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건강한 에너지가 발산되는 듯한 책의 사진 때문에 책을 읽으려고 손을 내밀때마다 즐거운 미소를 짓게 된다. 그리고 책표지의 사진은 수록된 시들이 사랑에 대한 시보다는 삶에 대한 것들을 노래하는 시들일 것이다 짐작하게 된다.

 

안도현 시인이 추천하는 시들은 비교적 덜 알려진 것들이다. 읽어 본 시가 5편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들어보지 못한 시인의 이름도 수두룩하다. 아마 안도현시인의 이름을 걸지 않았다면 읽어보지도 읽을 기회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시에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며, 달콤하고 말랑거리며 어딘지 애매해서 안개같은 그런 시들말고도 멋진 시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말 시인의 말이 맞다. 이전엔 사랑에 관한 시들만 눈에 들어오더니, 이별에 관한 시들만 눈에 들어 오더니...연애와 이별의 과정을 거쳐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다보니 사랑에 대한 시외에도 눈을 돌리게 되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체로 시는 가깝고도 먼 존재처럼 느껴진다. 인터넷의 수많은 블로그에 시 한편 쯤은 올려져 있고 시 한편의 분량은 퍼나르기에도 적당하다. 그러나, 거기까지인 경우 또한 허다하다. 시집을 꺼내서 읽기가 소설 한 권 읽는 것 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시 한편에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니 짧은 시 한 편을 이해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안도현 시인이 추천한 시들은 그런면에서 너끈히 읽어넘길 수 있는 시집이 되었다. 안도현시인이 설명해주니  시를 한결 쉽고 편하게 읽게 된다. 시인의 눈으로는 이렇게 읽는구나, 아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구나 하면서 시집 한 권을 맛나게 읽었다. 책 속에 수록된 사진들은 몇 번이고 어린 시절의 나를, 그때의 젊었던 내엄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추억 속으로 들어가 그때를 회상하게 하는 멋진 사진들이 책읽기를 즐겁게 해주었다. 좋았던 시들을 몇 편 적어본다.

 

[파안...고재종]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그려!

 

--->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허연 수염을 옛날 사람처럼 멋지게 기르시던 할아버지, 아기였던 조카들에게 들려주시던 시조가락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돌 하나, 꽃 한송이....신경림]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종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살아온 삶의 이력이 보이고 잠오지 않는 밤을 멀뚱거리며 어찌 살아야 하나 고뇌하는 모습과 멋들어지게 살고 싶은 소망이 보인다. 안도현 시인의 설명처럼 현실과 이상사이의 거리이기도 하고 하찮은 돌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 경계에, 인생이 있는 멋진 시이다.

 

[감꽃....김순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지금의 나를 반성하게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불혹惑, 혹은 부록附錄.....강윤후]

마흔 살을 불혹이라고 하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노래가 귀에 들어왔고,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나이를 넘기고나니 이 시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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