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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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

                   김소연

 

   벚나무는 천 개의 눈을 뜨네

   눈동자도 없이

   눈꺼풀도 없이

 

   외투를 세탁소에 맡기러 가는 길과

   교회의 문전성시와

   일요일과

   눈썰매와

 

   벚나무는 곧 버찌를 떨어뜨리겠지

   벌써 나는 침이 고이네

 

   거미처럼 골목에 앉아

   골목에 버려진 의자에 앉아

   출발도 없이

   도착도 없이

 

   벌거벗은 햇볕

 

             시집 [수학자의 아침]중에서

 

 

  '벚나무는 천 개의 눈을 뜨네/ 눈동자도 없이/ 눈꺼풀도 없이' 김소연시인 『그늘』의 첫 연, 저 구절은 울집 냉장고 문짝을 이 년이 지나도록 지키고 있다.

  왜 저 구절일까는 잊었다. 아마도 매일 걷는 길, 벚나무를 지켜보던 중이어서 와닿았으리라 짐작할 뿐.

  이제 그 길을 걸어 출· 퇴근하지 않는다. 아쉬워서, 그리워서 더욱 좋은 길이다. 가끔 걷고 싶을 때나, 다른 길을 걸었는데도 어쩐지 더 걷고 싶어질 때 일부러 찾아가는 길이다. 언제 어느 때 걸어도, 걷기 좋은 길을 집 근처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새삼 확인하고는 한다. 며칠 전 찾았을 때는 언덕엔 노란 금계국과 흰 개망초와 보랏빛 붓꽃들이 초록 초록한 풀들을 배경으로 하늘거리고 있어서 흡사 텔레토비 동산이거나 윈도 바탕화면 같았다. 자연스러운 것들이 어우러져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액자 속 풍경이다. 이 액자의 마법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풍경을 사계절은 물론, 원하는 어느 때나 마음껏 누리고 살 수 있는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 맞다.)

  벚나무 마루길에는 어느새 버찌 까맣게 떨어진 채 밟히고 있었다. 눈동자도 없이, 눈꺼풀도 없이, 천 개의 눈으로 밟히는 버찌를 바라볼 벚나무 생각에 버찌를 밟지 않고 지나려고 잠깐 색시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그 숱한 버찌들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나무도 알고 있으리라, 그래서 천 개의 눈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꽃이 아니었다면, 열매가 아니었다면 무슨 나무인 줄 모르는 나무들 많다. 벚나무를 모를 리 없고, 느티나무 모를 리 없지만 때죽나무, 쥐똥나무, 이팝나무, 층층나무쯤 되면 자신 없다. 올해 처음 알았다. 꽃만큼이나 예쁜 잎을 가진 라일락을. 새롭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게 꽃에 취하고 혹하는 사이가 지나고 나면 과실이 아닌 대부분의 나무들은 잊힌다. 감탄하며 보았던 문화유산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잊듯이. "골목에 버려진 의자에 앉아/ 출발도 없이/ 도착도 없이" 잊어버리고 다시 만나면 처음 보는 것처럼 감탄을 연발하리라. 나무는 내가 그러시거나 마시거나 제 할 일을 부지런히 할 테지.

  밤새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무섭게 내렸다. 거센 비를 견딘 나뭇잎들, 여린 꽃들이 아침이 되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심한 풍경으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저 천연덕스러움을 닮고 싶은 아침이다. 쥐똥나무 향기, 더욱 짙어졌다.

  내 생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천이십일년 오월이 가버린다.

  고마웠다. 쉰 일곱 번째의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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