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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7년, 글을 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이 책의 27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유방암'진단을 받은 아니 에르노가 1972년 유방암으로 죽은 프랑스의 자전적 소설가 '비올레뜨 르드윅'의 생존기간을 찾아내어 덧붙이는 문장이다. 저 구절을 읽는데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암 진단을 받고 저토록 명료한 의식이라니, 저토록 침착한 결론이라니. 그래서 찍을 수 있었고 객관적 서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에게 7년의 시간이 남아있다면, 무엇을 할까?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를 생각해 본다. 가정에 불과해서인지 절실한 물음이 되지 않는다. 답 또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렇게 죽음은 멀고 내 것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음을 이성으로는 아는데 그것이 내 몫이 되는 것은 거부한다.
작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순순하게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저 결론을 얻기까지 많은 길들을 걷고, 많은 순간들을 질책하고 많은 이들에게 분노했을 것이다. 그런 후의 저 결론이기에 뼛속까지 작가인, 삶을 기록하는 작가인 아니 에르노의 진정성을 믿는다.
'사진의 용도'의 첫 인용문 조르주 바타유의'에로티즘은 죽음 속까지 파고 드는 생(生)이다.'를 읽으면서 이 책의 방향성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한편 어리둥절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작가와 '에로티즘'은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멀어 보였다. 그러나 결론을 말하자면 '천국'과 '지옥'의 연결고리만큼이나 '죽음을 앞둔'과 '에로티즘'도 같은 맥락이었다. 삶이었다. 사진 안에는 우리가 살아내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담겨 있었다.
책은 아니 에르노와 연인인 마크 마리가 같은 사진을 두고 각자 쓴 글들의 모음집이다. 몸이 빠져나간 옷들만 남은 사진 속의 적나라함은 그 안에 담긴 무수한 몸짓들과 두 사람만의 비밀스러움을 담고 있다. 그 은유만으로도 이미 에로틱하다. 본능에 충실한 두 사람은 몸의 언어를 구체화해서 한 편 한 편 글을 완성해간다. 사진들은 그냥 흑백의 사진에 불과한데 스토리를 읽고 나면 사진 속의 서사가 보인다. 사진 속의 풍경이 주인공이 아니라 사진 밖의 사진을 바라보는 이가 주인공으로 나누는 대화와 갈망과 욕망이 구체화된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낸다는 것, 죽음을 극복하는 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나 자신의 유한함과 살아 있음을 동시에 이토록 강렬하게 느끼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누구나 느끼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