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선생의 새 책이 나왔다. 냉큼 샀다. 사실 무슨 내용인지도 보지 않고 살 정도로 나는 신영복선생에 대한 충성도가 상당히 높은 독자이다.
배달된 책을 열어보니 서화집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그동안의 글들과 그림을 추리고, 일부는 새로 추가한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익숙한 글들이 꽤 많았다.
읽으면서 '어, 이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있던 글이네, 이건 강의에 나오는 글이고, 이건 나무야나무야에 나오는 글이구나..' 하며 찾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좋았던 글은 신영복선생이 다시 추려서 출간하고 싶을 만큼 좋은 글이었네 하고 괜히 흐뭇했다.
선생의 글은 주로 긴 장문으로만 읽어서 그런가 짧은 글과 거기에 보태지는 그림만 있는 여백이 보이는 페이지들이 낯설었다. 설명이 들어간 긴 글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 페이지를 꽉 채우지 않은 짧은 글과 빈 여백, 그림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로 시작하는 첫페이지부터 석과불식의 마지막까지 선생은 줄기차기 처음처럼 희망을 잊지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같이 어깨동무하며 더불어 나아갈 것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소망하나 가슴에 품지 않고 살았다면, 자신에게 엄정하지 않았다면 선생도 그 긴 수감생활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긴 시간을 홀로 뚫고 지나온 삶의 흔적과 고뇌가 담겨있는 글들이기에 짧지만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조용하지만 준엄한 목소리는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고 성찰하게 만든다.
이 시대의 어른인 신영복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나태해지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꼭 꺼내서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좋았던 글을 옮겨보면,
<지남철>p.23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습니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영규 글)
당신이 읽어준 이 간결한 글만큼
지식인의 단호한 자세를 피력한 글을
나는 이제껏 알지 못합니다.
<편안함은 잠들게 합니다> p.219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것은 단지 과거의 철학자가 던진 질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편안함, 그것이 삶의 궁극적 가치일 수는 없습니다.
편안함은 우리를 잠들게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