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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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을 처음 만난 건 2000년쯤 일 것이다. 출옥후에 나온 황석영선생의 소설은 뜻밖에도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생활의 무게감과 사랑과 죽음, 시대적 아픔까지도 무뎌지게 만드는 시간 앞에서의 무력감, 사랑, 가족, 이상과 신념, 시대의 우울까지 모든 것이 녹아있지만, 작가의 글은 담담하고 간결하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한 젊은이의 이상과 사랑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낸 황석영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꽤 오랜시간이 흘렀는데도 오현우와 한윤희 그리고 은결을 기억한다. 윤희가 현우에게 쓴 마지막 편지의 내용 또한 기억한다.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은결'이라고 해야겠다 생각해서인지 줄곧 작품에서의 은결을 남자아이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으~기억력의 한계다.

 

오랜 감동으로 기억되는 이 책을 다시 읽게된 것은 '은결'님의 서평을 읽고나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하는 호기심에 책을 집어들었다. 한자 한자 정독을 하며 읽었다.

결혼 전에 읽은 오래된 정원을 결혼 후에 그것도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읽어서인가 가슴 아팠겠구나 하는 단순한 감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이젠 내가 윤희가 되고, 현우가 되어서 읽게 되니 주체할 수 없이 감정이입이 되었다. 별거 아닌 부분에서도 눈물이 툭하고 쏟아졌다.

 

세상과 차단된 감옥에서 18년을 보내고 나온 현우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담담하면서도 무기력했다.  TV에서 소개되는 요리프로그램을 보며 흘리던 눈물은 잃어버린 일상의 모습과 엇갈린 사랑에 대해 느꼈을 회한이다. - 난 이 부분이 제일 가슴아팠다. 윤희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난 후에 우연히 보게 된 북어국을 만드는 요리 프로그램과 현우의 눈물...

 

억눌린 자유를 위해서, 불의를 바로잡고자 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그 시대의 수많은 젊음.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영달과 사랑을 뒤로한 채 그 아름다운 젊음을 희생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랬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엔 언제나 자신이 없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자유가 내 앞의 수많은 현우와 윤희와 미경과 영태의 희생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들이 소망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다같이 더불어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을텐데...

현우가 다시 맞딱뜨린 세상은, 현우가 이루고자 했던 - 그의 사랑과 젊음을 희생하면서까지 - 세상이었을까?

 

현우처럼 세상을 바꾸고자 했지만, 실패한 지식인으로 살아온 윤희아버지의 마지막 고백은 가슴 아픈 시대를 살아온 자의 회한과 아쉬움이 있었다.

"얘, 글쎄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지막 무렵이 되면 자기 잘못을 정확히 알게 되고 또 자신을 용서하게 되더구나. 나는 절대로 그때를 후회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그런 길밖에 없었을까 하구 생각해볼 때가 많아. 그래, 세상에서 지어낸 삼라만상은 부처님 말씀처럼 세상이 지닌 한계만큼의 꼴로 나타나게 마련이지. 내 동료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그저 허공중에 빛나는 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양쪽을 보니까 서로 거울을 맞대놓은 듯이 그저 사람살이의 좌우가 바뀐 데 지나지 않았어. 내용은 서로 싸우는 동안에 서로를 닮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람세상의 이 미완은 멋있지 않니?"(상권 147페이지에서)

 

 

책 속에서

 

<상권39페이지>

'사랑은 언제나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지, 사랑은 어째서 죽음과 꼭 같은 닮은꼴인지.'...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1996년 여름, 당신의 윤희

 

<하권 308페이지>

내게 가르쳐주거나 베풀어주지 못할 미래의 것들, 남겨두었다가 당신의 딸에게 모두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감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들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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