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

1981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2015년까지 영화현장에 있으면서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일곱 작품에 참여하였고, ‘목사‘에서 단편 극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있다. 시집 『연애의 책』 『식물원』 『작가의 탄생』이 있고 산문집 『디스옥타비아』 「산책과연애」 「거짓의 조금』을 썼다. 난설헌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아가며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로르 아들레르

어제는 장 아메리의 「자유음」 조판 원고를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짧은 글을 써서 출판사에 송고했다. 사람은 언제든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유죽음』은 참으로적절하고 또 가혹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살아야 한다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고?" 장 아메리의 물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나의 의문과 일치한다. 어째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지? 나는 여지껏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살아왔다. 아무 이유 없이 살아야 한다니. 그리하여 결국에는 태어난 것을 원망하면서. - P12

어쨌든 매일 죽지 않고 살아 있으려고 노력한다. 살아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요즘은 질문의 국면이 바뀌었다. 매일 쓸 수 있을까? 혼자서 멍하니있다가 불쑥 나에게 질문한다. 일단 쓰는 것을 시작하고나면 매일 쓸 수 있을까? 대답은 없다. 매일 쓰는 일은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두려운 것에 나는 반응하지않는 사람이다. 그러면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두려움과 눈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 - P13

나는 시를 쓴다.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기 위해 시를 쓴다. 그러므로 시는 내게 인공적인 행위이다. 다른 세계는 어쩌다갑자기 생겨나지 않고 내가 애써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면 좋을 텐데, 힘들어서하는 말이다. 여기에 없는 다른 세계를 만드는 건 여기에 있는 나를 전부 소진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만든 세계에서 여기서는 절대로 하지 못할 경험을 한다. 그래서 그만두지 못한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계속해서다른 세계를 찾는다. 나는 여기서의 삶만으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다. - P25

살아 있는 사람에게 행운처럼 주어지는 여행. 나는 살아있어서 여행할 수 있다. 죽어서도 여행할 수 있다면 나는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나에게 죽음은 태어나기 전과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서도 여행할 수 있다면 나는 죽은 자로서 기꺼이 여행할 것이다. - P76

나는 왜 하노이에 왔을까. 왜 하노이일까. 어째서 자꾸만하노이의 골목길을 걷는 것일까.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내가 있고 싶은 곳과 있고 싶지않은 곳을 알기 위해서 온 것이다. 나는 밝은 곳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싶어 온 것이다. 무엇도 나를 압도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에도 압도당하지 않고 단지 계속해서 살아보자는 마음 하나에만 순순히 이끌리고 싶어 온 것이다. 아름다운 것도 싫고 추한 것도 싫고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이나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산물들에 감탄하는 것도 싫어서 온 것이다. 나는 그저 그늘이 아닌 밝은 곳에서 더이상 화내지 말고 분노에 차 있지 말자고 사십 도의 햇빛 아래 서서 다짐했다. - P82

삶이 기다리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삶이 경험하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면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무언가를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일을 살아 있는 동안에 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인간은 나이가 들고 육체가 쇠락하고 병들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 P90

슬픔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슬픔은 충만한 사랑을 알아본다. 사랑을 먹고 자란 슬픔은 이내 충만해진다.


나는 슬픔이 없는 사람을 경멸한다. 아니, 슬픔을 모르는사람을 경멸한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무례하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옳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은 중요하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무례하지않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틀림을 가늠해본다.  - P91

픔이 있는 사람은 모든 말을 내뱉지 않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적절히 타인과 거리를 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매사에 조심한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줄 안다. 그래서 슬픔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타인을 위로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 슬픔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상처는 낫고 슬픔은 머문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기로 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슬픔은 삶을 신중하게 한다. 그것이 슬픔의 미덕이다.


여기서 슬픔은 고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고통은 비탄이며 비탄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파괴하고 세상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을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 P92

고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음의 고통을 여전히 품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은신처로 몸을 피하는 것만으로 절망을 치유하는 사람은 없다. 방안에서는 아무것도 잊히지 않는다.
-올리비에 르모

나는 내가 또다시 나를 죽이고 싶어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맛있는 것이 잔뜩 있고 날씨가 따뜻한 곳으로, 하지만 여행답게 그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은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있었다.


나는 자연에 완벽히 압도되어 다시 자신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들의 삶을 읽는 것은 전율 그 자체였다. 나는 여러 번 반복해 - P100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리는상상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내가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과 끝을 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여행이라는 것을 하면서 내가 가진 나에 대한 살의를 끝장내고 싶었다. - P101

그것은 그저 살아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죽고 싶다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살아있다는 생각도 그만 하고 싶었다. 그냥 살고 싶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잠시만이라도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살아있고 싶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일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말없이 그를 안아주고 싶다. - P101

닌빈의 도로는 산을 따라 굽이지고, 가로수가 많고, 여느 도시의 도로처럼 차나 오토바이가 넘치지 않는다. 달리다보면 가끔씩 차 한 대 오토바이 한 대가 옆을 스쳐갈뿐이다. 넓은 평원에는 농을 쓴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농사를 짓고 있다. 가끔 무리를 진 소들이 꼬리를 흔들며평원을 거닐고 있기도 하다. 어느 곳은 사람이 갈 수 있어 보이고 어느 곳은 사람이 갈 수 없어 보인다. 나는 그 모든 땅의 넓고 광활함이 복받쳐왔다. 아름다운 산들과 평원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트레킹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나는 그들이 몹시 멋져 보였다. - P124

기차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기억의 끈이 끊어진 것 같았다. 전에 없이 맑고 개운한 기분이었다. 몸이 너무 피곤한 나머지 금방이라도 곯아떨어질 것 같았는데 잠 같은 건 전혀 오지 않았다. 기차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폭우가 쏟아지는 닌빈의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고 있었다. 고통은 어째서 저절로 물러나지 않을까. 이렇게 애를 써야만 저만치 물러서서 나로부터 작별을 고하는 걸까. 힘든 일들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면 안 되는 거야? 꼭 그것과 내가 분리될 수 있도록 어떤 수고로움이든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인간은 참 이상하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하게 지어진 생물이라니. 나는 불평을 하면서도 닌빈에 두고 온 나의 과거에 또 찔끔 눈물이 났다.


닌빈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운 닌빈은 나의 고통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여기에 두고 가면 돼.


넓은 땅이 내게 말해주었다. - P127

불행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불행이대단히 악질적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된 불행이 사건의 종결과 함께 끝이 난다면 인간은 좀더 단순하고 가뿐하게 이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은 반드시 남는다. 불행을 낳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불행은 남아서 마음을 갉아먹으며 자라난다. 불행은 마음속에 담겨 있는 언어를 배우고 감정을 배우고 바깥 세상을 익힌다. 성숙한 불행은 인간에게 말을 걸고 감정을 조종하고 바깥 세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속삭인다. 성숙한 불행은 환청이자 환각이 되어 나와 함께 살아간다. - P135

불행은 내게 말한다. 저기엔 아무것도 없어. 불행은 눈앞의 것을 지워버린다. 불행은 하늘을 지우고 구름을 지우고 산을 지우고 나무를 지우고 강을 지우고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지운다. 인생이 아무 대가 없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런 뒤 자신만을 보라고불행은 속삭인다.


불행은 어두운 밤길과 같다. 가로등도 없고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어둠뿐인 밤길과 같다. 어디선가 풀섶을 뒤척이는 소리가 나고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나를 덮칠 것만 같아도 보이는 것은 없다. 누군가 쫓아오는 것만 같아뒤를 돌아보며 속도를 내 걷다가 넘어지길 반복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가야 한다. 아주 작은 희망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라고 다그친다. 언제 날이 밝을지도 알려주지 않고 언제 두려움에서 벗어날지도 알려주지 않고 희망은 일단 계속해서 가라고만 한다.


불행한 사람에게 희망은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불행이 그저 있는 것처럼 희망도 그저 있다. 그저 있으면서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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