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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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하나의 오은수는 그 나이를 지난 나의 자화상같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서른 하나, 돈도 없고, TV에 나오는 멋진 커리어를 갖춘 전문직 여성도 아니고, 사귀고 있는 남자와의 결혼도 불투명했던 그 불안한 서른 하나를 나 또한 지나왔다.
 
사랑해서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가 결혼을 한다. 오늘...
그 오늘 난 무엇을 할까? 배낭하나 들고 산으로 바다로 떠날까?
아니면,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라며, 쿨하게 보내줄까?
아니면, 결혼식장에 쳐들어가, 한바탕 소동을 부릴까?
'다 부질없는 짓이다'하며, 쓴 소주 한 잔 마시며 털어버릴까?
은수는 생각보다 덤덤한 것이 이상하리만치, 똑같은 일상 속으로 들어가 다른 날과 다를바 없는 삶을 살아낸다.
나도 은수처럼 했을까? 그랬을 것 같다.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너무 이상한 그 느낌...에서 서른이라는 숫자를 떠올렸을 것 같다.
 
서른을 지났고, 서른 하나에도 아직 노처녀였던 나는 그래서, 은수를 이해했고, 은수의 친구들을 이해했다.
여우야 뭐하니의 서른 셋 병희처럼 '한 잠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어디에다 나이를 흘렸는지 어느새 서른 셋이 되었다'는 병희의 말이 곧 나의 독백이다.
예전엔, 서른만 되면, 걱정도 고민도 다 초월한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에 몸서리치지 않을 것 같고, 내 미래 때문에 고민할 일도 더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서른이 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사랑 때문에, 미래 때문에 똑같은 고민을 하더라.
이제 그 나이를 훌~쩍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어리고 철이 없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진짜 어른이 되는거지?
 
은수는 서른 하나에 사랑을 보냈고, 사랑을 만났다.
그러나, 은수의 마음에 쏘옥 드는 남자는 없다.
스위트하고, 사려깊은 태오는 너무 어려서 미래가 듬직하지 않고, 맞선 본 그 남자는 젠틀하고, 맞선 시장 어디에 내 놓아도 80점은 하는(서른 하나의 은수가 더는 만나기 힘든) 괜찮은 남자이지만,  만나도 가슴이 뛰질 않는다.
유준이는 오랜 친구이긴 하지만 사랑은 아니고...
내가 은수라면, 나는 아마도, 어린 태오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서른 하나에 나이 어린 태오를 사랑한다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가슴 저리고,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면 그걸로 된거 아닌가? 
 
태오의 나이 즈음에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겠다고 했을 때, 내 친구들은 다 말렸다.
복학도 못한 어린애를 지금 만나면, 언제 졸업하고, 언제 직장을 잡아서 결혼 할거냐는 친구의 말은 틀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다.
내가 결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보겠다는 건데도 철없다는 소리를 무던히도 많이 들었다.
 
우린 때로 너무 많이 걱정을 한다.
이 사람이 혹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내가 좋아한다고 고백한 걸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그래서 난 은수가 태오를 떠나 보낸게 안타까웠고, 한편으론 이해했다.
나도 그랬을지 모르니까...
내가 서른 하나에 스물 넷을 만난 건 아니었으므로.
은수는 서른 하나에 사랑을 했고, 아파했으며, 사랑을 보냈다.
그래도, 나는 서른 둘의 은수에게 또 다시 사랑이 찾아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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