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지하철에서 계속 혼자 키득키득. 참으려고 하지만 이런 대화에서는 참기가 좀 어렵다.

 

"선생님, 똥차하고 쓰레기차는 왜 다 녹색이예요?"

..."새끼가 어디서 유딩들이 미술 시간에나 하는 질문을 해?"

..."갑자기 궁금해서요."

"녹색이 시각적으로 부담이 없고, 자연 친화적인 색깔 아니야. 똥차가 똥색이면 되겠냐?"

"저기요, 선생님. 똥차는 노란색도 있어요."

"드러운 새끼들. 니네가 다 해먹어라."

 

정상인에 비해서 아주 많이 작은 아버지(음, 난쟁이)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머니(잇새가 벌어진 저짝에서 온 베트남 사람)의 조합은 아무리봐도 현실에선 웃고 넘어갈 수 없는 가족구성원이다. 현실에선 그런데, 책에선 가볍고 재밌고 웃기다.

 

나, 도완득은 지금까지 혼자서 잘 살아왔다. 스윽 나타났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그림자 같은 존재. 누가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 그런데, 자꾸만 날 건드려서 사고를 치게 만든다.

 

똥주 때문에 열 받았고 아버지가 맞아서 열 받았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이 미친 세상이 왜 자꾸 건드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p.34>

 

 제 안에 핵을 품고 있어서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여럿 다치게 할 것처럼 위태해 보이는 완득이가 재미를 붙인 것은 킥복싱. 완득이는 운동을 하면서, 자신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아버지를 이상한 눈으로 힐끗 거리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아버지에게 대놓고  욕을 해대는 인간들을 볼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넉다운을 당해도 흠씬 얻어 터져도 나쁘지 않다.

세상에 혼자인 것 처럼 외롭던 완득이에게 어머니가 불쑥 나타난다.  어머니의 부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온 완득이에게 어머니는 낯설기만 하다. 더구나 베트남사람이라니....그러나,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분을 기다리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자꾸만 신경쓰이는 똑똑하고 도도한 윤하도 싫지 않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이번주에 죽여주지 않으면 다음주에는 절로 가겠다고 협박아닌 협박기도를 했던 살인청부대상 '똥주선생'마저도 어찌된 일인지 갈수록 좋아진다. 

처음으로 완득이의 인생 주변이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귀찮을 줄 알았던 그 관계들이 싫지 않다. 그리고, 완득이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간다.  

 

늘 어둡고 쳐진 어깨를 하던 소년이 이제 웃으면서 당찬 주먹을 쥐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간다.   완득이의 스텝 바이 스텝은 현재 완료형도 과거 완료형도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미래가 열려 있어서 더 반가웠던 완득이.

 

완득아~ 화이팅이다! 네 모습이 보기 좋아서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그리고, 네 또래의 녀석들을 조금은 알게된 것 같구나. 숨기고 싶은 가족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네 용기가 멋지더구나.  나라면 어림도 없었을거야. 나는 겁쟁이거든. 네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서 그래서 더 흐뭇했다.

 

<책에서>

 

사람한테는 죽을 때까지 적응 안 되는 말이 있다. 들을수록 더 듣기 싫고 미치도록 적응 안되는 말 말이다. 한두 번 들어본 말도 아닌데, 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가슴을 치는 말은 한 번  두 번 세 번이 쌓여 뭉텅이로 가슴을 짓누른다. <p.196>

 

나는 아버지를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굳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거였다. 비장애인 아버지는 미리 말하지 않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애인 아버지를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상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숨긴 자식이라며 듣도 보도 못한 근본까지 들먹인다. 근본은 나 자신이 지키는 것이지 누가 지켜라 하는 것이 아니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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