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유책(有)‘, 즉 ‘사람마다 책임 있다‘는 표어는 차라리 감동적이다.
‘거리 청결 인인유책‘ ‘문화재 보호 인인 유책‘ ‘문명 창달 인인유책‘
이에 나도 하나 덧붙여본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책임 있다.
‘민족 장래 인인유책‘ ‘문화 창달 인인유책‘ - P148
일본의 문화가 한반도의 영향 하에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소화하여 이룩한 문화의 내용은 일본의 특질이다. ‘죄다 우리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 문화를 성숙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마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독일과 네덜란드로 퍼져 유럽의 르네상스 문화로 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의 문화는 중국, 한국, 일본이 주요 구성원이 되어 유럽의 문명과 맞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답사기에서 나는 한국과 일본, 두 문화를 계속 비교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정원과 우리나라 정원은 너무도 다르다. 일본은 나무를 일일이 가위질하며 인공미를 극대화하고 한국은 자연미를 더 존중한다. 대구 삼격동에 사는 한 사업가는 일본과의 거래가 많아 아래 윗집에 한국식 정원과 일본식 정원을 꾸며놓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 - P158
다기에 한번 이 댁을 답사해보았다. 주인에게 정원 만들 때 얘기를 들어보니 두 나라 정원사는 돌 다루는 자세부터 확연히 다르더라는 것이다. 정원에 돌 10개를 깔아놓는다면 일본 정원사는 9개를 반듯이 놓고 나서 1개를 약간 비스듬히 틀어놓으려고 궁리하는데, 한국 정원사는 9개는 아무렇게 놓고 나서 1개를 반듯하게놓으려고 애쓰더라는 것이다. 일본은 인공미, 한국은 자연미를 그렇게 구현하는 것이다. 일본과 우리는 같은 문화권에 있으면서 이렇게 다르다. 한일 두나라가 이룩한 각자의 문화적 결실은 중국의 그것과 함께 동아시아 문화의 내용을 이룬다. 그 다양한 문화적 성취는 동아시아의 세계적 위상을 그만큼 더 높여주는 것이다. - P159
일본에는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것, 또는 일본에선 강한데 우리나라에서 약한 것도 많이 보인다. 문화유산의 입장에서 내가 본 일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장인정신과 직업윤리 의식이다. 이전통의 뿌리는 아주 깊고 오랜 것이다. 1,200년 전, 헤이안 시대에천태종을 일으킨 승려 사이초(最澄)가 세운 절 엔랴쿠지(延曆寺)에는 그가 말한 경구가 큰 비석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조천일우 차즉국보(照千一隅 此則國寶)." 천 가지 중 오직 하나를 잘하면 그것이 국보라는 뜻이다. 한 가지 일에 충실하면 그것이 인생의 보람이고,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나라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말해주는 표어다. 그런 정신에서 일본은 장인을 존중하는 사회로 성장했고 직업윤리 의식이 형성되었다. - P159
내가 일본에서 가장 배우고 싶은 문화는 바로 이것이었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모든 제품에서 디테일이 아주 강하다는 미덕을 날았다. 빈틈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일본 제품의 가장 큰장점이자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것이 IT시대에 일본이 발전하는 것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는 일본 장인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아날로그에 익숙하여 신용카드보다 현금 사용을 선호하고 인터넷소통이 우리처럼 원활하고 신속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다. 한일 두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운명적으로 함께 세상을 살아갈수밖에 없다. 이미 두 나라의 경제적 협력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어 있다. 문화적 교류도 한류가 말해주듯 아주 깊이 흘러갔다. 이제 우리는 일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겠고, 일본은 혐한론을 멈추고 갈등의 원인인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정리하여 두 나라가 공존과 공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일본 답사기를 썼다. - P162
신학철은 작품을 팔아가며 근근이 생활을 하였다. 화상들은 좀 예쁜 그림을 그려 와야 하는데 무서운 그림만 가져와 팔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였다. 한번은 그 미술애호가를 모시고 난곡동 달동네 신학철 집까지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때 신학철은 <신기루>라는 작품을 그리고있었다. 화폭 아래쪽에는 들판에서 농사꾼들이 새참을 먹고 있는데 멀리 한 처녀가 서울로 떠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미술애호가는 아련하게 펼쳐지는 목가적 풍경에 반하여 이 그림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신학철은 이 그림은 아직 미완성으로, 화면 위쪽에 도시 풍경이 신기루처럼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미술애호가가 지금 이 상태에서 하늘만 칠하고 달라고 하니까 신학철은 안된다며 큰소리로 "시골이 이렇게 평화로운 줄 아세요!" 하고 화를냈다. 이런 분이 신학철이라는 화가다. 그래서 신학철이다. 이것이 신학철에 대한 나의 비평적 증언 중 한 대목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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