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의 잣나무 숲에서 가장 막강한 적은 청설모입니다. 쪼르르 나무로 올라가 송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에 잣송이를 잡고 까는 모습은 대단하지요. 저는 그런 청설모가 너무 얄미워서 ‘호이‘ 하고 놀래줍니다. 그러면 잘 까놓은 잣송이를 그만 떨어뜨리지요.
그렇게 해서 한 두송이쯤 빼앗으면 우리 집에서 겨우내 수정과에 띄우는 고명으로 쓰기에는충분한 잣알이 나오니까요. 몇 개나 되냐구요? 주먹만한 잣송이 하나에는 비늘조각 사이마다 2개씩, 총 200개나 되는 귀여운 잣알이 들어있답니다. - P99
그런데 왜 남쪽의 잣나무들은 열매인 잣을 열심히 만들지 않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살기가 너무 편해서입니다.
극복해야 할 추위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은 전혀 없고 따뜻하고순한 날씨 등 주변 조건이 너무 좋다보니 어려움을 견디며 종족을 보전하려는 본능이 사라진 것이죠.
거꾸로 오염이 심한 장소의 소나무들은 솔방울을 다닥다닥 달고 있어 이를 환경오염에 대한 지표로 삼고 있을 정도(남산에 올라 소나무들을 한번 보십시오)입니다. 나무 입장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껴 죽기전에 종족을 많이 퍼뜨리려는 생각이지요. 물론 원칙적으로는 이러한환경의 변화가 생리적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친 것이고요.
이러한 잣나무들을 보니 마치 ‘지금 생활이 편안하고 재미있는데구태여 스스로를 구속하고 희생하는 결혼이나 출산을 왜 하느냐‘며인생을 즐기려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랑 참 많이 닮아 보입니다. - P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