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고난과 순명의 표상인 육사의 시는 저에게언제나 시가 있어야 하고 떠나서는 안 될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절정」과 「광야」는 그분이 살았던 삶 전체를아우르는 열쇠말인 동시에 시가 머물고 지켜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이 시들은 당시의 곤핍한 상황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애초에 시라는 장르가 ‘절정‘과 ‘광야‘라는사실을 준엄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육사의 시는 어떤 임계점, 혹은 극한점에서 씌어진 것으로서, 시라는 것이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극지‘의 산물이자 ‘극지‘ 그 자체라 - P9
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다른 시인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소월의 「초혼」은 초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본래 시라는 장르 자체가 ‘초혼‘인 것이고, 시인은 그 불가능한 초혼제의 역할 수행자인 셈이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시라는 형식이 자기 규정적이고 자기 회귀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말들이 자기 규정적이고 자기 회귀적입니다. ‘나 너를 미워해‘ 라는 말의 효과는 ‘너‘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오롯이 돌아옵니다. 또 어떤사람 욕을 해도 그에게로 가지 않고 고스란히 자기한테 돌아오지 않습니까. 마치 누워서 침을 뱉거나 오버잇을 하면자신이 뒤집어쓰는 것과 같지요. - P10
말의 자기 규정성, 자기 회귀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시라는 장르라는 사실은 길지 않은 우리 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월이나 육사뿐 아니라백석과 윤동주, 이상과 김수영의 삶과 시를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말함으로써,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의 일차적인 희생자가 되고, 그가 자초한 희생을 어떻게든 피하지 - P10
않음으로써 그의 말은 일종의 상징이 되는 것이지요. 사실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말은 머리 위 도끼날처럼 제 말이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떻게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가령 통증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명치끝을 맞았을 때의느낌이 그러하다고 할까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이 말은도무지 번역하거나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시가 지향하고 조명하는 것은 이 말이 가리키는 어떤 지점이 아닐까합니다. 오직 이 지점에서 씌어진 것만이 시이고, 이 지점을 벗어나면 사이비가 됩니다. 만약 어떤 시가 이지점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책임회피와 방관에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표현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일 테지요. - P11
시가 지향하는 자리, 시인이 머물러야 하는 자리는 더이상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극지‘이고, 그 지점에남아 있기 위해서는 무작정 버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없습니다. 시는 머리가 아니라 다리로 쓰는 것이며, 시가있는 자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연소함으로써 밝힐 수 있습니다. 시에 대한 공부는 자기 안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것이지, 그것을 이론이나 사상으로 대체하려 하면 도리어 멀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저는 본래 출발했던 그 자리만을 놓치지 않으려 애쓸 것입니다. 두서없는 말씀과 몸짓, 표정에서 시를 향한 저의 안타까움이 전해졌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끝맺겠습니다. (제11회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 소감)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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