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구워낸 단단한 소금 같은 그의 시편들은 천근 슬픔의 천일염을 녹이고도 남는다. 사라지는 것도 존재의 한 방식이라고 놀라운 말을 하는 그는 몸을 열어 시를 받은 타고난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생취가 있고 생의가 있어, 시의 솟는 힘으로 마음을 불끈 들어올려준다. 그의 시는 벼랑을 품은 자의 장엄이며심지 깊은 은자전(隱者傳)이다. 세상이 그를 까맣게 잊어 마침내 고요의 달인으로 등극하고 싶었다고 쓸 때 그의 시는 고요가 세운 한 채의 요사채며, 땅에서 주저앉은 자 땅에 뿌리를 내린다고 쓸 때 그의 시는 일획으로 직립(直立)하는 한그루 금강송이다. 고요가 그토록 공들여 뜸들이니⋯ 법향(法香)처럼 만리나 퍼질 그의 시여! 우주의 살에다 한 나라를 세우시라. 천양희(시인)
장석주 시가 도달한 이 처사풍(處士風)은 시인이 감당하고 있는 고독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윽할 만큼 그윽하다. 그의 마음이 가는 길은 말벗 하나 없는 외로움의 길이면서 또한 무구한 유희와 도취의 길이다. 투명한 ‘혼자임‘ 속에서 단련된 그 마음은 가을 물고기처럼 슬프고도 자유롭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그모든 것이 또한 영혼의 슬픈 허영일 뿐임을 그는 모르지 않는다. 허나 어쩌랴, 그것이 모든 시인됨의 천형인 것을. 김사인(시인)
□시인의 말
내 고혈을 빨고 비명마저 싹싹 핥고 그래도 미진한지 두리번거리는 너, 고문기술자, 악덕 포주, 끔찍한 세리여!
졸렬하고 비루한 걸 오래 잘도 물고늘어졌다. 네가 아니었다면 영혼의 무게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으며, 꽃 피어나 괴롭고 황홀한 세월을 어찌 견딜 수 있었으랴! 봄 모란꽃 가슴에 품고 가을 매 눈에 담고 더불어 예까지 왔으니, 그동안 네게 떼어준 약간의 피와 땀방울과 푼돈의 시간들은 후회하지 않겠다. 여명의 시각은 내 것이 아니다. 내겐 해질녘의 긴 그림자 밖에는 없다. 쥐어짜도 더는 나올 게 없으니, 이제 그만, 내 머리끄댕이를 놓아다오.
시여!
수졸재에서 이천오년 여름에 쓰다
단감
단감 마른 꼭지는 단감의 배꼽이다. 단감 꼭지 떨어진 자리는 수만 봄이 머물고 왈칵, 우주가 쏟아져 들어온 흔적,
배꼽은 돌아갈 길을 잠근다. 퇴로가 없다. 이 길은 금계랍 덧칠한 어매의 젖보다 쓰고 멀고 험하다. 상처가 본디 꽃이 진 자리인 것을, - P14
태양초
붉고 메마른 것이 우리에게 왔다.
금햇빛을 쪽쪽 빨아먹고 혈소판마저 투명해졌구나. 가난하고 천하면서 뻣뻣한 것, 너는 본향을 잊었구나.
비릿한 게 마르면 가슴 더 붉어지고 몸뚱이는 가벼워지는가! - P15
수그리다
바람 섞여 진눈깨비 치는 저녁, 흘러나온 불빛이 코뚜레 뚫은 송아지처럼 길게길게 운다.
길 나서지 못한 사람 살고 있다고, 가는 저녁 다시 못 온다고, 다정한 몸 속으로 울음이 뭉툭하게 밀려든다.
저녁마다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들 속에서 무릎 아래 그림자 키우는 누군가의 재개봉영화 같은 생이 밀려간다.
누군가 어둠 쪽으로 몸 돌려 꽃피는 머리를 수그린다. - P22
오동나무
먹물 찍어 힘차게 세로로 내리 그었다. 오동나무는 일획으로 직립直立한다.
마른 풀에 서리 앉은 아침, 청어떼 잔구름을 끌며 오동나무는 개간지 위에 서 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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