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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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 노루의 수가 그나마 많은 것은 고기값밖에 못 건기지 때문이다. 반달곰과 사향노루는 웅담과 사향 때문에 그 수가 훨씬 적다. 호랑이는 가죽뿐만 아니라 뼈와 살까지 비싼 약재로 팔린다. 그래서 호랑이가 가장 먼저 멸종위기에 몰렸다.

사람들은 동물에게 상업적 가치를 매긴다. 그 가친 순으로 동물은 멸종해간다. - 69쪽

세어보니 가지마다 잣송이가 서너 개씩 달려 있다. 대여섯 개씩 달린 가지도 많다. 풍작이다. 이동관찰을 하면서 잣나무와 참나무, 야행호두나무 숲에 열매가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발굽동물들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여기저기 다니며 어렵지 않게 먹이를 구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결국 이런 숲을 찾아와 눈을 헤집고 바닥에 떨어진 잣송이나 도토리, 호두를 뒤진다.

이 발굽동물을 따라 호랑이가 출몰한다. 그래서 숲의 열매를 확인하는 일은 잠복지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

나는 수첩에 적어 넣었다.

'까마귀산 서사면 초입의 15헥타르 잣나무 군란. 가지마다 평균 3개 이상의 잣송이. 한달 이상 지나서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호랑이 발자국과 배설물' 이런 정보들이 축적되면 호랑이 생태지도가 완성된다.
- 75쪽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과 개과 동물의 발자국은 보통 사람이 구분하지 못할 만큼 유사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발톱자국이다. 고양잇과 동물을 평소 발톱을 오므려 숨기고 다닌다. 그러다가 사냥감에 발톱을 박아 넣을 때나, 나무와 바위절벽처럼 가파른 곳을 오를 때만 갈고기 같은 발톱을 좍 펼친다. 필요한 때만 꺼내 쓰기 때문에 발자국에 발톱자국이 찍히지 않는다. 반면 개과 동물은 발톱을 오므리고 펼 수 있는 기능이 없다. 그래서 발자국마다 늘 발톱자국이 찍힌다.

둘째, 발볼의 크기와 모양이다. 같은 크기의 발자국이라도 고양잇과 동물의 발볼이 훨씬 크다. 보통 사람들은 도사처럼 큰 개의 발자국을 그 크기만 보고 호랑이 발자국으로 착각하곤 한다. 개의 발가락은 길고 넓게 퍼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발자국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비교해 보면 같은 크기의 발자국이라도 발볼의 크기는 다 자란 도사견보다 새끼호랑이가 월등히 크다. 그리고 고양잇과 동물의 발볼은 사다리꼴인데 비해 개과 동물의 발볼은 삼각형이다.

- 102쪽

셋째, 발자국의 가로 세로 비율이다.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은 길이와 너비가 비슷한 원형이지만, 개과 동물의 발자국은 길이가 너비보다 긴 타원형이다. 여우의 발자국이 제일 길고 그 다음은 늑대, 그 다음은 개의 순서다. 호랑이의 뒷발자국도 길이가 너비보다 약간 길다. 하지만 앞발자국은 길이가 너비와 같거나 오히려 짧아서 둥그스름한 원형을 이룬다. 원형 안에 네 발가락과 발볼이 찍혀 있는 모양이 둥근 매화를 닮았다 해서 호랑이의 발자국을 매화발자국이라고도 부른다.

마지막으로 발가락의 위치다. 호랑이는 두 번째 발가락 자국이 제일 높이 위치한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첫번째, 네번째 발가락 순이다. 그래서 두번째 발가락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구분한다. 제일 크고 높은 발가락이 왼쪽에서 두번째라면 오른발이고, 오른쪽에서 두번째라면 왼발이다. 반면 개과 동물은 두번째와 세번째 발가락의 크기와 높이가 똑같다. 그래서 발자국 하나만 보면 왼발인지 오른발이니지 구분하기 어렵다. 또한 호랑이의 발가락은 첫번째와 네번째가 개과 동물처럼 측면으로 벌어지지 않고 안쪽으로 오므려져 있어 전체적으로 둥글고 다부지게 갈무리된 느낌을 준다. - 103쪽

똑같은 흔적이라도 지표면의 상태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다.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진흙 위에 찍힌 발자국은 비교적 정확하다. 하지만 진흙에 물기가 너무 많으면 발을 뗄 때 묽은 진흙이 흘러내려 발자국이 줄어든다. 모래사장을 걸을 때도 모래가 튀겨 전체 윤곽은 커지지만 발을 뗄 때 모래가 무너져 내려 발자국의 크기는 줄어든다. 살짝 내린 가루눈 위의 발자국은 오히려 커진다. 발자국을 디딜 때의 공기압으로 인해 눈가루가 밖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린 다음의 발자국은 파악하기 힘들다. 발을 눈 속 깊이 디뎠다 뺄 때 눈이 무너져 내린다. 이럴 때는 발을 디딘 눈구멍의 깊이와 넓이로 가늠하지만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발자국 표면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발자국의 경계면과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진흙이 축축한지 말랐는지, 뾰족한지 마모되었는지에 따라 지나간 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발자국 안에 물이 남아 있다면 그 상태가 어떤지도 중요한 정보다. 맑은 물이라면 한 시간 이전에 지나간 발자국이고, 흙이 채 가라앉지 않은 탁한 물이라면 한 시간 이내에 지나간 발자국이다.- 111쪽

만약 지금도 물이 움직이고 있다면 몇 분 전에 지나간 것이다. 풀을 밟았을 때는 풀이 어느 방향으로 넘어졌는지, 부러진 풀줄기가 얼마나 시들었는지, 새벽이라면 이슬이 매달려 있는지 여부를 잘 관찰해야 한다. 부러진 나뭇가지나 엎어진 돌, 나뭇가지에 걸린 한 움큼의 털갈이 제 위치를 벗어난 자연의 사물에도 예리한 눈길을 주어야 한다.

자취를 관찰하는 것은 '모호'에서 '구체'로 한 걸음씩 옮겨가는 일이다. 거듭 관찰하고 추적해 나감에 따라 불명확했던 자취는 점점 선명해져, 마침내는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것처럼 윤기나는 하나의 작은 사실이 된다. 하나의 사실은 새로운 사실에 연결되고 이렇게 작은 사실들이 조금씩 쌓여 결국 사실의 전체에 도달한다. - 111쪽

이동관찰을 할 때는 내가 자연의 주체가 되고, 잠복관찰을 할 때는 내가 자연의 객체가 된다. 주체가 되면 자연의 깊은 곳을 볼 수는 없지만 많이 볼 수 있다. 객체가 되면 자연의 많은 것을 볼 수는 없지만 깊이 볼 수 있다.
- 200쪽

낮에는 바람소리를 구분하며 시간을 보낸다.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들바람, 된바람, 센바람, 큰바람, 큰센바람, 노대바람, 황소바람, 바늘바람, 샛바람, 댓바람, 산바람, 눈바람, 바닷바람, 너울바람, ....... 이 자연의 피리소리는 어떤 때는 격류 같고, 어떤 때는 빗발치는 화살 같으며, 어떤 때는 아기의 숨소리 같고, 또 어떤 때는 바다처럼 심원하기까지 하다.

눈송이가 똑바로 떨어져 내리면 고요다. 눈송이가 나풀나풀 떨어지면 실바람이다. 얼굴에 바람이 느껴지고 눈송이가 비켜 내리면 남실바람이다. 참나무에 매달린 마른 나눗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눈송이가 휘날리면 산들바람이고, 마른 나뭇잎뿐 이나라 작은 가지까지 흔들리고 바닥에 내린 눈송이가 다시 날아오르면 건들바람이다. 작은 나무 전체가 흔들리며 그 우듬지에 쌓인 눈더미가 날아가면 들바람이고, 큰 가지가 흔들리며 숲이 전깃줄처럼 울면 된바람이다. 큰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눈이 수평으로 내리면 센바람이고, 가느다란 가지들이 부러져 날아가고 바닥에서 눈가루가 온통 날아올라 시계가 짧아지면 큰바람이다.- 204쪽

큰 가지가 부러져 날아가고 바다에서 용오름이 일어나면 큰셈바람이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숲이 뒤집히면 노대바람이다. - 206쪽

강력한 무기를 가진 육식동물들이 사회적 자제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만약 자제력을 발휘하지 않고 사사건건 싸워 우열을 가린다면, 그 강력한 힘과 무기로 인해 그 종은 멸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한 동물일수록 사회적 자제력이 발달하고, 사회적 자제력이 강할수록 다른 강자와도 일정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둔다. 일종의 핵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야행호랑이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야생호랑이에게 사회적 자제력이 있다 하여 사육 호랑이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사육 호랑이는 자신의 힘으로 먹이를 잡으며 살아온 것이 아니어서 자신의 힘과 그 용도를 모른다. 자신의 힘을 모르면 상대의 힘도 알기 어렵다. 병아리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병아리를 쪼아 죽이듯이 사육 호랑이가 사람에게 장난을 친다는 것이 살인행위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산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면 동물에서 탈출한 호랑이보다 야생호랑이를 만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 329쪽

월백은 새끼들과 엎치락뒤치락 뒹굴면서도 바깥세상과 가족 사이에 경계를 두어, 안과 밖을 뚜렷이 구분했다. 경계의 바깥은 마음의 밖으려 내쳐서 거리를 둔 냉정한 공간이었지만, 경계의 안쪽은 가족끼리 마음을 주고받는 온화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바깥세상을 향해 긴장하고 절제했으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경계의 안에서 월백은 강아지처럼 순수했다. 새끼는 평화로웠고 어미는 다정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 온전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호랑이를 무섭고 용맹하게만 생각하지만, 이렇게 평화록보 다정한 모습이 호랑이의 일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강렬하고 자극적인 모습을 찾는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배를 드러내고 뒹구는 모습을 보면 시시해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월백의 가족을 두 눈으로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이 가슴 떨리는 삶의 절정이다. 암호랑이가 야생에서 새끼들과 뒹굴며 노는 모습은 자연의 가장 깊은 곳에서만 볼 수 있다. 가장 은밀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만 암호랑이는 자신의 내밀한 가정사를 언뜻 보여준다. 지금 나 자신, 자연의 객체로 온전히 녹아들었음을 느낀다.
- 416쪽

사회에서는 줌렌즈로 세상을 보지만 자연에서는 광곽렌즈로 세상을 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 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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