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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과 정의 -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ㅣ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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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우리 생활과 얼마만큼 연관이 있을까요? 가끔 내가 뭔가 불리하다 싶으면 ‘법대로 해 법대로!’라고 외치곤 합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양쪽에서 모두 그렇게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어요. 모두 법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결정적일 때 법에 기대고자 합니다. 하지만 법에서 쓰는 단어 문장 논리는 한글로 써있으면서도 한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죠.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의 생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법에 정통한 전문가의 해설이 필요합니다. 생활에 관심이 없으면 허황된 개념만 늘어놓기 쉽고 법을 잘 모르면 우리에게 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테니까요. ‘김영란법’을 만든 김영란 전 대법관이라면 어떨까요? 우리 삶의 가장 구체적인 부분까지 관심을 두었으면서 동시에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지내며 그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라면 법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상세하고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 수 있겠죠? 단, 너무 전문적이면 버거울 테니 우리 주변 시사 이슈부터 시작하기로 하죠. 김영란의 ‘판결과 정의’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해석’입니다.
법은 기본적으로는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입니다. 그러나 법은 그 단어로 우리 생활 속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규정함으로써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러하니 이렇고 저런 것이 법에 요롷고 조롷게 쓰여 있으니까 이것과 저것은 요롷고 조롷게 처리하는 것이 맞다, 이런 식이죠. 이렇게 판단할 때 크게 두 가지 해석 과정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어떤 사건이 어떤 법이 규정한 것에 부합하는 사건인지, 즉 법적으로 다룰 만한 사건인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점점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면서 법의 인정을 받으려는 사건의 유형도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이전에 법이 관장하는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사회현상도 법이 개입해야 한다는 식으로 관점이 변해가죠.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고요. 이런 걸 있어보이는 용어로 ‘인정투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중엔 가부장적 차별의 시정과 성인지적 감수성의 등장, 과거에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정리 같은 것들이 아마 이 해석의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사건일 것입니다.
둘째는 법 체계 안에서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만큼 법 또한 다양한 가치를 옹호합니다. 하지만 그 가치들은 서로 빈번하게 충돌하기에 무엇이 먼저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법이 이 우선 순위를 명시적으로 적어놓았다면 법관은 이에 따라야 합니다. 때로는 추상적으로 우선 고려되는 가치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동시에 법관에게는 사회 변화나 법관의 양심을 고려해 판결할 의무과 권한이 있기도 합니다. 바로 이 지점 즉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부분에서 가치의 우선 순위를 강화하거나 때로는 뒤집기도 하는 해석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이런 해석과 관련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은, 안타깝게도 자기결정, 사적 지배, 계약 우선의 원칙 같은 것을 맥락을 배제한 채 우선시해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거쳐서 이 사회를 관장하는 규칙인 법은 진보하고, 같은 법을 놓고도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이 사회의 더 많은 영역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러한 문제와 역사가 무엇인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책이 바로 ‘판결과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권해드리는 책은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인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입니다. 이 책도 ‘판결과 정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여러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하는 내용인데요. ‘판결과 정의’가 시사 이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법적 논리 자체를 분석하는 쪽에 무게가 더 많이 실려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판결에 참여했던 사건을 실었다는 점에서 좀 더 자세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문서를 다루는지 경험하고 싶다면 함께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