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다. 말은 인격이다. 고사성어나 전문용어, 어휘를 많이 안다고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갖췄다 할 수 없다. 그건 그냥 유식하고 교양 있는 거다. 나는 소위 유식하고 교양 있다는 사람들이 인격을 갖추지 못한 경우를 너무많이 봤다. 인격은 기본적인 어휘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에게 어떠한 의도로 쓰는지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조차 못 하는 이가 최악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은 씨알머리가 없다. 도사리 같다. 말의 힘은 말하는 사람의 인격으로 획득된다. 인격은 연출이 불가능하다. - P104
‘세상을 바꾼다 ‘고들 한다. 사회변혁이나 개혁을 의미한다. 나는 멀쩡하니까 세상만 바꾸면 좋아질 것 같은 뉘앙스가 없지 않다. 세상은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사회를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 언어를 바꾸기도 하지만 언어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어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 영혼을 베는 말과 일으키는 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상품이나 가축 등에 쓸 어휘를 사람에게 쓰지 않는지, 사람이 - P106
하는 일을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지, 늘 말본새를 점검해야 한다. 많은 속어나 욕설 등이 가축과 관련한 어휘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때는 가축이 흔했고 지금은 물건이 흔하다. 이 대목에서 "존중할 만해야 존중하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악머구리 끓듯 악한과 파렴치한이 적지 않으니 심정이야 이해하나 경계한다. 그 옛날 양반이 백정과 노비에게, 백인이 흑인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부자가 빈자에게, 어른이 어린이에게 같은 말을 했다. - P107
‘사람에 대한 존중‘은 내가 옳다고 느끼면 옳은 것이라는 식으로 서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상대주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우선에 두는 것이 인격이며 인격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 타고 나는 것은 인성이다. - 배움과 습관을 통해 갖출 수 있다. 사람을 존중하는자세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에게 배어 있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적절치 못한 어휘를 쓸 수 있다. 아직 배우지 못했거나 잘못 알아 그렇다. 문제는 다음이다. 모르거나 잘못 아는데 올바로 알려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성별이나 출신, 외모, 나이 등을 차별하는 어휘가 아닌 - P107
지도 살펴야 한다. "여자가 할 수 있겠어?", "남자가 그것도못 해?", "뚱뚱해", "키가 작아", "어린 사람이 뭘 알아?", "나이가 있는데 할 수 있겠어요?" 등이 쉽게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도 해당한다. "여자가 능력 있어", "남자치고 세심하네", "가정교육을 잘 받았네", "좋은 대학나와서 스마트해", "예쁘게 생겼어", "키가 크고 날씬해서 뭘입어도 잘 어울려", "젊은 사람이 아주 예의바르고 겸손해", 등등. "젊게 사시네요", "나이보다 훨씬 건강하고 젊어 보이세요" 등등. - P108
칭찬으로 들리는가? 고정관념에 기준한 수직적 평가다.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칭찬으로 착각하기 쉬운 이런발언은 부모 자식 간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칭찬이랍시고 하면 칭찬이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성별이나 외모, 능력 등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고 남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게 된다. 평가가 해악인 이유는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 가축처럼 등급을 매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급을 왜 매기겠는가? 물건이나 상품, 가축 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싼 값에 팔기위해서다. 무엇이 쓸모 있을지 계산하는 것이다. 평가는 필연적으로 차별로 이어진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관종‘이라는 말로 놀림 받지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생존과 직결돼 - P108
있다. 그러나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이 앞서의 조건들을 채워야 하는 거라 주장한다면 사람을 수단화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에 대한 존엄이라니, 턱도 없다. 사람을 평가하면서 세를 과시하는 어휘를 쓰지 않도록조심하자. 인간의 도구화를 피할 길 없는 세상이라지만 이것만 지켜도 영혼을 다치는 사람들이 한결 줄어들 것이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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