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창비시선 449
안도현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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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척인다

                    안도현

   뒤척인다 부스럭거린다 구겨지고 있다

   펼쳐졌다가 돌아눕고 있다 떠돈다 가라앉아있다가

   풀어졌다가 뜨거워지고 있다 눅눅하다 흐르고 있다 깊어진다

   너 언제까지 이러고 살래, 엄마, 고시랑고시랑하더니

   운다 서늘하다 짜깁고 있다 수수하다 드러눕는다

   둘러싼다 쌓인다 다그치고 있다 스멀댄다 기어가고 있다

   들이마신다 타박거린다 망설인다 쿨럭거린다 쥐어박고

   있다 헐씨근거린다 올라탄다 몽그작몽그작하더니

   이 나쁜 년아, 애비 없는 자식이란 말 아니? 이 씨발 년아,

   미끌거린다 매슥매슥하다 뜨고 있다 추근거리는데

   콩당콩당한다 띄운다 뜬다 흘러들어든다 아롱거린다

   차오르고 있다 켜진다 따돌린다 떼쓰고 만지고

   다짐받고 투항하고 촐랑대는데 싸르륵거린다 내린다

   망해도 좋아, 날 좀 내버려둬, 작렬하고 있다 모여든다

   흩어진다 뿌린다 두드러진다 더듬거린다 쿨럭이다가

   다물어진다 수런댄다 미끌어지고 있다 갈망한다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안도현의 시집을 만났다. 시집을 펴면 차례를 읽고, 첫 번째 시를 읽고 시인의 말을 읽은 다음 맨 마지막 시를 읽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디에 그러라는 법도 없는데 매번 새로운 시집을 만나면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딴에는 시집 전체와 제목과 어떤 시들이 묶여있나 보려는 심사일 터인데 그 과정은 매번 기대감으로 '콩당콩당'하다. 시집의 제목에서 '능소화'를 만났는데 마침 읽고 있는 박완서 선생의 [아주 오래된 농담]의 부분도 능소화로 기억되는 첫사랑(화자는 첫사랑이라고 이름하지는 않지만 독자는 그렇다고 우겨본다.)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규중의 꽃이라는 능소화의 화들짝 피어서 '수런대'는 요염을 한 여름에 본 적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공감이다. 두 이미지가 겹치고 있는데 마지막 시는 "식물도감"이라는 긴 시다. *로 연결된 따로여도 좋고 연결해도 좋은 식물들의 시어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우리들이 좋아해 마지않던, "스며드는 것"이후 무작정 좋구나 싶다. 거기에 실린 한 부분을 제목으로 차용해 왔다. 그러나 더욱 좋은 시는 어머니 "임홍교 여사 약전"이나 "고모"였다. 두 편의 시를 읽으며 이별을 준비하는 시인도 이제는 늙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혼잣말로 '고시랑고시랑'해봤다. 그렇게 치열하게 만들어 낸 우리 말의 리듬감을 가볍게 읽는다.

  동료가 묻는다. "능소화가 뭐예요?" 질문에 당황했다. 능소화를 모르는 환갑이 넘은 어른이라니. 시집의 표지 그림 '능소화 앞에 서서'를 보여주며 시집의 마지막 행을 읽어 주는 걸로 당황한 티를 숨기고 넘어갔다. "이름에 매달릴 거 없다/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봄꽃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꽃으로 아우성을 친다. 누가 더 목소리가 큰지는 화려함으로 대체한다. "벚꽃 진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벚꽃 지면 아까시꽃 피니 괜찮다" 그래, 괜. 찮. 타.

 능소화 필 때까지 한참을 함께 다닐 것 같다.  예전에 봄빛샘이 전해 준 능소화사진을 덧붙인다. 잘 계시는지 늘 궁금하지만 잘 계시리라 믿는다. "녹색 머플러 두르고 등교했구나/ 부안시장 가서 샀니?// 중학교 1학년/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이미지로 떠오르는 봄빛샘, 고마워요.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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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4-2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활련화(?)라고 기억하는.꽃과도 비슷해보이네요..능소화 어감도 독특하고 예뻐요

2021-05-01 16:41   좋아요 1 | URL
활련화는 아마도 한련화일 거예요. 식용이 가능해서 비빔밥의 데코레이션도 쓰이는 꽃인데, 능소화는 독성이 있어요. 꽃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이 먼다는 속설인지 전설인지 때문에 규중의 꽃이라 불린다는... 능소화는 관능적이고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