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우선 불평을 좀 해야겠다. 책 한 권이 무려 774페이지이다.  빼곡한 글씨로 꽉꽉 눌러서이다.  빈 여백도 없다. 어디 숨 쉴 공간이 없다. 지하철에서 읽을 수도,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놀이터 벤치에서 읽을 수도 없는 두께와 무게이다. 여름휴가길에 읽기에도 부담이다. 여행가방에 넣기에도 부담스런 이 책은 오로지 집에서만 읽어야 한다. 3부로 나뉘어진 책을 상중하 세 권으로, 아니면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졌다러면 아쉬움이 남는다. 더운 날, 이 책과 씨름하느라 - 거짓말 조금 보태서 - 악전고투한 병사처럼 읽었다.

 

사건의 중심에 로라 페어리가 있다. 현재 나이 19세. 그녀에게 정혼자가 있다. 45세 약간 대머리이지만 외모는 준수한 준남작 퍼시벌경. 그러나, 대개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로라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지위는 낮지만 젊고 잘생긴 월터 하트라이트는 로라와 마리안의 수채화를 가르치기 위한 미술 교사이다. 그리고, 로라의 이부자매 마리안 할콤. 로라의 아버지는 부자였고, 마리안의 아버지는 가난했다. 그래서 이부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로라는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데다 그녀는 예뻤다. 단, 19세기의 여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수동적이고 유약하다. 마리안은 가난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요즘 시대에나 있을 당차고, 사려깊고 적극적인 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라와 마리안은 어느 친자매못지 않게 사이가 좋으며, 로라에게 마리안은 어머니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로라와 결혼할 남자인 퍼시벌경은 겉으로 보기엔 흠잡을데 없지만(내 기준으로 보자면 두 배의 나이차이가 난다는 것이 가장 큰 흠이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자연스런 혼인이었다니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지금 파산 일보직전이다. 그래서인가, 로라가 사랑하는 이가 있으니 파혼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거절한다. 당연하다, 그는 로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로라의 유산에만 관심이 있으니. 그에겐 로라의 유산만이 유일한 동아줄이다.

로라의 재산을 보자. 남편인 퍼시벌이 로라가 죽으면 받게 될 유산이 2만파운드 (네이버 지식에서 검색해 본 결과로는 20억쯤이란다.) 매년 이자 및 기타수익이 3천파운드(3억이다), 로라의 고모인 백작부인이 로라가 죽으면 받게될 유산이 1만 파운드이다. 자, 지금 곧 파산 일보직전인 퍼시벌과 고모와 고모부인 백작부부. 그들은 1년에 3천파운드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다. 돈 나올 곳은 로라의 죽음뿐이다. 그들이 선택할 경우의 수는? 물론, 뻔하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774페이지에 담았다. 지루하진 않다. 그 사건을 여러 사람의 입으로 들려준다.

작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여러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로라의 첫사랑 월터 하트라이트,  로라의 언니 마리안처럼 로라와 근접거리에 있는 사람의 시선이 주이야기이지만, 한 발 물러선  삼자인 로라의 변호사나 삼촌 페어리경의 관점에서, 혹은 집을 관리하는 집사나 요리사처럼 자신이 본 장면만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도 포함되어있다. 사건의 중심인물인 로라와 베일 속의 여인 앤 캐서릿은 화자로 나서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로라와 앤, 퍼시벌을 그려낼 수 있다.

 

지금의 눈으로는 구식일지 모르나, 그 당시의 시선으로 본다면 꽤 파격적인 소설이 아니었을까?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추리소설의 변주곡이 나왔을까를 생각하면 책 광고의 자화자찬이 그리 어색하진 않다.

리뷰의 앞머리에서 불평을 하긴 했지만, 두꺼운 책을 지루하게 읽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찌 되었을까 궁금해하면서 읽었다면 200여년도 더 지난 이 책이 아직도 현재의 시선으로도 흥미롭다는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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