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 개정판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57
허수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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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경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어느 하구 모래톱에 묻힌 나의

  배냇기억처럼

            시집[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중에서

   나에게도 강이 있다. 성으로 쓰는 姜과, 내 안의 江이기도 한 드들강을 가졌다.

   네이버 위키백과에서는 드들강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온다.

   "지석천(砥石川)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서 발원하여 나주시 금천면 인근에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화순군 이양면 지역은 지방2급하천(길이 약 20Km)으로 관리되며, 청풍면 경계인 송석천 합류점에서 국가하천(길이는 약 34 km)으로 바뀌어 관리된다. 다른 이칭으로는 드들강(--江)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문을 읽으면 반드시 드는 생각, '뭐라는 거야?' 곧,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모든 사적이나 유물이나 설명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 꼭 나만 느끼는 막막함은 아닐 것이다. 모르긴 해도 한 번쯤은 다 느끼는 무식한 자신을 대면하게 되는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불친절한 설명문을 굳이 왜, 표지판을 세워서 써놓을까? 이왕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다른 네이버 검색에서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의 예치(禮峙)와 청풍면의 화학산(華鶴山, 614m)에서 발원하여 능주면을 지나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강. 길이 53.5㎞. 이 강은 화학산에서 흘러내려 능주면을 지나면서 충신천(忠臣川)이라 불리고, 서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화순천(和順川)과 합류하며, 남평에 이르러 대초천과 다시 합류하여 영산강에 흘러든다. 남평읍 소재지에서 화순군 능주면 사이의 부분을 드들강이라고 부른다. 이 부분은 길이가 4㎞이며, 유역에 발달된 남평평야와 화순평야 등의 주요 미곡산지를 관개한다. 드들강이라는 명칭은 숫처녀인 디들을 제물로 묻고 나서 무사히 제방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뒤 드들로 음이 변한 것이라 한다. 남평을 흐르는 지석강부분은 광주 일원의 유원지로 개발되어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목욕도 하고 잉어찜·용봉탕 등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는 좋은 휴식처이다."

   이 설명문은 조금 더 마음에 든다.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명문이라면 우리 문화재나 역사에 대해 더욱 쉬운 접근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곁길로 새버린 강, 나의 江. 드들강 곁에서 유년과 사춘기를 포함한 성장기 16년을 살았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드들강이었다.'디들'의 전설은 오래전 '전설 따라 삼천리'에서도 소개된 내용이어서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으로 발전시켜준 부분도 있다. 드들, 드들,을 읊조리면서 보를 걸을라치면 한편에서는 넘실넘실한 검푸른 물과 반대편에서는 쏟아지는 하얀 포말 사이의 경계에서 빨려 들어갈 듯한 현기증에 아슬아슬해져서 다리가 쪼그라들고는 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봄 소풍, 내 생애의 첫 소풍이었을 그 소중한 기억을 엄마는 도시락 싸줄 돈도 없고, 맨날 보는 드들강에 뭐 하러 가느냐고 당신이 일하는 고추밭에 나를 앉혀 두었다. 아니오를 몰랐던 여덟 살의 나는, 고추밭 도랑에 앉아서 둑으로 걸어가는 소풍 행렬의 긴 줄에 피어오르던, 먼지 같기도 하고 아지랑이 같기도 한 그 뿌연 아스라함을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한다. 여름이면 무수한 사람들이 솔밭을 향해 긴 행렬을 이뤘고, 둑 넘어 사래 긴 땅콩밭에 북을 해주다가가 허리를 펴고 그 풍경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했다. 지열로 뜨끈해진 모래흙은 땅콩 농사에 좋았다. 호미 쥔 손이 뜨끈뜨끈했다. 그런 나에게 " 모다 정신 빠진 것들 이제. 뭣땜시 쩌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고 이 땡볕에 헐일없이 믄지 풀풀 나게 걸어댕기고 있다냐."라고 혼잣말처럼 하셨지만 그들이 메고 진 가방 안에 뭣이 들어있을지는 엄마도 나도 몰랐다.

   엄마와 내가 솔밭을 찾아간 것은 중 1 때 여름, 우리 집 장남께서 동료들과 야유회를 하게 되어 리어카에 음식을 바리바리 싣고 둘이서 끌고 밀며 팥죽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다. 솔밭 그늘 평상에서 술 마시며 노래하던 잘난 장남이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퉁바리를 칠 때, 죄인처럼 오그라들던 엄마의 두 손을 보고 등에 차던 땀이 식었다. 솔밭에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그들의 벌어진 가방을 보고 그제야 알았다. 그 무겁고 메고 진 가방 안에 뭣들이 들어있었는지.

   등. 하교 때마다 지름길을 놔두고 둑길로 혼자 걸어 다녔다.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이었다. '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그 길에서 궁상을 떨면서 강 건너편을 그리워했다. 풀밭에 앉아 하염없이 강으로 지는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이유 모를 슬픔이 몽글몽글 차올랐다. 아마도 사춘기였으리라.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그렇게 엄마와 동생, 그리고 드들강을 두고 떠나왔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 드들강은 '배냇기억처럼' 아스라해졌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시, 김태정 시인의 '가을 드들강'. 시인도, 시도, 그리움 몽실몽실하게 만든다. 그런데 시인은 어찌 알았을까. 울 어매 소원이 흰 새가 되는 것이었는데. ㅎ~ 그 시절 모든 어매들의 소원은 훠이훠이 날아다니는 새처럼 자유를 갈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이 짊어진 삶이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가을 드들강

              김태정

   울어매 생전의 소원처럼 새가 되었을까

   새라도 깨끗한 물가에 사는 물새가

   물새가 울음을 떨어뜨리며 날아가자

   바람 불고 강물에 잔주름 진다

   슬픔은 한 빛으로 날아오르는 거

   그래, 가끔은 강물도 흔들리는 어깨를

   보일 때가 있지

   오늘같이 춥고 떨리는 저녁이면

   딸꾹질을 하듯 꾹꾹 슬픔을 씹어 삼키는,

   울음은 속울음이어야 하지 울어매처럼

   저 홀로 듣는 저의 울음소린

   바흐의 무반주첼로곡만큼 낮고 고독한 거

   아니아니 뒤란에서 저 홀로 익어가는

   간장맨치로 된장맨치로 톱톱하니

   은근하니 맛깔스러운 거

   강 건너 들판에서 매포한 연기 건너온다

   이맘때쯤 눈물은

   뜨락에 널어놓은 태양초처럼

   매움하니 알큰하니 빠알가니

   한세상 슬픔의 속내, 도란도란 익어가는데

   강은 얼마나 많은 울음소릴 감추고 있는지

   저 춥고 떨리는 물무늬 다 헤아릴 길 없는데

   출렁이는 어깨 다독여주듯

   두터워지는 산그늘이나 한자락

   기일게 끌어당겨 덮어주고는

   나도 그만 강 건너 불빛 속으로 돌아가야 할까부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2004)]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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