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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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긴 시를 보는 듯하다. 시인이 쓴 동화여서인지 글이 참 맑고 아름답다.

 

은빛연어는 무리와 참 다르다. 생긴 것도,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그래서, 무리 안에 있지만 늘 외롭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아, 슬프다.

은빛연어가 자유를 꿈꾸고, 무리에서 적응하지 못할 때마다 은빛연어의 착한 누이는

"그건 모두 다 너를 위해서야. 너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커서 훌륭한 연어가 되지."

라고 위로하지만 은빛연어는 그럴때마다 가슴이 터질듯 답답하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그래서,누이의 위로는 스테레오타입처럼 내 귀에서 윙윙거린다.

저런 말을 너무나 많이 듣고 자랐으니 내가 창조적인 존재로 자랄 수 없었던 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노처녀였던 시절, 안면만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내게 묻는다. 결혼은 언제 하냐구....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일테지만, 그게 나중엔 상처가 되었다...때로는 판에 박힌 걱정섞인 안부가 듣는 이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다시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기 위해 긴 여정을 지나는 동안 은빛연어는 사랑을 만난다.

그래서, 별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리움과 기다림, 끝없는 보고싶음 앞에서 막막해한다.

그래도,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연어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고백하는 눈맑은연어의 말에 가슴벅참을 느끼니 은빛연어는 참 행복하겠다.

 

연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강에서 부화된 새끼 연어가 먼바다를 돌아서 다시 모천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는 죽어가는 운명..

은빛연어는 그걸 인정할 수가 없다.

'알을 낳기 위해 사는 것은 먹기 위해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분명히 삶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이 의미를 찾아나선다.

그저 평범한 삶을 마치기엔 너무나 궁금한 것이 많은 은빛연어는 어머니같고 아버지같은 초록강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간다.

'삶의 의미는 존재한다는 것,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것. 그래서,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며,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은빛연어는 마침내 거친 폭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만큼 성숙해진다.

'..우리들이 지금 , 여기서 보내고 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먼 훗날 우리 새끼들의 뼈와 살이 되고 옹골진 삶이 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쉬운 길 대신에 폭포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뿐이야.' 은빛연어의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되어도 좋을 듯 싶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대화는 나에게도 사무친다.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나도 그래. 뭔가 가슴에 자꾸 사무치는 것 같아.', '사무친다는 게 뭐지?', '아마 내가 너의가슴 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거야.', '무엇으로 맺힌다는 거지?', '흔적...지워지지 않는 흔적.'

이 대화...너무 숙연하잖아...

 

삶의 의미를 찾았냐는 질문에 은빛연어는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라고, 희망을 찾지는 못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 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행복하다고, 그래서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은빛연어의 모습에선 죽음을 목전 앞에 둔 유언같아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생명을 잉태시킴으로 생을 마감하는 연어의 삶...생각해보지 않았던 연어의 삶이 사무친다.

시인의 말처럼 그래서일까, 연어에게선 바다냄새가 아닌 강물의 냄새가 난다.

 

내용도 짧은 이 동화의 많은 부분을 여기에다 옮겨놓았다. 저 아름다운 말들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삶이란 무엇인가...외롭고 고독한 삶에서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준다는 것....사랑..이런 것들을 생각해본다.

 

아, 당분간 연어는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처연해서 어디 먹을 수 있겠나...눈물이 날 것처럼 울컥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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