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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10년 12월
평점 :

이 책의 원제는 The Great Transformation 입니다. 하지만 번역 제목이 더 인상적입니다. '축의 시대'.
저자는 머릿말에서 우리가 이 시대에서 겪고 있는 많은 난관 뒤에는 더 깊은 정신적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전례 없는 규모로 폭력이 분출했던 20세기'를 겪으며 저자가 목격한 바는 '우리가 서로 해치고 상처를 내는 능력은 경제적, 과학적 진보에 뒤처지지 않고 함께 발전해 왔다는 것'과 '인간 존중의 마음을 키우도록 도와주어야 할 종교조차 종종 이 시대의 폭력과 절망을 반영 하는 듯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대한 이런 진단을 내린 뒤에 저자가 눈을 돌린 것은 과거의 역사 중에서 특히 '축의 시대'입니다. 저자는 카를 야스퍼스를 인용하며, '축의 시대'를 정의합니다. 기원전 900년 경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에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이후 계속 해서 인류의 정신의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탄생했다고 하며 이 시기가 인류의 정신적 발전에서 중심축을 이룬다 하여 '축의 시대'라 한다고 합니다.
유목 문화에서 차차 농경 문화로 옮겨갈 무렵,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 차곡차곡 증가하는 부와 늘어가는 인구는 그 이전 시대보다 더한 폭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전쟁과 대규모 살상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던 많은 사람들은 폭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그 이전까지 막연하게 가져왔던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신념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주나라의 봉건제에 기반한 통치질서가 세워지기까지, 그리고 그 봉건제가 다시 무너지고 전국 시대를 거쳐 진에 의해 통일되기까지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제자백가로 알려진 다양한 사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주나라의 예전을 발전적으로 재해석해서 다시 세우려는 공자로부터 시작해서 묵자, 장자, 노자, 맹자 등 다양한 사상들이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 체제를 효율적으로 정립하게 만든 법가의 정치철학이 진으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도시 국가인 폴리스들끼리의 국지적인 경쟁적 발전 단계에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이라는 국제적인 격변에 휩쓸렸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이해하게 하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에우리피데스 등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비극은 고난에 직면한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 묘사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의 경지에 이르게 하였고,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지는 합리적, 철학적 사고는 그리스가 페르시아 침략이라는 전대 미문의 고난에 접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대응방안을 빠르고 신속하게 채택하게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게 하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변방인 유다에서 야훼 신앙은 앗시리아와 바빌론의 침공으로 인한 포로기를 겪으며 새롭게 재해석되고 발전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하라파 문명과 마우리아 왕조를 겪으면서 자신을 깊게 성찰하는 전통이 세워졌고, 고타마 싯다르타가 등장하여, 불교를 일구어 냈습니다.
이러한 각 지역에서의 사상적 발전은 도덕성, 자비, 비폭력에의 추구를 공통적인 강조점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축의 시대의 희망이고, 그 시대 영성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일들의 배경과 그 전개를 10개장에 걸쳐서 설명합니다. 1~3장까지는 축의 시대의 배경이 되는 기원전 1600년경 부터 700년경까지를 다루고, 4~9장까지는 축의 시대인 기원전 700년경부터 220년경까지를 다룹니다.
마지막 10장에서는 '축의 시대의 귀환'이라는 이름으로 기원전 200년경 이후의 시대에 축의 시대의 유산이 제국의 성립, 또는 해체라는 새로운 변화의 상황에서 어떻게 재발견되었는지를 얘기합니다.
중국에서는 한 제국이 성립되고 통치철학으로서의 장점을 가진 유가가 중심적인 사상이 되었지만, 다른 사상들도 폭넓게 수용되었습니다.
마우리아 왕조가 해체된 인도의 불교 전통에서는 새로운 불교 영웅 보디사트바(보살)가 탄생했습니다. 그는 깨달음을 얻어 니르바나에 도달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피난처, 세상의 빛, 세상의 구원 수단의 안내자'가 되기로 하려한 사람들로 축의 시대의 오래된 이상을 새로운 형식으로 번역한 존재였다 합니다.
유대교는 로마의 지배라는 변화된 상황에서 새롭게 개화하였다 합니다. 바리사이파는 유대교의 축의 시대에서 가장 포용력있고 진보적인 영성을 발전시켰습니다. 당시의 대표적인 랍비 힐렐은 토라 전체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했습니다. "당신 자신에게 가증스러운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시오. 그게 토라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 주석일 뿐이오. 가서 그것을 공부하시오." 당시 유대교에서 토라의 본질은 이러한 황금률이었습니다.
유대교를 배경으로 한 기독교 역시 이타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중요한 순종의 규범으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기 비움과 사랑이 기독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사랑은 자만심으로 부풀어 올라 자기에 대한 과장된 관념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이고, 자기를 잊는 것이고, 끝없이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축의 시대의 마지막 개화가 서기 7세기의 아라비아에서 이슬람교의 탄생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슬람의 전통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 태도를 강조했으나 오늘날의 모습은 그러한 전통과 멀어진 모습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원전 200년 이후의 주요한 흐름으로 유가를 중심으로 한 사상체계의 안정적 정립, 불교의 갱신, 랍비 유대교로의 변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탄생을 열거하면서 축의 시대가 새롭게 귀환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10장의 마지막 소챕터에서 오늘의 '이 위험한 시대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큰 공포와 고통의 시기에 살고 있다. 축의 시대는 인간 삶의 피할 수 없는 사실인 고난과 직면하라고 가르쳤다. 우리 자신의 고통을 인정할 때에만 타인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의 시대 현자들이라면, 우리의 고통이 곪아서 폭력, 불관용, 증오로 터지도록 놓아두는 대신, 그것을 건설적으로 이용하려는 영웅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유다의 예레미야는 추방당한 유대인들에게 원한에 휘둘리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으며, 그리스인은 불과 몇 년 전에 그들의 도시를 유린했던 페르시아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비극 서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축의 시대 현자들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상황에서 자비의 윤리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늘 일깨워야 한다. 그들은 상아탑에서 명상을 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찢긴 무시무시한 사회, 오랜 가치들이 사라져 가는 사회에 살았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허와 심연을 의식했다. 이 현자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감이 단지 유익하게 들리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자비와 모든 이에 대한 관심은 최선의 정책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통찰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시대는 과학과 기술의 천재들의 시대지만, 축의 시대는 영적 천재들의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암 치료법을 찾아내는데 쏟아붓는 것 만큼이나 많은 창조적 에너지를 인류의 영적 불안의 치료법을 찾는데 쏟아 부었습니다.
황금률은 축의 시대에 새롭게 발견된 '개인'들에게 '내가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듯이 타인도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과제가 이런 통찰을 발젼시켜, 여기에 전지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비극적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리스인이 이미 알고 있었듯이, 여기에는 간단한 답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 비극이라는 장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것을 요구합니다. 종교가 우리의 부서진 세계에 빛을 가져오게 하려면, 맹자가 주장했듯이, 우리는 사라진 마음, 우리의 모든 전통의 핵심에 놓여 있는 자비의 정신을 찾으러 나서야 한다고 하며 책을 마무리 합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각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각 지역에서의 역사를 시대별로 지역별로 나누어 기술한다기 보다, 같은 시대에 각 지역에서 어떤 흐름들이 있었는지를 차례차례 조망하는 방식의 기술이어서 그 시대 자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네 개 지역에서의 수백년에 걸친 영적, 종교적 통찰의 결과가 결국 '네 자신이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로 수렴된다는 것은 놀랍고도 감동적인 결론이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공감의 시대'가 되어갈 거라고 얘기합니다. SNS의 도래와 같은 기술적, 문화적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더 잘알게 돕게 되므로 '공감'은 이전 시대 보다 조금 더 쉬어질거라 합니다.
반면에 저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끼리 더욱 각박해져가는 모습은 이미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난민에 대해서 보다 더 엄격해지고,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증가한 오늘의 현실은 '공감'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도 보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남겨진 선택지는 두가지 극단의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이 책아 우리에게 주는 통찰은 축의 시대가 남긴 정신적, 영적 경험과 지식의 기반 위에서 공감의 실천을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시대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희망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