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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을 그리는 남자 이현우의 음악앨범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현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기자들은 지겹지도 않나봐요. 인터뷰기사에 늘 외롭지 않으세요? 라는 내용이 들어가니...저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외롭지 않냐구요. 사람들은 외로운 걸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누구나 다 외로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로운 게 생각보다 나쁘진 않아요.'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다.
이 책, '한 달 후, 일 년 후'를 읽고 드는 생각. "아,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은 다 외롭구나. 외로워서 몸서리를 치는구나."
부유한 26살의 조제 (p.101 베르나르는 지금 잘못을 저지르고 있고, 나는 그 잘못을 저지르도록 내버려두고 있어. 진실한 행복, 그리고 잘못된 사랑 이야기. 우린 달리는 말의 고삐를 당길 수 없을거야.) 는 베르나르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21살 의과대생인 자크와 지루하지만 만남을 이어간다. 자크가 떠나고 나니 그의 부재를 견딜 수 없어 찾아헤매는 조제. 그렇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단정짓기는 애매매호하다. 다만 지금 자크가 필요할 뿐이다.
베르나르는 조제를 사랑한다.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p.84 조제,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건 내게는 꽤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내 삶은 음악없는 느린 현기증과도 같아요. 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려 했죠? 그래요. 그건 근친상간이죠. 우리는 '같은'사람들이니까요.) 아내 니콜은 그저 아내일뿐이다. 그녀를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니콜에겐 오직 베르나르만이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베르나르를 사랑했던 여배우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를 사랑한 중년의 알랭. (p.67 파니는 눈치 채고 있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윤기를 잃은 이 어깨가 아니라 베아트리스의 단단하고 둥근 어깨야. 내게 필요한 건 영리한 두 눈이 아니라 베아트리스의 뒤로 젖힌 열정적인 얼굴이야.) 알랭과 평온한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는 파니. 베아트리스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아름다운 청년 에두아르. (p.84 젊음이 맹목에서 자리를 내줄 때, 행복감은 그 사람을 뒤흔들고 그 사람의 삶을 정당화하며, 그 사람은 나중에 그 사실을 틀림없이 시인한다.)
베아트리스는 사랑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용할 뿐 사랑하지 않는다. (p.62 그는 파산 직전이군요! 그러게 젊은 남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니까요?) (p.106 한편, 베아트리스는 권력과 사랑 사이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쪽에는 빈정거리기 좋아하고, 위험하고, 눈부신 졸리오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상냥하고, 아름답고, 몽상적인 에두아르가 있었다. 그녀는 그런 상황에 열광했다. 선택을 해야하는 잔인함은 그녀에게 황홀한 삶을 선물해주었고, 그녀는 순전히 직업적인 이유로 졸리오에게 유리한 쪽으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탁상달력만한 크기에 197페이지 밖에 안 되는 적은 분량의 소설에 인물의 애정관계도를 그려야 할 만큼 복잡하다. 그들은 이렇게 아우성친다. "나 진짜 외롭거든. 날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에서 꺼내줘"라고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말하는 것 같다.
도대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왜 결혼을 하는거야? 왜, 이들은 결혼을, 아내를,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을 이리도 쉽게 배반하는거야? 이들에게 사랑이라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읽으면서 사랑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사랑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아니면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렇지만 나는 사랑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등장인물들 때문에 짜증이 났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할까? 에두아르처럼 자신의 순결할 사랑을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에두아르의 사랑을 이용하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할까? 남편이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것을 알면서도 그를 계속 사랑해야하는 니콜의 모습은 정말 바보처럼 그려져야 할까? 그녀에게 그따위 사랑은 집어치우라고 해야할까?
프랑수와즈 사강이 그린 사랑은 20대 청년기의 불같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사랑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사랑하지 않고 결혼을, 일정한 관계의 끈을 놓치 못하는 껍데기뿐인 사랑이 사랑이냐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짧은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이 복잡하다.
(p.186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