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을 때 늘 읽고난 느낌을 어떻게 풀어낼까를 염두에 둔다. 그런데, 밀리언 달러 초콜릿은 읽으면서 막막했고, 읽고 난 후에도 며칠을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다들 말랑말랑하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냄새가 나는 것처럼 좋았다고 하는데, 난 왜 이 책을 읽는게 힘들었을까? 황경신, 황경신하는 작가의 글이 궁금했고, 그닥 나쁘지도 않았으며 어딘지 몽환적인 그림도 예쁜 이 작은 책을 읽어내느라 꽤 고전을 했다.
20대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이 글을 읽어내기 힘든 나는 어느새 그 시기의 감성을 읽어낼 수 없을만큼 무미건조해졌을까?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글에서는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의 냄새가 났다. 충만한 사랑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 외로움이 베어났으며, 사랑을 믿을 수 없는 나이에 이르고만 쓸쓸함이 있었다. 그 시기를 나 역시 겪었고, 그녀의 감정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닌데, 난 그녀의 글 속에 녹아들지 못했다.
리뷰를 쓰기 위해 중요했던 부분을 다시 읽었다.
[내가 사랑한 것은 네 속에 있었던 소년이었다는 것을. 나를 사랑한 것은 네 속에 있었던 소년이었다는 것을. P.102]
어느날 문득 내가 사랑한 대상은 네가 아니라 네 속에 있던 - 결코 만날 수 없는 존재인 - 소년이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사랑이 가여웠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져 버렸는데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줄곧 사랑인 줄 알았던 대상이 그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가 사랑했던 대상은 영원히 만날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존재인데, 그녀의 사랑은 얼마나 애처로운가?
[그렇다면, 봄날이 가는 것은 어떤 특별함이 잇을까? 모든 것, 그러니까 사랑이라거나 희망이라거나 꿈 같은 것은 고스란히 남겨놓고 봄날만 훌쩍 떠나버리기 때문에?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모두 데리고 가버리기 때문에? 만약 둘 중 하나라면, 어느 쪽이 더 슬플까? 혼자 가버리는 것? 아니면 모두 가버리는 것? P.108]
[사랑을 해도 외롭고 사랑을 하지 않아도 쓸쓸한 봄날,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 그것만으로 눈물겹게 행복해지는 봄날, 그런날들이 막 시작되려 하는 어느날 아침 나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 그건 어제까지만 해도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떨쳐버리고 싶었던 기억이었을까? 다시 돌아온 이 봄날이 또다시 떠나는 그날, 그는 내게서 무엇을 가지고 갈까? 혹은 무엇을 남겨두고 갈까? P109]
그녀는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에, 사랑을 해도 하지 않아도 외롭고 쓸쓸한 봄날에, 아직 떠나지도 않은 사랑과 이별을 고하고 있다. 그녀에게 사랑은 그런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쉽게 상처받는, 쉽게 절망하는, 쉽게 눈물 흘리는, 쉽게 행복해지는, 유리로 만든 구슬처럼 불안하고 위험한,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바로 지금 이 순간. P.170] 을 마음껏 누리라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사랑을 믿고 싶지만, 믿어야 할 대상이 없어져 버려서, 사랑이 달아나버려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당신은 뭔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사랑은 믿고 안 믿고의 문제를 거론할 대상이 아니니까요. 사랑은 그냥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믿는 게 아니라, 그냥 나누는 것입니다." P.207]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경우를 알려주고 싶다.
그리하여 그녀가
["어떤 사람은 사랑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그의 발목을 묶고 그의 입을 틀어막고 벽을 높이 쌓아올린다, 사랑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까맣게 모른채로,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랑이란, 진짜 사랑이란, 이세상의 모든 것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랑, 완벽한 희망, 완벽한 꿈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완벽하지 못한 나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은, 희망은, 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완벽하지 않은 나를 찾아와주고 있다, 고맙게도 행복하게도." P.209]
라고 고백을 했을 땐, 책 속의 그처럼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산한 겨울의 끝자락엔 분명 봄이 있다. 우리 모두는 그걸 안다.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처연하고 쓸쓸한 봄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운 봄이 사랑때문에 행복때문에 더 반짝반짝 빛나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 봄, 사랑이 힘든 많은 이들이 사랑때문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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