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현기영은 「순이 삼촌」 한편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움직일 수 없는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장편소설 『제주도우다』를 펴냄으로써 마침내이것이 4·3의 진실이고 이것이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순박하기그지없는 민초들이 겪은 아픔과 슬픔이고 이것이 제주의 현대사임을 증언하는우뚝한 거봉(巨峯)으로 불쑥 솟아올랐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읽는 내내 숨이 뜨거워지면서 거장의 숨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분명 소설을읽고 있음에도 눈앞에 스크린이 펼쳐진 것처럼 생생한 영상이 떠오른다.
그러나 압도적인 역사의 장면을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그 역사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개인들의 삶과 목소리와 내면을 담아내는섬세하고 인간적인 시선은 오히려 영상의 한계를 넘어선다. 4·3을 이토록장대하면서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것이다. 정치권력에 의해 노골적인 역사 부정과 기만과 왜곡이 자행되는 오늘, 현기영의 ‘제주도우다』는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거대한 진실의 암각화를새겨놓았다. 

이창동 영화감독

사람보다 더 잔인한 동물이 있을까? 없다. 이 질문과 답에 이의를 제기할 수없도록 만드는 고통스러운 역사 제주 4·3. 너무나도 아프기에 마주하기 두려운역사. 
그러나 이 책은 내 안의 아픈 역사 역시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역사라고 조곤조곤 알려주며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마침내, 남도 북도 아닌 ‘제주도‘가 보인다. 

최태성 역사 강사, 작가

무엇보다 감동적인 장면은 귀향민들이 배에서 막 내렸을 때였다. 고향 땅을 오래 떠나 있던 그들은 너나 할것 없이 털썩 무릎을 꿇고 엎드려 흙냄새를 맡았다. 아예큰대자로 몸을 던지거나 두 팔로 땅바닥을 안는 시늉을하기도 했다. 고향의 바다냄새, 그 달콤한 갯비린내가, 향긋한 건초 냄새가, 우람한 팽나무와 검디검은 현무암이, 그리고 어머니 한라산이 그들을 고향으로 이끌었던것이다. 떠난 자들이 꿈에도 그리는 한라산, 떠났던 자들이 반드시 돌아오는 곳, 그들은 이 땅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겹겹이둘러싸인 그들이 사뭇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P295

남조선으로 가겠느냐고. 허 참! 북조선, 남조선이라니, 난생처음 듣는 말 아니우꽈? 그래서 물어십주. 거 무슨말이냐고, 북조선은 뭐고 남조선은 뭐냐고하니까 삼팔선이 그어졌다는 거라예. 허, 그것참!"
"그래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해십주,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 하고."
통쾌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자 마중 나왔던 사람들이 감격해서 환성을 질렀다.
"맞아, 맞아, 우린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 제주도란 말이여!"
"하하하, 우린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제주도다!" - P296

재갈 물랐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진 통쾌한 언어들, 그 언어들이 잠들어 있던 그들의 정신을 후려갈겼던 것이다. 지난날 자신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초라하고 비굴한 존재었는지 그제야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 언어들이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노예의 비굴과 치욕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듯했다. 무병을 앓던 자가 내림굿을 받은 것처럼 그들은 생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고, 모호하던 것들이명백해지고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한꺼번에 깨달아진듯이 느꼈다. 그들은 환호했고, 그 열광 속에서 고동치는자신의 핏줄을, 자신의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땅임에도 살얼음 밟듯 살금살금 다니던 지난 세월을 벗어나이제는 발을 구르며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그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존재감이었다.
‘청년의 시대‘라고 했다. 이제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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