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도 같은 기관이 있을 텐데 나는 여자의 성기의 전모를 보는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여자들은 왜 타인에게 자기 몸의 일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수는 있어도 자기 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신의 뒤통수는 볼 수 없다지만 뒷거울로 볼 수가 있다. 거울을 사용하면 자신의 성기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한 번도 그걸 시도해본 적이 없다.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제 몸의 일부건만 마치 없는 것처럼 자신에게조차 감추고 살았다. 눈부시게 밝은 불빛 아래 샅샅이 드러난 여성 성기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았다, 마치 검은 털을 가진 짐승의 상처처럼 검붉고 처참했다. 의사는 상처의 가장 깊은 구멍에다 금속으로 된 대롱 같은 걸 박고, 그 관을 통해 자루가 긴 약숟가락처럼 생긴 쇠붙이로 분홍빛으로 흐느적대는 내장 같은 걸 조금씩 조금씩 긁어내고 있었다. 자궁이라는 신비한 궁이 외부에서 저렇게 가까이 직통으로 연결돼 있을 줄이야. 춘희는 신음소리를 참지 못하면서도 제 아랫도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춘희는 지금 나를 통해 제 아랫도리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 끝났다고 간호부가 말했다. [그 남자의 집<박완서>] p233. 234

 

 

 

 

 

 

 

 

 

 

 

 

   미국 사회에서 미군의 한국인 아내들은 여성도 한국인도 아닌 경계인이다. 이들은 백인 중산층 중심의 여성 범주에 속할 수 없으며, 남성 중심의 한국인 범주에도 속할 수 없었다.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이들의 존재가 비가시화된 것은 명백한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기지촌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엄청난 경멸감은 보편적인 가부장제 관행이나 인종적 자부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8.15 '해방' 이후에도 탈(脫)식민화되지 못한 한국 사회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일제 강점기 '군 위안부'는 제국주의 침략의 순결한 희생자로 여겨지지만, 기지촌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천민'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을 '강제적인' 성폭력(군 위안부)과 '자발적인'(?)성매매(기지촌 여성)로 구분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 때문이기도 하다. '군 위안부'와 달리 기지촌 여성은 떳떳하지 못하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은 청산해야할 식민주의자이며, 독도 분쟁의 예에서 보듯이 침략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음험한 제국주의자다. 하지만 미국은 감사해야 할 동맹이자 우방이며, 미국의 자유와 물질적 풍요는 선망의 대상이고 경쟁해야 할 이상으로 간주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이 기지촌 여성을 군대 성매매의 희생양이자 현대판 위안부로이해하는 것은 한국 사회 스스로 주권 국가 환상을 깨는 정신적 탈식민이 요구되는 일이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근대 국가의 모순을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국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 추방과 포섭의 정치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리는 재미 동포나 재일 동포를 '조선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재중 동포만 조선족이다. '같은 세포'라는 의미의 '동포(同胞)'가 모두 한국인은 아닌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잘나가는' 동포만 한국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한국인으로 정체화하고 있는지에 목숨을 건다. 미식 축구 스타인 하인즈 워드 선수가 한국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아닌지에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처받았다가 열광했다가 하는 식이다. (그는 아버지가 주한 미군이었고 어머니가 한국인이었다.)

   기지촌 여성이나 미국으로 이주한 군인 아내를 향한 혐오와 비하는 단일 민족 국가라는 자부심과 열망이 실은 우리 사회 안팎의 다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균질적인 국민으로 구성됐다고 상상되는 국민 국가 내부의 성별, 인종, 계급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고통은 군인 아내들의 몸에 고스란히 체현됐다. 저자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민간 외교관'과 '양공주'라는 이중 메시지에 시달렸던 군인 아내들의 삶을 애정과 여성주의와 탈식민주의라는 정치적 감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최초로 해냈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여성도 한국인도 아닌'<정희진>]

p15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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