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는 마법 같은 음식이다. 이 세상에 치즈를 넣어서 맛없는 음식은없다. 심지어 우리는 라면이나 떡볶이, 김밥 같은 우리 음식에도치즈를 넣어먹는다. 치즈는 영양과 맛의 덩어리여서 우리 몸은치즈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밥과 빵이 농경 문화의 정수라면, 치즈는 유목 문화의 정수다.
치즈는 동물의 젖을 가열해 멀건 유청을 제외하고, 나머지 영양분인단백질, 지방, 무기질 등을 굳힌 뒤 미생물에 의해 발효시켜서 먹는음식이다. 인간을 비롯해 포유류가 태어나서 얼마 동안 어머니의것으로 모든 영양분을 섭취하는 점을 떠올려보면, 치즈가 가진영양가에 필적할 만한 음식은 없을 것 같다. - P131

이탈리아를 종단해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내 말에 수긍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많은 문필가들은 알프스와 아펜니노산맥 그리고아드리아해에 둘러싸인 파다노 평원 지대를 ‘벨파에제 Bel Pacse",
우리말로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송했다. 단테의 《신곡》에 처음등장했던 이 말은 오랫동안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유럽의 상징은 높은 알프스나 푸른 지중해가 아니라 광활하게펼쳐진 평야다. 지금도 유럽연합은 밀 생산량 세계 1위다. 여기에세계 3위의 밀 생산국인 러시아까지 합친다면 유럽은 ‘밀의땅‘이다(밀 생산량 2위는 중국이다). 이탈리아에서 광활한 평원의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이탈리아 북쪽에 있는 파다노 평원뿐이다.
중부인 로마를 지나 이탈리아 남부로 가면 이탈리아 반도의등줄기를 형성하는 아펜니노산맥 탓에 이런 대평원은 만나기가 힘들다. - P134

재미있는 점은 이 넉넉한 대평원의 남과 북에서 각각 비슷한치즈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북쪽의 그라노 파다노grano padano와 남쪽의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다. 공정에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만드는법도, 생긴 것도, 맛도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포강 남쪽에서생산되는 파르미지아노가 좀 더 가격이 비싸고, 이탈리아 내에서는좀 더 많이 팔린다. 이 치즈는 프로슈토처럼 이탈리아를 상징하는음식 중 하나다. 와인을 제외한 이탈리아 농산품 가운데 가장 많이수출하는 것이 치즈다. 2019년 기준으로 치즈가 농산물 수출에서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4퍼센트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수출하는것이 그라노 파다노다(파르미지아노는 좀 더 고가이기 때문에 수출량은2위지만 이탈리아 내수 판매량은 1위다. 두 치즈의 수출량 차이는 미미하다).
재미있게도 이 이탈리아 치즈를 가장 많이 사가는 나라가음식에서라면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프랑스다. 치즈에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프랑스도 이탈리아 치즈를 인정한다는의미가 아닐까 싶다. - P135

치즈를 만드는 것도, 치즈를 점검하는 것도, 심지어 치즈를잘라내 파는 것도 모두 수작업이었다. 이 경성 치즈를 처음 만들기시작한 곳은 10세기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의수도사들은 양젖으로 만드는 페코리노 치즈의 제조법을 우유에적용했고, 그렇게 탄생한 이 치즈는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치즈가 되었다.
지금도 이 치즈를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은 1,000년 전수도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고집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수작업으로 일관하다가 마지막 과정에서는 최첨단 로봇을 이용하는반전을 보여준다. 이 치즈에는 과거의 전통과 미래의 기술이 녹아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슬로푸드라는 지속가능한 테마까지 입혀져있어 매력을 더했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멋진 명분이자 지갑을 열게하는 귀신같은 마케팅이다. - P143

이탈리아 치즈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프랑스, 독일, 영국 그리고 그 다음이 미국이다. 한번은 미국 여성 두 명이나보다 앞서 이 가게에서 치즈를 사갔다. 이곳에서는 치즈를덩어리째가 아니라 쪼개 팔아서, 10유로 정도면 굉장히 푸짐하게 살수 있다. 다만 치즈를 살 때는 몇 년 숙성 제품을 달라고 꼭 말해야한다. 숙성 정도에 따라 사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파스타에 뿌려먹는 것은 부드러운 1년산을, 샐러드 등 치즈맛을 입히는 요리에는 2년산을, 와인 안주로는 3년산 치즈를 쓰는것이 좋다. 심지어 5년 이상 숙성된 것도 판다. 치즈는 숙성 기간이길수록 수분이 빠지고 아미노산이 응축된다. 이런 성분들이미생물에 의해 발효되면서 다채로운 풍미가 나는 것이다. 이런 것을구분하지 못하면 볼로냐에서는 촌놈 취급을 받는다. 아니이탈리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촌놈이 되고 만다. - P151

① 우리는 소에게 건초와 풀만 먹인다.
② 우리는 우유에 어떤 비자연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오직 우유만을 사용한다.
③ 우리는 최소 12개월을 숙성한다(참고로 그라노 파다노는 최소9개월을 숙성해 출하한다)."
그들이 이렇게 멋진 고집을 부리는 근거는 상당히 과학적이다.
옥수수나 사료가 아니라 풀로 소를 키워야 조상들이 먹던 치즈와똑같은 맛이 나온다는 것이다. 같은 지역에서 자라는 같은 풀을먹어야 우유에 동일한 미생물이 생긴다는 게 그들의 근거다. 그들은자기 고장에서 생산하는 치즈 맛의 기원이 토양에서 자라는미생물에 기초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유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저온살균해 응고시킨 뒤, 형태를 만들어 오랫동안 숙성하는 것이다. - P156

이런 고집 덕분인지 이 지역 파르미지아노의 금전적 가치는굉장히 높은 편이다. 이 치즈는 40킬로그램 한 통(숙성 과정에서수분이 빠져나가고 아미노산이 응축되어 무게가 줄어든다)에 우리 돈으로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잘 만들어진 프로슈토와 비슷한 가격이다.
나는 이탈리아인들이 정치도 엉망이고, 실업률도PIGS(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심각한 재정 적자를 겪고 있는나라를 말한다)와 함께 유럽 최고이고, 철도나 버스가 툭하면 다니지않아도 늘 웃음을 머금는 이유를 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기는이탈리아야Siamo in Titalia." 이들이 왜 짜증스러운 상황에서도 이렇게외치며 짐짓 여유를 부리는지 말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은 - P156

하늘, 중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예스러운 거리와 집들, 그리고맛있는 음식들. 이 모든 것에서 이탈리아인 특유의 여유가 만들어진것은 아닐까? "너희가 잘살면 얼마나 잘살아? 우리도 예전에잘살았어"라고 말하는 듯한 그들의 허세 아닌 허세가 이탈리아에서지내다 보면 그렇게 미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때 그들의 부유했던 영광은 파르미지아노 같은 그들의 먹거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탈리아 치즈 맛에 겨우 감을 잡았을 때, 쉰이라는 나이에 음식을 공부하겠다고 정년이 보장된 회사를 때려치우고 20대젊은이들 틈에서 요리를 배운 나의 결정이 아주 잘못된 것은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치즈 덕에 나는 한발 더 나아갈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국에 돌아가면 우리나라에서이탈리아의 치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우리의 식재료, 간장과 된장그리고 두부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P157

우리나라의 간장, 된장, 두부의 종류와 맛은 서양의치즈만큼이나 오랜 역사와 다채로움을 지녔다. 된장만 놓고 보아도
‘옻된장, 겨된장, 담북장, 청국장‘ 등 종류가 무수히 많다. 그러나방방곡곡 색다른 지역된장의 제조법과 맛에 대한 표준화와세분화는 이탈리아의 기준에서 보면 많이 부족하다. 각 지방의된장을 지역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만드는 노력도 부족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캔에 든 미국산 파르메산 치즈를 내미는 레스토랑을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파랑새는 집 안에 있다." 이탈리아가 내게 준 깨달음이다.
‘맛의 파랑새‘는 반백이 넘은 나를 또 다른 길로 안내할지도 모른다. - P157

이미 앞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심각한 볼로냐빠다. 한국에돌아와서도 나는 나를 서슴없이 볼로네제(‘볼로냐 사람‘이라는 뜻)라고말하곤 한다. 내가 졸업한 ICIF는 피에몬테주 아스티에 있었는데, 정작 에밀리아로마냐주의 볼로냐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볼로냐에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이있었다. 바로 볼로냐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 람브루스코 Lambrusco다.
이름은 전에도 많이 들어봤지만 처음 이 와인을 마셔본 것은볼로냐에 와서였다. 그런데 볼로냐에 있을 때 나는 이 와인을 세 번쯤마셔보고 다시는 마시지 않았다. 오히려 에밀리아의 람브루스코대신 옆 동네인 로마냐의 산지오베제 Sangiovese를 즐겨 마셨다.
로마냐의 산지오베제는 내가 좋아하는 베리 맛이 풍부하고, 탄닌이약간 있어 이탈리아 요리와 잘 맞았다. 거기에 토스카나의산지오베제에 견줘 값도 착했다. - P159

그렇게 내가 마셨던 이탈리아 와인을 정리하면서 볼로냐에서 나를당황하게 했던 람브루스코에 대해서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제서야나는 비로소 이 와인의 저력을 알게 되었다.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오히려 그 와인이 지나온 역사의 무게에서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피에몬테의 네비올로가 혀로, 시칠리아의 에트나 로쏘가 마음으로 마시는 와인이라면 람브루스코는 머리로 마셔야 하는 와인이었다.
포도의 원산지는 중동 혹은 중앙아시아다. 포도와 포도주는중동을 거쳐 페니키아인 혹은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유럽으로전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에서 포도주가 처음 들어온지역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던 이탈리아 남부나 그리스와 중동과활발히 교역했던 에트루리아인들이 살던 이탈리아 서쪽 지역이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풀리아나 칼라브리아Calabria 등에 그리스란 뜻의이탈리아어인 ‘그레코Greeo‘가 붙은 포도 품종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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