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첨지는 화증을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일원어치를 채워서 곱빼기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칸을 빌려 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한 달에 일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김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 안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리었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 하는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 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 P139
혹은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일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 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무시무시한 증을 쫓아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올라온 먼짓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 P139
방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차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뭇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빡빡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하였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붙여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 P140
등잔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 글 아는 사람 구실 정녕 어려워라
구한말 한일합병에 항거하며 자결한 황현의 절명시 제3수의 일부이다. 요즈음이야 소설가든 기자든 글쓰는 일이 생업이 된 사람들에게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물으면, 속으로는 이제 그럴싸한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할지라도 겉으로는 말짱하게 시치미를 떼면서 "웬 그런 부담스런 말씀을......" 하면서 계면쩍어할지도 모르겠다.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같은 문고판도 낡은 책이 되어 내 서가의 구석에 얼룩진 채 숨어 있으니까. 그렇다고는 하여도 우리네 살림처럼 청천 하늘의 별만큼 수심이 가득한 고장에서는 혼자서 붓을 들고 유유자적하기가 마음 편한 노릇은 아니다. - P143
나는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도 좋아하지만 역시 운수 좋은 날」과 「고향」 같은 작품이 현진건 단편의 정수라고 보았다. 「운수 좋은 날, 은 어쩐지 손님도 잘 걸리고 돈도 다른 날보다 많이 벌리는 한 인력거꾼의 행보와 함께, 집에서 홀로 앓아누운 아내의 이야기가 겹쳐서 진행된다. 그것은 마치 스릴러 영화같이 불길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왠지 재수 좋은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이 믿음직하지 않고 불안한 까닭이다. 드디어 아내가 그렇게 먹고 싶다던 설렁탕을 신바람나게 사가지고김첨지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허망하게도 안 나오는 젖을 빨며 울다지친 아기를 안은 채 흰자위를 드러내고 절명해 있다. 식민지 사회의 민중은 모두가 노예에 지나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오늘 운수 좋은 누군가는 동포에게 자기의 불운을 전가시키거나 결국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유예시키고 있을 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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