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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12월 10일 : TENTH OF DECEMBER
조지 손더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2015.07.08>
(후기 내용 중 스포가 있습니다.)
Tenth of December / 12월 10일
이 책은 우연챦게 원서랑 번역본이랑 같이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낚여서...)
가격적으로 큰 부담이 안되었고, 단편이라서 짤막짤막하게 원서랑 번역본이랑 대조하면서 읽기 편할 것 같았습니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총 1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앞에서 4개까지 읽었습니다. Kindle에서는 30%라고 표시되네요.
이 글은 10개중 앞의 4개에 대한 후기 입니다.
1. Victory Lap : 승리의 질주
한 소녀와 그 소녀의 어릴적부터 친구인 한 소년, 그리고 소녀를 납치하려는 납치범의 의식의 흐름을 그리고 있습니다. 짧지만, 이 세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너무나 생생하게 그 캐릭터를 그려냅니다. 자세한 줄거리는 쓰지 않겠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드러나는 각 캐릭터의 너무나 인간적인 단점들이 극명합니다.
여기서 Kindle에 나타나는 Popular Highlights는
But seriously! Is life fun or scary? Are people good or bad? On the one hand, that clip of those gauntish pale bodies being steamrolled while fat German ladies looked on chomping gum. On the other hand, sometimes rural folks, even if their particular famrs were on hills, stayed up late filling sandbags.
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솔직이 이 문장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군요. 번역본을 보고나서야 좀 감이 오긴했는데, 여전히 모르겠더군요.
어쨌든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삶은 즐거운 것일까, 두려운 것일까? 사람들은 선할까, 악할까? 비쩍 마른 창백한 몸뚱이들이 강제 노동을 하고 있고 뚱뚱한 독일 여자들이 껌을 씹으며 그들을 감시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시골 사람들은 자기 밭이 고지대에 있어도 저지대의 홍수를 막기 위해 밤늦게까지 모래주머니를 만들기도 한다
제가 이 단편에서 한 문장을 하이라이트를 하라고 하면, Quiet. I'm the boss of me. (시끄러. 내 맘대로 할 거야.) 입니다. 정말 많은 것을 한 문장에, 한 순간에, 응축시켰다가 발산 시키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문장도 사뭇 충격적입니다. 여기서 그 단어가 나와야 하나요. well-done이 아닌 그 단어라니...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듯해서 줄이겠습니다.
2. Sticks : 막대
i86에서 보는 Kindle 앱애서 채 2페이가 안되는 짧은 단편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놀라운 압축력을 자랑합니다. 두개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Kindle Popular Highlight와 제게 꽂혔던 하이라이트가 일치했습니다. 두번째 문단의 첫번째 문장입니다.
We left home, married, had children of our own, found the seeds of meaness blooming also within us.
번역본에서는 아래와 같이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집을 떠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갖게 된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그런 못된 생각의 씨앗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영어로 먼저 읽는 동안 위 문장에서 Also라는 단어가 마음에 쿵하고 와서 박혔습니다.
Also.... 아버지에 대해서 느껴왔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자신 또한 그 모습을 닮아가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담긴 듯했습니다. 한 단어에, 한 문장에 이렇게 압축을 시켜버리다니...
(우리말 번역본에서는 Also가 '마음속에서도'의 조사로 축소가 되었는데, '마음속에서 또한' 이나 비슷한 모양으로 하나의 단어로 분리를 시켰으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번역하신 분의 내공을 의심할 수 있는 수준의 내공을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번역은 한 문장의 뉘앙스를 살리는 것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더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하는 작업이라서, 이 하나 가지고 번역에 대해서 너무 뭐라하지들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나서 보니, seed와 blooming의 연결이 또한 그랬습니다. Blooming, 꽃을 피우다라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단어지요. 그 단어가 meaness에 가서 붙어 있으니, 영 난감합니다. 역설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데, 작가는 이 한 문장 던져 놓고 다음 문단에서 한술 더뜹니다.
그리고 결말의 두 문장은 마음을 쿵하고 또 때려 버립니다. 그렇게 Dry할 수 있다니 싶은데, 그게 또 그런 상황도 있겠구나 하고 놀라면서도 수긍이 되는 내 자신에 또한 놀라버립니다.
3. Puppy : 강아지
두 엄마와 그 배경이 되는 두 가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혀 다른 길로 뻗어있던 두 가족의 삶이 어느 한 순간 교차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성장하고 자라온 배경에 근거한 프레임으로 판단을 내리고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나가려 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그 두 엄마 다 그런 의지의 소유자였습니다.
Popular Highlights는
Which maybe that's what love was: liking someone how he was and doing things to help him get even better.
아마 이런 게 사랑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주면서 상대가 더 나아지도록 도와주는 것.
입니다. 이 문장에 대해 작가는 냉소적이지 않고 진지하게 얘기합니다. 이 모든 어두운 상황과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시선은 차갑지만은 않은 느낌입니다. 저도 이 문장이 좋았습니다.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는 아니지만요.
이 단편에서도 마지막 몇 문장은 역시 힘이 있습니다.
미국의 전쟁 영화나 스포츠 영화를 볼 때, 결전을 앞둔 병사나 선수들 앞에서 장교나 코치들이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외치는 말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중의 몇가지는 'Who'로 시작을 합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이 경기에서 이길 자는 누구인가?', '우승컵을 가져갈 자는 누구인가?' 이렇게 코치들이 외치면 선수들은 '우리!'라고 외치죠.
이 소설은 그런 형식으로 끝납니다. 'Who~?'에 대해, 누군가 답을 합니다.
(이렇게 읽는 게 맞다기 보다, 제겐 이렇게 다가왔다는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4. Escape from the Spiderhead : 거미머리 탈출기
살짝 SF스럽습니다. 조금 야시시하게 시작하더니 잠시의 쉴틈도 없이 결론까지 끌고갑니다. 분명히 단편인데, 중편을 읽은 듯한 느낌입니다.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TM이라는 마크가 징할 정도 입니다. 그 지독한 상업주의 앞에서 왜소해져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있습니다.
마지막 주인공의 선택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하리라고 믿는 보편적인 선택으로 제시되었다기 보다, 작가의 의지로, 작가가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주관적인 선택으로 제시된 거라고 생각됩니다. 주인공 보다 더 이기적이고 악한 사람이라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겠지 싶습니다만, 작가는 놀랍게도 태어나서부터 악한 사람이 누가 있냐는 암시를 던집니다.
Popular Highlight는 소챕터 10의 아래 문장입니다.
Night was falling. Birds were singing. Birds were, it occurred to me to say, enacting a frantic celebration of day’s end. They were manifesting as the earth’s bright-colored nerve endings, the sun’s descent urging them into activity, filling them individually with life nectar, the life nectar then being passed into the world, out of each beak, in the form of that bird’s distinctive song, which was, in turn, an accident of beak shape, throat shape, breast configuration, brain chemistry: some birds blessed in voice, others cursed; some squawking, others rapturous.
밤이 오고 있었다.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문득 떠오른 표현인데, 새들은 하루의 끝을 열렬하게 축하하고 있었다. 그들은 화려한 빛깔을 띤 이 땅의 신경종말들처럼 보였다. 태양이 지자 새들은 활동을 개시하며 제각기 생명수로 채워졌고, 그 생명수는 그들만의 독특한 노래의 형태로 그들의 부리에서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노래는 부리의 모양과 목구멍의 모양, 가슴의 형태, 뇌의 화학작용에 따라 우연히 결정되었다. 어떤 새들은 축복 받은 목소리를, 또 어떤 새들은 저주 받은 목소리를 가졌다. 어떤 새들은 꽥꽥거렸고, 어떤 새들은 기쁨에 찬 소리를 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갑자기... (나이가 들면 여성 호르몬의 비율이 커진다지요.)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이런 젠장.
책을 덮고 오랫동안 멍했습니다.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 단편을 읽기 전과 후의 내가 변했을까요? 글쎄요. 설마 변했겠습니까 싶지만, 이 질문이 생각이 날 정도의 임팩트였습니다.
이 세상의 삶에 명확히 존재하는 부조리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에 대해 어떻게든 스스로의 의지로 대응하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작가의 시각은 생각보다 긍정적이고 따스하게 다가왔습니다. 그게 이 작가의 힘인 것 같습니다. 그게 오늘을 사는 저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 4가지 단편에 대한 독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