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은 "문화미와 예술미는 훈련한 만큼 보인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처음피카소의 작품을 볼 때 왜 좋은지 몰랐습니다. 좋다니까 감동을 짜내며좋은가보다 했죠. 그런데 지금은 좋은 걸 알겠습니다.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들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들을 읽고 난다음에 본 피카소의 그림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이젠 앙리 루소의 어떤 그림을 보고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철수가, 최인훈이, 유홍준이, 김훈이, 그 외의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나를,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었고, 해주고 있습니다. - P49

시이불견 청이불문而不見 聽而不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거죠. 비발디의 <사계>를들으면서 그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하는 것이고요,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 건 견문이 된 거죠. <모나리자> 앞에서 얼른 사진찍고 가자‘는 시청이 된 거고요.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에 얼어붙은 건견문을 한 거죠. 어떻게 하면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가가 저에게는 풍요로운 삶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겁니다. 존 러스킨은 "당신이보고 난 것을 말로 다 표현해보라"라고 했습니다. 나뭇잎을 봤다면, 나뭇잎의 균형감각이 어떻게 되어 있고, 앞뒷면의 촉감이 어떻게 다르고, - P49

헬렌 켈러는 또 이렇게 얘기했죠. "내가 대학교 총장이라면‘눈 사용이라는 필수과목을 만들겠다"라고요. 보지 못하는자신보다 볼 수 있는 우리들이 더 못 본다는 것이죠. 전부 다 ‘시청‘을 했니다. 아름다운 영미 에세이 50선에 드는 헬렌 켈러의에세이, ‘삼일만 앞을 볼 수 있다면」에 나오는 말입니다. 헬렌 켈러는 책 첫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숲을 다녀온 사람에게 당신은 뭘 봤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하길 ‘별것 없었어요Nothing special‘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릴 수 있냐는 겁니다. 자기가 숲에서 느낀 바람과, 나뭇잎과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몸통을 만질 때의 전혀 다른 느낌과, 졸졸졸 지나가는 물소리를 왜 못 보고 못 들었냐는 거죠. 이렇게 인생이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에 떠오를 장면이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거미줄에 달려 있는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들은 죽을 때 떠오를 장면들이 풍성하겠죠.
- P50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큼은 내가 아닌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게 중요하지 않고, 저 사람이 좋아해줄까가 중요해집니다. 관점이 모두 상대로 돌아서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한 연인들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서지 않는다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합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김훈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있는데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사랑의 정의라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의 공간을 바라지만 아니라는 거죠. 누군가를 사랑해서 내 사랑을 가지고 돌진을 하고, 형성이 되면 행복한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싫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안 보이는 흠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랑은 결국 그렇게 소진되어가는 것이죠. 알랭 드 보통은 그래서 사랑이 방향일 뿐 공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연인들은 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갈망과 연인이 된 후 오는 짜증 두 극단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밖에 할 수없다는 건데요. 결국 사랑에는 중간이 없다는 거죠. 이러한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뒷받침하는 문장이 이 책에도 나옵니다.

우리 모두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 P105

말 나온 김에 <담쟁이>를 읽어드릴게요.


저것은 벽
어쩔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수 없는 - P129

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번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P130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밥 튀겨 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 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 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밟으며 지나갈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 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내장사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 P183

우리, 여기서 찍끔만 더 머물다 가자


이 시는 김화영의 것은 아니고 황지우 시인의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싶다>입니다. 김화영과 지중해 여행을 하면서 뼛속으로 스며드는 기이한 슬픔에 대해 생각할 때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겨울이 가고 난 후 문득 눈을 감았다 뜨면 갑자기 출현한 꽃나무, 그 아래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는 가족의 꿈이 가득 차있는 순간의 모습, 그러나 시인은 잔인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맞아요.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힘든 신산이에요. 말짱한 영혼은 가짜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잠깐 동안 팝콘처럼 웃음을 터뜨리고, 그 웃음짓는 순간의 사람들은 이 세상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야기. 짧은 봄을 닮은 순간의 웃음 그리고 긴 신산함, 어느 시인은 꽃의 시절은 짧고 잎의 시전은 길다고 얘기했죠. 
- P184

해질녘 서편 하늘을 물들이는 장엄한 노을 앞에 섰거나, 한밤중 아득한천공에서 무수히 쏟아져내리는 별무리의 합창을 들을 때, 혹은 동틀녘세상끝까지 퍼져나가는 황금빛 햇살의 광휘를 온몸에 맞으면서, 어느누가감히 예술을 논하겠는가. 봄날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햇가지들을가만히 들여다보자. 길고 짧고 굵고 가는 물기 오른 여린 가지들이이루는 조화와 오만가지 빛깔, 그것은 기적이다. 가을 새벽 거미줄에붙들린 조그만이슬 알갱이에 다가서 보자. 그 깜찍한 비례며 앙증맞은짜임새도 경이롭지만 알알이 비치는 방울속마다 제각기 살뜰한 우주가 숨어 있다. - P327

그럴 것이다. 인생의 저녁, 저물어가는 노을빛 속에서 작품 제작의연월일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화폭에 가득 번진 환한 봄빛이있고, 내 가슴도 훈훈한 봄빛을 머금고 있는데, 더구나 이 늙은 가슴을이해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가슴이 곁에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림을 그렸을 때 김홍도는 노인이었다. 화폭에 떠도는 해맑은 동심이그것을 반증한다. 노인은 젊은이보다 봄을 더 많이 생각한다. 그리고 더 - P330

소중히 여긴다. 아마 가을이 되자 봄이 더욱 그리워졌던 것인지도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마상청앵도>가 어느 계절에 그려졌는지조차알지 못한다. 하지만 봄이, 영원한 봄이 그 안에 있다.

이 구절에서 저는 특히 "김홍도는 노인이었다. 화폭을 떠도는 해맑은 동심이 그것을 반증한다." 이 문장이 참 좋습니다. 제가 나이 드는 게좋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고 했는데요. 이유가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나뭇잎이나 꽃 말고 예쁜 여자도 봐야 하고 멋진남자도 봐야 하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면 자연이 눈에 들어오죠. 그리고 만약 화가라면 봄을 들여다보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화폭에 드러난다는 겁니다. 저자는 또 다른 저서 그림 속에 노닐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특히 그림이 단순하다는 것은 핵심적이라는 말과통한다.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은 종종 노년에 다다라서야얻어지곤 한다. - P332

정현종의 무한 바깥이라는 시에서처럼 나는 내가 아닌 겁니다. 만물의 물결 중 하나일 뿐이죠.

방안에 있다가
숲으로 나갔을 때 듣는
새 소리와 날개 소리는 얼마나 좋으냐!
저것들과 한 공기를 마시니
속속들이 한 몸이요
저것들과 한 터에서 움직이니
그 파동 서로 만나
만물의 물결
무한 바깥을 이루니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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