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가는 높은 산을 오르면서 더욱 경험이 풍부하고 강해집니다. 때로 극심한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다시 산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이 풍부한 경험을 쌓고 강해지기 위해 산에 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들은 산에서 겪는경험을 사랑할 뿐입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왜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 "거기 산이 있으니까"로 답했는데요. 이 단순한답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은 그것이 산에 오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기 때문일 겁니다. 산 자체가 목적이고, 거기서 겪는 경험, 자아의 변화는 그들에게는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할 겁니다.
소설가니까,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제 답도 힐러리 경만큼 단순합니다. - P139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 것입니다. 40년 넘게 소설을 읽어오면서 제 자아의 많은 부분이 해체되고 재구성되었겠고, 타인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겠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만 애초에 그런 목적을 위해 소설을 집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 근육량을 늘리고 건강해지기위해 헬스클럽에 가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과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읽자‘고 결심하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습니다. 소설은 소설이 가진 매력 때문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고, 바로 그 매력과 싸우며 읽어나가는 것이고, 바로 그 매력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 P140

독서의 목적따위는 그에 비하면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서의 목적 같은 것으로 설명해버리기에는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겪는 경험의 깊이와 폭이 너무 넓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개개의 독자가 특정한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소설을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설이라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인간은 자연이 합목적적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태양은 식물을 성장시키기 위해 아침마다 떠오르는 것이고 과일은 따먹으라고 있는 것이고 사슴은 - P140

잡아먹히라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인간중심주의는 끝없이 붕괴되어왔습니다.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온갖 동물이 인간에게 잡아먹히도록 창조된 것도 아니었으며, 인간과 원숭이는 별반 차이가 없는 종이었습니다. 자연이 인간의 필요를 위해 창조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소설도 인간의 어떤 필요를 위해 쓰이고 읽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 않아도 산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소설은 우리가 읽든 말든 저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소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접근하고, 그것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그 어떤 분명한 유익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 변할 뿐입니다. 강연 초반에 인용했던 오르한 파묵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오늘의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소설은 두번째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 P141

도서관이 우주라는 말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주 안의 사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 즉 거시 세계를 구성하는 중력과 미시 세계를 구성하는 전자기력, 그리고 극미 세계를 구성하는강력과 약력이 없다면 우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힘들은 우주 안의 모든 존재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면서서로 영향을 주고받도록 만듭니다. 책의 우주도 이와 비슷합니다. 책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개의 책은 다른 책이 가진 여러 힘의 작용 속에서 탄생하고, 그후로는 다른 책에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도서관은 영향을 주고받는 정도가큰 책들끼리 분류하여 모아놓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분야의 책들이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을 테니까 서양 철학 책은 서양철학 책끼리, 프랑스 소설은 프랑스 소설끼리 모아놓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분류가 다른 책들 사이에 힘의 작용이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체로 약할 뿐입니다. - P183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특히나 이런 작업, ‘정전 다시 쓰기‘가많았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다시 쓰기‘를 표방하든 그렇지 않든, 여전히 전 세계의 작가들이 무언가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보르헤스의 ‘도서관‘, 책의 우주는 점점 더커져갑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것과는좀 다릅니다. 소설 쓰기란 남의 것을 잠깐 빌려왔다가 그것을다시 책의 우주에 되돌려주는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소설을 읽는 것은 바로 이 광대한 책의 우주를 탐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처럼 하나의책을 통해 그 우주에 들어갑니다. 책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문이자 다른 책으로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소설과 소설,
이야기와 이야기, 책과 책 사이의 연결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로서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야기에 흠뻑 빠 - P208

져들면서도, 그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의 연결점을 찾아나가고,
그런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소설과 소설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독자는 자기만의 책의 우주, 그 지도를 조금씩 완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섯 날에 걸쳐 그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을 함께 탐색해보았습니다.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로부터 시작해 세르반테스와 플로베르, 미즈무라 미나에나 존 쿳시의 작업까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은 훌륭한 작가들이지만 책의 우주는 이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는 것, 우리의 유한한 삶보다 오래 영속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로부터 시작해 연결점들을 찾아내고, 더 근사한 별자리를 발견하면서 책의우주를 확장해갈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 P209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별들이 수백 수천 년 전에보내온 빛이 이제야 우리의 망막에 와닿듯이 책 역시 시공을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밀란 쿤데라의 통찰처럼, 비록 우리 현대인의 시야가 마치 요제프 K의 그것처럼좁아져 있고 모두가 세속적 이해와 단기적 전망으로 아웅다웅 - P209

하며 살아가고, 세계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입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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