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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아이들
루이제 린저 지음, 전유정 옮김, 김혜진 그림 / 월간싱클레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랜 전에 읽은 -그러고 보니 한 15년도 넘었다 - '생의 한가운데'의 루이제 린저의 작품이다. 오래 되어서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그때 읽었던 그 느낌은 아직도 오롯이 남아있다. 이게 독서의 즐거움이다. 갑자기 공자님의 말씀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가 뜬금없이 떠오른다. 오래 전에 기분좋게 읽었던 작가의 작품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기쁨은 오랜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기쁨과 비슷하다.
꼬리별이 나타났다. 어른들은 망원경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아이는 눈으로 꼬리별을 볼 수 있다. 아니 그 꼬리별이 어서 따라오라고 길을 안내하기까지 한다. 꼬리별은 세상을 평화로 다스릴 평화의 왕이 태어날 것임을 알리는 징표. 왕은 평화의 왕을 찾아나선다. 그리고, 부모 몰래 꼬리별이 알려주는대로 길을 나선 멜히오르, 발타자르 왕자와 카스피리나. 이렇게 세 아이가 사막을 지나 평화의 왕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예수님의 탄생과 동방박사 세사람의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대신 금화와 금단추를 선물하는 소년들에게 평화의 왕의 어머니는 말한다. 버리라고. 욕심에 가득차게 하고, 질투하게 하고, 인정 없이 만들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버리라고. 그리고 당부한다. 너희들은 부디 좋은 왕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지도 말고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지도 말고 가난한 자들에게서 빵과 집과 땅을 빼앗지 않는 평화의 왕이 되라고.
그 소년들은, 아니 두 왕자님은 평화의 왕이 되었을까요?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걸까?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가? 안도현 시인의 시모음집 제목처럼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은 아이나 아이같은 심성을 가진 자만 볼 수 있는 세상인가?
책 속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별을 쫓는 아이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천사같은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슬프지 않았으면, 적어도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혜진아, 예슬아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