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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ㅣ 비룡소 걸작선 49
랄프 이자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英傑)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세기10장 8절~10절]
책을 다 읽고 네이버 검색에서 찾은 첫번 째 단어, 니므롯이다. 니므롯은 성경에 등장하는 첫번째 영웅호걸이며 노아의 아들 셈의 손자이다. '특이한 사냥꾼'이란 전쟁을 좋아하는 영웅이며 바벨탑을 세우게 한 인물이다라고 나와있다.
작가는 아마도 여기에서부터 출발을 한 듯하다. 세상의 첫 전쟁영웅 니므롯은 하나님처럼 세상을 다스리고 싶었으며 영생불멸을 원했다니 말이다.
니므롯은 마루둑, 메실림이라는 신이 되었다가 세상 밖으로 환생하여 온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크세사노 황금상이 된다. 그가 곧 깨어나 세상을 지배하리라는 것을 알게된 페르가몬 박물관의 야간 경비원이자 쌍둥이 남매 제시카와 올리버의 아버지 토마스의 실종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박물관의 사라진 유물의 절도용의자가 아버지라는 것을 경찰에게 듣고서야 쌍둥이 남매는 그들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송두리째 잊어버리다니...믿을 수 없는 사실을 파헤치기 위한 남매의 모험과 환타지가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이다.
크세사노가 다스리는 크바시나 즉, 잃어버린 기억의 세계에 들어간 '찾는 사람 올리버'와 현실세계에서 크세사노의 출현을 막으려는 제시카의 좌충우돌 모험담. 주독자층이 초등5~6학년으로 되어있으니 환타지 소설의 결말은 방학때면 개봉되는 초대형 환타지물처럼 해피엔딩이고, 어딘지 교훈적이다.
예를 들자면
"크세사노에게 그대 같은 인간들은 너무나 쉬운 상대야. 그대들은 죽도록 사랑했거나, 사무치게 증오했던 자들을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가! 죽음으로 망각이 끝나기 전에 잊힌 모든 것들은 크바시나로 끌려온다...."상권369p
"...그리고 과거를 잊는 사람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어 있지." <상권 397p>
"..그렇지만 증오는 부당한 행위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 아니야..." <상권 412p>
"...인간들은 뼈아픈 과거로부터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어. 마음을 불펴한게 하는 기억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지..." <상권 419p>
"언젠가 한 시인이 이런 말을 했죠. '남을 신뢰하기 전에 조심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불신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모든 것을 불신하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죠." <하권 103p>
잃어버린 기억들이 모이는 세상인 크바시나엔 대체로 좋지 않은 기억들, 잊혀진 존재들, 간밤에 꾸었던 꿈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사용되었으나 잊혀진 물건들의 세상이다. 크바시나를 묘사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생각해보았다. 소중했던 기억들, 순간들, 잊고 싶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 내가 사용했던 수많은 물건들, 꼭 다시 와보고 싶은 추억 속의 장소들, 나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대체 난 무엇을 기억하고 사는가하는 생각이 드는 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리라.
책을 덮으며 머리 속에 드는 단어가 있으니 소중함이다. 나와 관련이 있는 모든 대상들 관계들을 소중히 여겨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책에서 인용한 늙은 랍비의 말처럼 우린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요즘의 시대에 옛 것을 기억하고 소중히하며 그것으로부터 미래를 준비하자는 말이 역설로 들리지만 가만히, 천천히 작고 소소한 것들을 바라볼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면 난 아무래도 주독자층에서 벗어나도 한참은 벗어난 것 같다.
늙은 랍비의 충고대로 읽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늦은 시간 나는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