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난제
고김주희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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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장 이상적이고 진보된 정치 체제로 여겨지는 것이 민주주의 이다.

민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

몇 년에 한 번씩 치르게 되는 선거 행위만으로 민주 사회라는 것이 완성될 수 있다면, 모든 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민주주의의 실현은 어느 사회에서나 참으로 도달하기 쉬운 목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좋은 것이라 당연시 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현재는 어떠한 모습이고 또 미래에는 그것을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할지 우리의 삶 자체를 성찰해 봄으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니체와 맑스의 관점에서 '자유' 와 '평등' 은 필수적이고 긴요한 두 기둥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현실화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다.'

머리글에 저자는 위와 같이 전제를 하고 이야기를 풀어 간다.

대중문화와 민주주의, 민의 경제, 성매매의 자유, 군사주의와 민주주의, 제주도 예멘 난민 사건, 범죄의 발생과 민주적 시공간, 사회 민주주의와 한국 을 아우르고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파헤져 간다.

우리도 익히 알다시피 프로스포츠를 포함한 대중문화가 얼마나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경제도 또한 어떠한가. 정치제도보다 자본주의 경제가 이미 국가의 흥망을 좌지우지 하는 시대이다.

자본주의는 누가 더 많이 소유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곳에 빈부의 격차는 당연하게도 묵인된다.민주주의의 평등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어느 누구도 나의 것을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군비 증강은 또 어떠한가. 왜 우리 인류는 이 땅에서 모든 살상무기를 없애지 못할까. 인간은 그렇게 야만적인 동물인가. 우리 인류는 한쪽에선 무기를 수출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기를 수입하고 있다.

그외에 PC방 아르바이트생 살인사건, 예멘난민에 대한 반감과 혐오, 비민주적으로 대통령이 된 우리나라 역대대통령들의 예를 통해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가 후진사회를 못벗어나고 아직도 노예와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있는 소시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정치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무관심에 대해 경고한다. 하루하루 살기 바쁘고 힘들지라도 절대 무관심하면 안된다고.

더 이상 이전같이 노예처럼 살지말고 주도적으로 살아가자고.

불가능하다고 아무런 관심과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린 영원히 노예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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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은 끝! - 일을 통해 자아실현 한다는 거짓말
폴커 키츠 지음, 신동화 옮김 / 판미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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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베를린자유대학의 한 연구팀에서 독일어 단어가 주는 느낌을 조사했다.

'분리와 분리하다' 는 부정적 기분을, '여행과 여행하다' 는 긍정적 기분을 유발한다.

그런데 '일과 일하다' 는 서로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일' 은 좋은 느낌을 주는 반면 '일하다' 는 부정적인 기분을 불러온다고 한다.

'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일하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에 관해 속아 왔다고 주장한다.

즉, '열정을 다해 일하라, 일은 우리에게 성취감을 주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라는 말에 속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팩트폭력이다. 그래서 마음이 다 후련하다.

우리가 그동안 회사나 방송, 책에서 시달려온 열정을 다해라, 꿈을 찾아라, 자아실현을 이루어라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말뿐인지, 그러한 말들은 더이상 직원들에게 통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정말 우리 회사 임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그동안 극소수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만 통했던 이러한 주장들에 우리도 똑같이 될 수 있다고 속아온 것이다. 이제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빨간 약을 먹고'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태초에 에덴의 아담과 하와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에덴에서 쫒겨난 후 그들은 노동을 하였다. 인간은 수고하여 먹고 살아야했다.

고대의 명예로운 시민 중 생업에 종사하려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일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은 배우고 사색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것이 훌륭한 시민의 자질을 이루는 핵심이었다.

일은 노예와 천민에게 맡겨 두었다.

16세기에 마틴 루터가 등장했다. 루터는 일을 '직업' 이라 불렀고, 비로소 '일' 은 하나의 개념이 되었다.

인류기원 600만년 동안 일은 짐 혹은 벌이었다. 일에 대한 예찬은 고작 5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인류 역사의 0.008퍼센트에 해당한다. 일이 매혹적이라는 것은 결코 자명한 사실이 아니었다.

이제 일은 현대인에게 '의미' 를 지닌다. 일을 잃는다는 것은 파트너를 잃는 것이고 관계가 끊어지며 존재 자체가 무시가 되는 사회인 것이다.

'열정을 따를 것' 이란 다음의 일화를 한 번 보자.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한다.

<강연 주제: 일에서의 행복>

주제: 일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자,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

- 취리히의 한 심장외과 의사는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한 의사이다. 56살이 되던 해 돌연 그는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트럭 운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트럭면허를 따고 수술용 메스를 460마력 트럭으로 바꾸고 40톤 화물을 싣고 유럽의 도로를 질주한다. 그의 변신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여러분 중 많은 분은 자신의 인생에서 그러한 변신을 경험할 것이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우리는 강의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헛된 실망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의 다수는 유명한 심장외과의가 아니라 트럭운전사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노동인구의 다수는 자신의 직업을 페이스북 프로필처럼 함부로 바꿀 수 없다.

어느 누가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말인가? 대다수는 자기가 하는 일을 매일 열심히 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하는 일의 대부분은 어제와 비슷한 일들이다. 반드시 열정을 다하지 안아도 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회사에서 주장하는 그런 열정은 사실 필요없는 일들이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일 외에 다른 취미생활 같은 것에서 더 행복을 느끼고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소수의 워커홀릭을 제외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이 아니고 돈버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하나, 우리가 직장에서 창조적이거나 열정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부서와의 협의, 적절한 시간과 비용을 계산해야 하며 팀장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을 바엔 편하게 일하기를 선택한다.

직장은 그런 곳이다.

누군가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곳이므로 열심히 일하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자아실현은 스스로 찾아 자기 인생에 의미를 불어넣는 것이지 누가 말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미국이 한창 달로의 여행을 연구하고 있을 때 미국 대통령이 NASA 연구소를 방문했다고 한다.

건물을 청소하던 직원에게

"당신은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달에 로켓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쓸고 있습니다"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자기일에 소명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사실 이 청소원이 그렇게 말을 해서 그렇지 다른 청소원과 비교해보면 청소상태는 거의 비슷할 정도로 깨끗할 것이다. 그 청소원이 소명을 가지고 일을 해서 직장에서 행복할 지 모르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을수도 있다. 일은 일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는 규정대로 그저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문제라고 무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베를린자유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 일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의 설문에 답하는 사람은 1(불만족)부터 10(만족) 까지 에서 대학교수는 7.71점이고 가장 낮은 창고 노동자는 6.71점 이다.

1점부터 10점 사이에서 단 1점 차이만 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직업은 그 사이에, 촘촘히 붙어 있다.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일은 큰 행복도, 큰 성취감도, 인생의 큰 의미도 아니다.직장동료가 절친한 친구는 아닐지라도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좋아한다.

평소에 역량을 전부 발휘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 본연의 방식으로 업무를 본다.

이들의 일과 이들 '자신' 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자기 일이 흥미롭다고 여기고 다른 많은 일에도 흥미를 가진다.

인생은 친구, 가족, 여가, 취미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들에게 성취감을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 일은 일일 뿐이다. 우리가 사람이 생명을 구한다거나 신약을 개발한다거나 하는 일은 아닐지언정 아주 의미없는 일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의미없는 직장은 없다.

이제는 '빨간 약' 을 먹고 매트릭스에서 나와 오늘 일은 오늘로 끝내고 일찍 퇴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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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헛되지 않아요 - Suffering is Never for Nothing
엘리자베스 엘리엇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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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에콰도르로 선교를 갔다가 그 땅의 원주민 부족에게 인사 한마디만 남긴채 죽은 다섯 청년들 중 하나인 짐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엇' 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짐 엘리엇의 죽음을 헛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를 포함하여 그의 자녀들과 2년 뒤 다시 에콰도르 아우카족을 다시 찾아 여러 해 동안 헌신합니다.

다행히 그 부족은 여자를 죽이는건 비겁한 짓이라고 그냥 살려두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16년 뒤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재혼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3년 반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만큼 힘든 일을 겪기도 쉽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 다양한 일들을 만나고 또 어떤 경우엔 왜 그런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바로 그 때 그녀는 깨닫습니다. 가장 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교훈을 알게 되었노라고...

우리는 때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곤 한다. 어떤 이는 좌절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을 떠난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푸는 열쇠는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제다.

마치 욥기의 이야기처럼...욥은 왜 사탄이 자기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한다.

대신 하나님은 욥기에게 나타나신다. 욥의 질문에 답을 주는 대신 하나님 존재 자체를 드러내신 것이다.

믿음에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믿든가 안 믿든가 둘 중 하나이다.

내가 아는한 이 세상 어떤 종교도 신 앞에 '왜 그렇게 하셨냐고 ' '나한테 왜 그러시냐고' 따지는 경우를 본적이 없다. 신에게 복종하고 신을 달래려 하지 감히 어떻게 따지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신다. 우리의 모든 고통을 들으신다.

우리가 원하는 기도를 100% 들어주시지 않으시지만 우리를 100% 통제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과 우리는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통이 헛되지 않은 것은 100%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수용한 이게는 그 의미를 알려 주실 것이고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이에게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원망만 남을 뿐이다.

에콰도를 원주민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부족을 담당하는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주님처럼 선교사들처럼 살고 싶다고 간증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편 10절)

엘리자베스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일어났다.

이런 간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했을까. 하나님이 하신 일에 감사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받아들임(수용)과 감사. 그리고 드림.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떤 것인가. 불평 불만? 신경질 또는 원망? 감사?

어렸을 때 부모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 나이에 우리에게 선물을 사드릴만한 충분한 돈은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선물을 드릴 수 없는 상황 말이다.

우리 삶은 거저 받은 것이므로 모두 드릴 것이 된다. 삶의 모든 고통까지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원한다. 100% 순종, 범사(모든 일)에 감사, 모든 삶을 드림.

그녀는 남편 짐 엘리엇의 죽음 이후에 이 모든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드리는 삶이 되라는 것을.

그녀에게 고통은 헛되지 않은 삶을 산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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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 뇌를 이해하면 내가 이해된다
카야 노르뎅옌 지음, 조윤경 옮김 / 일센치페이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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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자주 한다.

아니 요즘 사회가 '나는 왜 그럴까' 또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어' 등의 마음찾기 등을 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정신상담을 받아도 미친사람 취급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도 하고 자기 지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위로 받기도 한다.

그래서 진화심리학, 신경인류학 등의 학문도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지,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를 밝히려 하고 있다.

이제 뇌연구를 통해 우리들의 행동과 심리를 알아내는데까지 이르렀다.

이 책은 우리의 뇌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밝혀내려고 한다. 심리상태를 쫓기 보다는 그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뇌의 기능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5억년 전 생명체의 머릿속에는 일명 '파충류의 뇌' 만 존재했다고 한다. 2억 5천 년이 지난 후엔 '구포유류의 뇌' 또는 '감정의 뇌' 가 발달하고 '대뇌피질' 은 2억년 전쯤부터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신포유류의 뇌' 즉 인간의 뇌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만년 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능만 갖춘 '파충류의 뇌' 는 가장 원초적인 뇌이고 '대뇌피질' 이 증가한 인간은 최근에 발달한 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뇌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야기이다.

대뇌 소뇌 중뇌 전두엽 회백질 뇌간 해마 시냅스 대뇌피질 등 뇌의 모든 것을 총망라해 인간을 설명하고자 한다.

성격의 형성에서부터 기억력과 학습하는 뇌, 길을 찾는 뇌, 감정에서 지능, 그리고 중독까지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방대하게 설명하려 애쓴다. 그로인해 우리의 행동과 본능이 어느 한쪽으로 강하게 작용하려고 할 때 뇌의 특정한 어느 부위가 손상되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예를 들면 측두엽과 전전두엽 손상 시 성욕이 강하게 나타나는 같은 경우이다.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짠맛에 끌리는 건 미네랄을 위해, 감칠맛에 끌리는 건 고기를 통해 단백질을 공급받기 위해, 또한 달고 지방함량이 높은 음식에 끌리는 것은 즉각적인 에너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20만 년 전 그때처럼 아직도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뇌의 일부는 인간의 발전 속도에 따라오지 못하고 시대에 뒤처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뇌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건강을 위해 뇌를 설득하고 있을 뿐이다.

참으로 뇌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하는 책이지만 'A는 B이다' 라고 정확한 결론을 찾기는 힘들다.

아직 우리는 뇌에대해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며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 많은 이해를 돕는 책이다.

'내가 왜 이러나' 하는 마음을 이해할려고 읽었지만 아직은 그에 합당한 정확한 답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만큼 우리 인간의 뇌는 미지의 영역이다. 제목에 끌려 읽는다면 실망이 많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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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 - 이제 자존심, 꿈, 사람은 버리고 오직 나를 위해서만! 50의 서재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센시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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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를 사는 시대에 50부터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니...

인간의 기대수명은 엄청 늘어났지만 사회적인 제도는 아직도 60~70년대에 머물고 있는것 같다.

가령 직장에서의 정년이라든가 경로우대에 관한 제도라든가.

요즘은 마치 60대의 어르신이 중년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50대에 퇴직을 준비하고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즉, 잘나가던 왕년의 내가 아닌, 꼰대가 되지 않는 멋진 중년의 모습.

저자는 예전의 모습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보다는 추억으로 여기며, 더 이상 남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

SNS의 '좋아요' 에 연연하지 않고 시대의 유행을 즐기는 마음. 남의 일 또는 문제에 이러쿵 저러쿵 왈가왈부하지 않는 마음, 남의 단점을 보기보다 장점을 보고 칭찬해주는 마음, 세상의 성공관을 쫓기보다는 내 삶에서 행복을 찾는 마음.

이 모든 것에서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관을 바꾸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직장에서 퇴직 후 월급이 줄어드는 일을 하더라도 자존심을 상하지 말고 젊고 유능한 사람에게 물려 준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고 한다. 이제는 남이 나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신경쓰지 말고 나의 일, 즉 '자기다움' 을 찾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은퇴하면 그렇게 악기를 배우는 분들이 많으가 보다. 그동안 직장과 일에 얽매여 자기가 하고 싶은것을 못했으니 이제라도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음악도 하고 여행도 하고 사진도 찍고 춤도 배우고...

내가 아직 50이 안되어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에 가장 공감되는 것이 여전히 내가 인기 있을거라는 착각이다.

직장에서는 서서히 퇴직을 준비시키고 있고 여자들도 더이상 나에게 눈길조차 안주며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혼자서 여전히 20~30대 마냥 자기자신을 바라보며

마치 조지클루니 아니면 부루스 윌리스와 자기자신을 동급으로 여기는 착각을 남자들은 한다는 것이다.

50대에 가장 바뀌어야 할 인생관은 더 이상 자신이 사회의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나는 이제 조연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경쟁과 질투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서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지시를 하기보단 협력하는 자세를, 성공을 쫓기보단 자신만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것.

나도 금방 50이 되고 60이 되겠지만 내가 저자처럼 여유로운 노년을 보낼지 걱정이 된다.

그때에 가서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계속 돈을 벌기 우해 아둥바둥 사는 것은 아닐지.

누구나 알고 있고 생활속에 실천하며 살아야할 말들이지만 그건 나의 생활이 안정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 저자의 말과는 괴리감이 있다.

생활의 안정이라는 전제조건하에 저자의 말들이 설득력 있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의 은퇴자의 모습으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의 주장처럼 삶에 쫓기지 않는 인생관으로 바뀌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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