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이른아침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자전적 소설이라기 보다는 글의 화자인 '나' 생텍쥐 베리의 자서전을 읽는 느낌이다.

인간의 대지를 읽는 동안 '어린왕자'를 떠올리게 된다.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 사막여우,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있을 우물때문이며, 밤하늘의 별이 소중한 건 우리의 어린왕자가 수많은 별 중 어딘가에서 우리에게 손짓하며 웃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갈피 갈피에서 어린왕자가 불쑥 튀어 나와 '안녕!'하며 인사할 것 같은 느낌. 처음 읽었는데도 꽤 친숙하다.

 

인간의 대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늘 오갔던 비행과 사막에서의 불시착과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르면서 사유하게 되는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담긴 소설이다.

 

나, 생텍쥐 페리는 우편물 수송기를 운전하는 비행기 조종사이다. 초창기의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의 삶은 언제나 위태롭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불시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지막 비행일 수도 있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갖고 조종석에 오르지 않았을까? 칠흙같은 밤이면 오로지 '조종사' 혼자 세상에 남겨져 있는 것처럼 불빛 하나 없는 적막한 하늘을 홀로 나는 것이다.

아, 그 고독하고 외로운 밤하늘의 별이 그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 공기와 그 바람을 맞으면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보면서 '조종사인 나는' 살아있음을 감사한다.

 

새벽녁에 문을 여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간밤의 고통을 웃음으로 날려 버리며, 따끈한 크루아상과 밀크커피를 앞에 놓고 식사를 할 것이다. 네리와 나는 이 생명의 시작인 아침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p.34>

 

 

그래서 이토록 외롭고 위험한 시간이 지나면 커피향 가득한 냄새와 구수한 빵냄새를 맡으며 소박한 아침을 즐기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이룰 수 있음을 감사한다.

 

"아니, 절대로 아니예요. 할머니, 이번에는 동네 정원에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광야의 씁쓸한 고독의 냄새와 모래바람과 열대 지방의 찬란한 달그림자를 갖고 돌아오는 길이라고요." <99>

 

아마도 '나는' 광야의 씁쓸한 고독의 냄새와 모래바람 때문에 위험을 무릎쓰고 하늘을 나는게 아닐까?

 

비록 그 탐색에 나는 조금도 희망을 걸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탐색들이 내겐 유일한 구원의 기회처럼 보인다.<196>

 

단 한줄기의 희망도 보이지 않지만 주저않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내가 보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걸어가는 저 사람들을 향하여 뛰어가지 않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저기, 보이지 않아!<208>

 

그 지독한 신기루 속에서 차가운 이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외친다. 저기요~ 내가 내가 여기 있어요. 그렇지만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 내 목구멍은 타들어가고 내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위험이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안다. 그것은 생명이다.  <232>

 

위험하는 것을 알면서도 비행을 계속 하는 것은 그것은 위험을 즐기기 때문도 좋아하기 때문도 아닌, 바로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고백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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