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모자 창비시선 223
임영조 지음 / 창비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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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조

   푸성귀는 간할수록 기죽고

   생선은 간할수록 뻣뻣해진다

   재앙을 만난 생의 몸부림

   적멸의 행간은 왜 그리 먼가

   여말에 요승이 임금 업고 까불 때

   간 잘 맞춘 임박은 승지가 되고

   간하던 내 선조 임향은 괘씸죄 쓰고

   남포 앞 죽도로 귀양 가 소금이 됐다

   세상에 간 맞추며 사는 일

   세상에 스스로 간이 되는 일

   한 입이 내는 간奸과 간諫 차이

   한 몸속 肝과 幹 사이는 그렇게 먼가

   꼴뚜기는 곰삭으면 무너지지만

   멸치는 무너져도 뼈는 남는다

   꽁치 하나 굽는데도 필요한 소금

   과하면 짜고 모자라면 싱거운

   간이란 그 이름을 세워주는 毒이다

   간이 맞아야 입맛이 도는

   입맛이 돌아야 살맛나는 세상에

   그 어려운 소금맛을 늬들이 알어?

               시집[시인의 모자]중에서

   *간 奸; 간음할 간

   *간 諫; 간할 간

   *간 肝; 간 간

   *간 幹; 줄기 간

   지난겨울, 무등산에 갔다.

   눈이 귀하던 때, 눈이 남아있는 산길은 아이젠도 없는 다리를 긴장케했지만 종일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던 맑은 하늘은 종일 흐린 오늘, 그리운 추억이다. 마스크 없는 시절인 지난겨울의 무등도, 그리움 퐁퐁 솟는 저 장불재도.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임영조 시인을 모셔왔다.

   오늘에야 책꽂이에 들이면서 옮겨 적었던 시편을 다시 옮겨본다.

   "적멸의 행간은 왜 그리 먼가"

   "한 몸속 肝과 幹사이는 그렇게 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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