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으면서도 윤기나는 푸른 잎을 잃지 않은 생게남을 영험하게 생각하여여기를 신당으로 삼은 것이다. 거기에 인간의 기도하는 마음이 서려 있는 오색천과 소지, 그리고 자연의 산물을 대표한 과일 몇알로 신과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제주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아닐까. 누가 이를 미신이라고 할 것이며 추하다고 할 것이며 가난하다고 비웃을 것인가.
수많은 해녀 노래 중에서 가장 애달픈 구절은 "이여싸나이여싸. 칠성판을 머리에 이고 바다 속에 들어간다"라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서사시인 석북(北) 신광수(申光洙)는 자녀가(潛女歌)」에서 매일같이 생사를 넘나들며 물질을 하는 해녀의 수고로움을 노래한다. 깊고 푸른 물에 의심 없이 바로 내려가 날리는 낙엽처럼 공중에 몸을 던지며 길게 휘파람 불어 숨 한번 토해낼제 그 소리처량하여 멀리 수궁 속까지 - P165

흔들어놓는 것 같다며 "잠녀여! 잠녀여! 그대는 비록 즐겁다 하지만, 나는 슬프구나"라며 애잔한 서사시를 바쳤다.
생사를 초월한 처연한 마음이 일어나는 종달리 돈지할망당. 아! 그것은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그래서 나의 제주답사일번지 종점을이곳 종달리 생게남 돈지할망당으로 삼는다.
그날도 숨비소리 아련한 빈 바다엔 노을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 P166

한라산 백록담까지 등반은 8, 9시간 걸리는 관음사 코스(8.7km), 성판악 코스(9.6km), 돈내코 코스(7km)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답사객에게는 해발 1,700미터의 윗세오름까지만 가는 것이 제격이다.
윗세오름은 한라산 위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여기에 이르면 선작지왓 너머로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통째로드러난다. 그것은 장관 중에서도 장관으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내 가슴은 뛰고 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한라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의 반은 만끽할 수 있다. 거기서 백록담까지는 1.3킬로미터 산행길이다. - P168

윗세오름에 이르는 길은 어리목 코스(4.7km)와 영실 코스(3.7km) 두가지다. 왕복 8킬로미터, 한나절 코스로 우리나라에서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환상적이면서 가장 편안한 등산길일 것이다. 답사든 등산이든 왔던길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나는 나이들면서는 영실로 올라가서 영실로 내려오곤 한다. 영실 코스는 윗세오름을 올려다보며오르다보면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감동이 있고, 내려오는 길은 진달래밭 구상나무숲 아래로 푸른 바다가 무한대로펼쳐지는 눈맛이 장쾌하기 때문이다.
영실 코스는 승용차가 영실 휴게소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2.4 킬로미터(40분) 다리품을 생략할 수 있다. 그러나 영실이 아무 때나 운동화 신고 오를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다.  - P169

한라산등반기를 쓴 문필가들은 이 대목에서 모두들 한목소리를 내는데 그중 이형상 목사의 묘사가 가장 출중하다.


기암괴석들이 쪼아 새기고 갈고 깎은 듯이 삐죽삐죽 솟아 있기도 하고, 떨어져 있기도 하고, 어기어 서 있기도 하고, 기울게 서 있기도 하고, 짝지어 서 있기도 한데, 마치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돌아보며 줄지어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조물주가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것이다.
좋은 나무와 기이한 나무들이 푸르게 물들이고 치장하여 삼림이 빽빽한데 서로 손을 잡아 서 있기도 하고, 등을 돌려 서 있기도 하고, 옆으로 누워 있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니, 마치 누가 어른인지다투는 것도 같고, 누가 잘났는지 경쟁하는 것도 같고, 어지럽게 일어나 춤추고 절하며 줄지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토신이 힘을 다하여 심어놓은 것이다.
신선과 아라한이 그 사이를 여기저기 걸어다닌다. 이쯤 되면 경개(景槪)를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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