은 ‘남자‘ 또는 ‘인간‘으로 번역 가능하다. 이를 남자로 해석할 경우, 이 헌사는 작중 1인칭 화자이자 남성 작가인 호드리구가 쓴 것이되며, 따라서 헌사는 소설의 일부로 편입된다. 반면에 homem을 인간으로해석할 경우, 본문보다 앞서 등장하는 헌사의 관례적인 특성에 따라 이 헌사는 ‘진짜 작가‘인 리스펙토르가 ‘소설 밖- 현실 속에서 쓴 것으로 인식된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가능하다. 따라서 이 헌사는 ‘현실과 픽션의경계‘가 아니라 현실과 픽션의 지분이 공존하는, 혹은 ‘현실이면서 픽션인‘ 독특한 공간 속에 있다. 그리고 이 공간은 「별의 시간」 전체를 감싸게 된다. "이 헌사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작성"했다는 안내 문구는 이러한특징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처럼 보인다. 헌사를 누가 썼는지 밝힌다는 건, 그것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리스펙토르 외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 P9
이 모든 말들은 이 작품의 제목으로고안되었던 것들이다
전부 내 탓이다 혹은 별의 시간 혹은 그녀가 해결하게 하라 혹은 비명을 지를 권리 혹은 .미래에 관해서는. 혹은 ㅈ블루스를 부르며 혹은 그녀는 비명을 지를 줄 모른다 혹은 상실감 혹은 어두운 바람 속의 휘파람 혹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혹은 앞선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싸구려 신파 혹은 뒷문으로 조심스럽게 퇴장 - P11
온 세상이 ‘그래‘로 시작되었다. 한 분자가 다른 분자에게 ‘그래‘라고 말했고 생명이 탄생했다. 하지만 선사 이전에는 선사의 선사가 있었고 ‘아니‘와 ‘그래‘가 있었다. 늘 그랬다. 어쩌다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주가 시작된 적이 없음을 안다. 정말이지, 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단순함에이를 수 있다. 나는 질문들이 있고 답이 없는 한 계속해서 글을쓸 것이다. 만일 세상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난다면,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만일 선사의 선사이전에 이미 말세의 괴물들이 존재했다면? 이 이야기 - P17
는 지금 존재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생각은 행위다. 느낌은 사실이다. 이 둘을 합치면내가 된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을 쓰고 있는 사람. 신은세상이다. 진실은 언제나 내적이며 설명할 수 없는 점촉이다. 나의 가장 진실한 삶은 알아차릴 수 없고, 지극히 내적이며, 어떤 말로도 정의할 수 없다. 내 가슴은모든 욕망을 비운 채 그 자신의 최후 혹은 태초의 고동으로 축소되었다. 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치통은내 입 안에 날카로운 고통을 남기고 있고, 그렇게 나는귀에 거슬리는 고음으로 당김음 선율을 노래한다ㅡ나자신의 고통을. 나는 세상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 일에는 어떠한 행복도 없다. 행복? 나는 그보다 멍청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건 저 북동부 여자들이 지어낸말이다. - P18
나는 이 순간 조금은 겸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는 너무도 외적이고 분명한 서술이 독자들을 침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생명력 넘치는 피가 천천히 흘러나와 금세 젤리처럼 출렁거리는 덩어리들로 응고될 수도 있다. 이 이야기가 언젠가 나 자신의 응고물이 될까?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만약 여기에 진실이 들어 있다면 -물론 이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긴 해도 진실하다-모두가 그것을 통해 자기안에 있는 진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이기 때문이며, 또한 금전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영혼이나 열망의 가난에 허덕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황금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결핍하고 있다: 연약한 본질을 결핍한 사람들. - P19
그래. 하지만 무언가를 쓰기 위해선 단어를 기본재료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이 이야기는 문장을 만드는 단어들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단어와 문장 너머에 있는 은밀한 의미가 흘러나올 것이다. 물론 모든 작가들이 그러하듯, 나또한 과즙이 많은 단어들을 사용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나도 현란한 형용사들, 알찬 명사들, 너무도 날렵해서 허공을 뚫고 날아가서는 곧바로 행동에 돌입할 것만 같은ㅡ말은 행위니까, 그렇지 않은가?ㅡ동사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단어에 장식을 달지 않을 작정인데, 만일 내가 그 여자의 빵에 손을 대면 그 빵이 황금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3
어쨌거나 내가 글 쓰는 방식을 바꾸려는 것처럼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걸 쓸 뿐이다. 나는 전문 작가가 아니다ㅡ나는 이 북동부 여자에대해 써야만 하고, 그러지 못한다면 질식할 것이다. 그녀는 나를 비난하고 있고, 나 자신을 방어하는 길은 그녀에 대해 쓰는 것뿐이다. 나는 대담하고 가차 없는 화가의 붓질로 글을 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사실들을 불변하는 돌들처럼 다룰 것이다. 비록 내가 현실에 대해 추측하는 동안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종소리가 울려퍼지길 바라지만 말이다. 그리고 만약 천사들이 마치투명한 말벌들처럼 나의 뜨거운 머리 주위에서 퍼덕인다면, 그럼 더 쉬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 머리는 결국 객체로, 사물로 변하길 원하니까. 정말로 행위가 말 너머에 존재할까? 하지만 나는 글을 쓸 때 - 사물들이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알려지게 한다. 개개의 사물은 하나의 말이며, 해당하는 말이 없는 경우엔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그걸 만들라고 명령하는 건 바로 당신의 신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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