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모레아 기행』에서모뎀바시아 편을 읽어보면 모넴바시아를 아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믿을 만한 안내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에 따라 모넴바시아를 조금 더 파악해보면 이렇다.
어떤 사람들이 여기 살았을까? 바람, 바다, 외로움, 가난이 망치가 되어 영혼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것을 견딘 사람들. 이곳에 없는 것?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속삭일정원. "여기는 비옥한 땅이야. 이곳을 잃으면 안되니까 고개를 숙이고 폭군과 화해하자!"라고 말할 경작지. 있는 것? 무자비한 바다. 할 수 있는 일? 어부, 무역상, 해적. 비잔틴 제국과의 관계? 비잔틴 황제들은 이렇게판단했다. "걔들은 그냥 놔둬" (그들은 오직 독립,독립만을 원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모넴바시아 여행기를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 P160
폐허에서 여행자는 희망 없는 투쟁에 기꺼이 뛰어드는 영혼을 본다.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않고 치열한 투쟁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영혼을 보는 것이다. 그 영혼은 승부를 떠나서 마치 게임을 하듯 그 투쟁에 몰두하기 때문에 즐거움을느낀다. 그리하여 내 영혼은 이렇게 맹세한다. 다시는 내 마음에 인생의 환락, 도취, 근심으로 부담주지않으리라. 나는 허공에 튀어 오르는 불꽃같은 상태로 내 영혼을 보존하리라."
니코스의 충실한 독자였던 나는 이 문장이 낯익어도 너무 낯익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일생에 걸쳐 아무런 대가도 보상도 바라지 않고(대가나 보상 때문에 하지 않게 되는 일이 너무 많으므로) 용감하게 삶 속으로 돌진하기를 원하고 또 원했다. ‘튀어 오르다‘ ‘솟구쳐 오르다‘는 그가 특히 좋아하는 표현으로 그는 어디 가서 뭘봐도(꼭, 모뎀바시아가 아니어도) 허공에 튀어 오르는 불꽃이 되고 싶어 했지 납작 엎드리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여행자는 풍경을 보는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본다고 한 것은 프루스트였던가?). - P161
그때부터 마법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조금 차리고 처음에는 눈동자만 나중에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위를 봐도 옆을 봐도 아래를 봐도 모두 다 별이었다. 어떤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 없는 꿈같은 우주가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크고 선명하고 고요하고 가까운 밤하늘은 처음이었다. 꼭 별이 나를 하늘로 끌어당긴 것처럼 내가 땅이 아니라 땅과 하늘의 중간계에 붕 떠 있는 것같았다. 느닷없이 찾아온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나는 길잃은 나방 한 마리와 함께 한쪽 발은 맨발인 채로 별에 에워싸여 있었다. 저 멀리 내가 저녁을 먹던 식당들도 불빛하나씩만을 켜둔 채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 외로운 불빛아래 잠든 사람들 머리 위에도 커다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바위도 거대했고 바다도 거대했고 하늘도 거대했다. 지상의 거대한 공간들은 별들이 가득한 영원으로 통하고있었다. 우리 자아 너머의 세계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인간의 마음도 별 하나를 품을 만큼, 우주를 품을 만큼 거대할지 모른다. 너무 애틋했다. 너무 경이로웠다. 숭고했다. 서로 오염시키고 상처 입히고 온갖 일을 엉망진창 벌이면서도 어찌어찌 각자 인간의 꼴을 갖춰가는 세속적인 - P168
삶과 천상의 삶이 이곳에서는 아주 멋지게 만나고 있었다. 바로 이런 별밤 때문에 인간들은 죽은 사람들이 별이되었을 거라고 상상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크고 가득하고 눈부신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할 것이다.
방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꿈결처럼 은하수를 타고 흘러들어온 것 같다. 내가 방에 들어오기전 나방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향해 작은 별처럼 날아갔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기쁨을 느끼기에 충분한데 도대체뭘 그렇게 많이 원하고 괴로워했단 말인가. 모든 밤마다별은 반짝이는데, 별이 가득한 우주가 뭔지 정체를 알 수없지만, 별은 신비로운 에너지를 흘리면서, 무한을 상상하게 하면서 그냥 거기, 그 모습으로 있는 것만으로 좋은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밤하늘처럼 큰 세계가 내 마음을잡아끌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렇게 놀라고 감탄해야만 가벼워진다. 감탄이 나의 힘이다. 영원한 행복은 없지만 영원한 기쁨은 있다. 그날의 밤하늘은 나에게 스며들었고 내가 사는 동안 내내 나와 함께할 풍경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나의 습관이고 취미고 쾌락이다. 늦은 밤 퇴근할 때 - P169
마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은 적이 없고 그때마다 모뎀바시아 밤하늘의 기억이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함께 펄럭인다. 내 마음의 일부분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내 몸의 일•부분은 한쪽 발은 들고, 황금빛 나방을 든 한쪽 팔은 하늘을 향해 뻗은 자세로 영원히 굳어 있다. 그날 밤의 하늘은이 세계에 다가가는 나의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내삶에 경이로움을 섞어놓고 싶어졌다. 경이로움은 내 안에없던 빛이 내게로 흘러들어오는 것이니 이제 나는 나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절대로 자기 홀로 창조적이지 않다. 자율성에는 한계가 있고 세상에 나와는 다른 생각, 나와는 완전히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행운이다. 사방 어디를 봐도보이는 것이 나뿐이었다면 나는 지금쯤 ‘나나나나‘로이어지는 가시철조망에 찔려 죽었을 것이다. 나를 변하게하는 것은 고백도 아니고 내면의 응시도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생명, 다른 이야기다. 내가 자꾸만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그날 밤의 경이로움과 같은, 세상에 숨겨진 경이로움과 마주치는 그 우연을 기대해서다. 우리는시간과 우연의 자식들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시간과 우연을 초월해서 살아남는 경이로운 것들,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한 불멸일 것들, 우리를 끝까지 기쁘게 인간이게 하는것들도 있다. 그것들도 별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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