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두번이나 읽고도 느낀 걸 써내기가 이처럼 막막한 적도 없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읽었는가...

 

어이없게도 나는 '외국에 사는 사람은 지구 위의 빈 공간을 걷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족과 직장 동료와 친구, 어릴 적부터 알고 있어서 어렵지않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나라가 모든 인간에게 제공하는 구명줄이 없다.' 이 글에 끌렸다.

밀란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이 이게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말이다.

 

우연의 연속 끝에 만나 테레사에게 구속되어 가는  토마스는 결코 관계의 속박을 원치않는 관계의 가벼움만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테레사의 표현처럼 ' 그를 더욱 낮은 곳으로 끌고 가 시련에 빠뜨리는' 상황에 기꺼이 동참한다.

테레사를 사랑하고, 기꺼이 어려운 상황에 빠진 그는 그러나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찾아나선다. 이건 아직도 그가 관계의 무거움에 빠지지 않으려는 최후의 몸부림이었나?

누군가에게 정착하여, 평범하게 사는 삶을 꿈꾸면서도 끊임없이 배반하는 사비나와 끊임없이 토마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고 의심하면서도 그를 포기하지 못하는 테레사의 삶은 상반된 이미지이다. 

 

작가가 부여했던 무거운 육체의 가벼운 영혼 토마스, 무거운 사랑을 원한 테레사, 가벼움의 대명사가 된 사비나, 무거운 사회적 규범에서 가벼움의 세상으로 발을 디딘 프란츠의 삶이

밀란이 구분지으려 했던 가벼움과 무거움인지 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들이 원해서 선택한 삶이었건, 상황에 의해서 끌려간 삶이건 그 삶은 한 번 뿐이라는 것, 선택되지 않은 삶을 연습할 장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가 주목한건 이게 아닐까?  작가는 누구의 삶이 옳다고 언질을 주지는 않는다. 

토마스가 의사의 직업을 버리고, 고단한 트럭 운전사의 삶을 산 것이 옳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건 객관적인 잣대일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누가 아는가 그의 삶이 행복했는지....

 

작가는 또한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자웅동체였던 나의 반쪽이 지금 살고 있는 남편(아내)이 아니라면...그 반쪽을 나중에 만난다면, 그렇다면 난 지금의 남편(아내)이 아닌 너무 늦게 찾은 반쪽을 선택해야하는가?

그는 이 대답에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사랑이 꼭 설레임이나 떨림만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지금의 남편(아내)이 나의 반쪽이 아니었더라도, 그와 함께 한 그 많은 시간을 어찌할 것인가...

 

역시나 시대의 아픔을 겪은 자의 사고는 그곳에 머물 수 밖에 없나보다.

우리의 부모세대가 겪었던 전쟁의 아픔이나 우리의 선배들이 겪었던 자유의 투쟁에서 그들이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밀란에게도 역시 프라하의 봄은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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