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개정판)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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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2차대전 발발 초기를 배경으로 한 Darkest Hours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윈스턴 처칠을 그린 거죠. 덩케르크 직전까지의 상황입니다.
그 무렵 2차대전 당시의 영국에 대해서, 특히 초기의 영국에 대해서 여러 아티클들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건지 섬과 저지 섬으로 구성된 채널 제도의 존재 자체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가 보니, 2차대전 관련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생각나더군요., 몇 년 전에 무척이나 감명 깊게 읽었던 이언 맥큐언의 <속죄> 라던가. 그 무렵 보았던 영드 '닥터 후'에서 2차대전 중의 영국을 배경으로 했던 에피소드... 2년 쯤 전에 읽었던 2차대전 뒤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던 <오르부아르> 등등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합니다.

건지 섬이라는 아름다운 풍경 속의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다른 모습으로 닥쳐온 고난, 비극...

우연챦게 모이게된 북클럽을 통해 그들은 문학을 접하고,
그 문학에 대해 나누게 되면서 새로운 우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문학을 통해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요.

깊고 풍성한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통해 새롭게 갱신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인식,
그 인식 과정이 불러 일으키는 인간의 고귀한 본성, 
새롭게 발견한 그 고귀함을 통해 고취되는 자긍심. 
그 자긍심을 통해 세상을 향해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용기.
그런 서로의 모습을 통해 다져지는 연대감. 

이런 것 아니었을까요.

서간체의 장점인지, 등장인물들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던, 그 좋은 사람들, 
그 어두운 시기에 더욱 빛나던 사람들에게 닥치는 비극들이 마음을 쥐어 짜네요.

근데, 이 작가는 특유의 유머로 계속 웃게 합니다.
그래서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더 강인하고, 더 매력있게...

결말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절묘하게 직조되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해 차차 알게 되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타나고,
새로운 소식들,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는 그 방식, 그 순서 하나하나 
섬세하게 짜여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흡인력 있게 단숨에 읽게 만드는 놀라운 작품이네요.

이 작품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편지의 '보이스'가 거의 비슷합니다.
아마 작가의 캐릭터가 그랬나 싶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게 거슬리기 보다는... 
이대로 좋으니 그냥 안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 더 큽니다. 
작가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으로 인해...

작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네요. 

줄리엣이 쓴 칼럼이나, 전기나 이런 것들이 후속편으로 나올 수 도 있었을 텐데요. 진심으로 우리 모두의 큰 손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으면서 번역 때문에 걸리적 거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원문과 비교를 해본 건 아니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번역도 상당하다는 느낌입니다.


하이라이트 친 것 중 일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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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이 어쩌다 건지 섬까지 갔을까요?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은밀한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는 최선의 방법은 유머’라는 옛말이 역시 틀리지 않네요.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흠뻑 젖은 채 앉아서 예전에 살던(지금은 남에게 팔린)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더군요.

제가 보기에 그는 말을 아낄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찬탄하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 바로 이겁니다.

‘지금껏 해온 것들이 그토록 사소한 일이란 말인가. 태양을 즐기고 봄의 빛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고 일을 하고 진정한 우정을 쌓은 것이?’(19세기 영국 작가 매슈 아놀드의 두 번째 시집 《에트나 신의 엠페도클레스》에 수록된 시의 일부) 

사소하지 않습니다. 저는 엘리자베스가 어디에 있건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있길 바랍니다.

“쳐다볼 거야. 철창에 갇힌 동물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야. 우리와 함께 이 섬에 갇혀 있잖아. 우리가 그들과 함께 여기 갇힌 것처럼. 가자, 가서 구경해주자고.”

아들 이언이 이집트 알알라메인에서 죽었을 때(엘리의 아버지인 존과 함께 전사했지요) 조문객들이 찾아와 나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였어요.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연히 삶은 계속되지 않아요. 계속되는 건 죽음이죠. 이언은 이제 죽었고 내일도 내년에도 그 후로도 영원히 죽어 있을 테니까. 죽음에는 끝이 없어요. 하지만 어쩌면 슬픔에는 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엄청난 슬픔이 노아의 대홍수처럼 나의 세상을 휩쓸어버렸고, 여기서 벗어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그런데 벌써 물 위로 솟은 작은 섬들이 있네요. 희망? 행복? 뭐 그런 것들로 부를 수 있겠죠. 당신이 의자 위로 올라서서 부서진 건물 더미를 애써 외면한 채 반짝이는 햇빛을 받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상상해본답니다.

구멍 장식이 촘촘히 난 아주 조그만 아기용 베개, 밭일을 하다가 도시를 향해 웃음을 짓는 엘리자베스의 사진 한 장, 희미하게 재스민 향이 나는 여성용 리넨 손수건, 남자 것인 도장 반지, 그리고 작은 릴케 시집이 한 권 있었는데 가죽 표지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어. ‘엘리자베스,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그대에게. 크리스티안.’ 책갈피에 여러 번 접힌 쪽지가 있었어. 킷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쳐 읽었지. ‘아멜리아, 아기가 깨어나면 나를 대신해 뽀뽀해주세요. 6시까지 돌아올게요. 엘리자베스가. 추신, 우리 아가 발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않아요?’


제 책이 어쩌다 건지 섬까지 갔을까요?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은밀한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는 최선의 방법은 유머’라는 옛말이 역시 틀리지 않네요.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흠뻑 젖은 채 앉아서 예전에 살던(지금은 남에게 팔린)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더군요.

제가 보기에 그는 말을 아낄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찬탄하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 바로 이겁니다.

‘지금껏 해온 것들이 그토록 사소한 일이란 말인가. 태양을 즐기고 봄의 빛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고 일을 하고 진정한 우정을 쌓은 것이?’(19세기 영국 작가 매슈 아놀드의 두 번째 시집 《에트나 신의 엠페도클레스》에 수록된 시의 일부)

사소하지 않습니다. 저는 엘리자베스가 어디에 있건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있길 바랍니다.

"쳐다볼 거야. 철창에 갇힌 동물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야. 우리와 함께 이 섬에 갇혀 있잖아. 우리가 그들과 함께 여기 갇힌 것처럼. 가자, 가서 구경해주자고."

아들 이언이 이집트 알알라메인에서 죽었을 때(엘리의 아버지인 존과 함께 전사했지요) 조문객들이 찾아와 나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였어요.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연히 삶은 계속되지 않아요. 계속되는 건 죽음이죠. 이언은 이제 죽었고 내일도 내년에도 그 후로도 영원히 죽어 있을 테니까. 죽음에는 끝이 없어요. 하지만 어쩌면 슬픔에는 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엄청난 슬픔이 노아의 대홍수처럼 나의 세상을 휩쓸어버렸고, 여기서 벗어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그런데 벌써 물 위로 솟은 작은 섬들이 있네요. 희망? 행복? 뭐 그런 것들로 부를 수 있겠죠. 당신이 의자 위로 올라서서 부서진 건물 더미를 애써 외면한 채 반짝이는 햇빛을 받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상상해본답니다.

구멍 장식이 촘촘히 난 아주 조그만 아기용 베개, 밭일을 하다가 도시를 향해 웃음을 짓는 엘리자베스의 사진 한 장, 희미하게 재스민 향이 나는 여성용 리넨 손수건, 남자 것인 도장 반지, 그리고 작은 릴케 시집이 한 권 있었는데 가죽 표지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어. ‘엘리자베스,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그대에게. 크리스티안.’ 책갈피에 여러 번 접힌 쪽지가 있었어. 킷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쳐 읽었지. ‘아멜리아, 아기가 깨어나면 나를 대신해 뽀뽀해주세요. 6시까지 돌아올게요. 엘리자베스가. 추신, 우리 아가 발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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