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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평점 :
(2014.12.15)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미국의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라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미국의 지인들을 통해서 그가 페북에 올리는 글들이 공유되고 있었다. 주로 현대 영시를 이미지 파일로 올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써가는 형식의 포스팅이었는데, 늘 감명깊게 읽었었다. 유장한 영어 문장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문학을 이루고 있었지만, 영시를 읽어내는 그의 시선은 따스하지만, 표현은 강하였고, 글의 표면은 잔잔했지만, 깊은 곳에서는 큰 흐름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런데, 그는 이리도 두꺼운 책을 몇 권이나 쓴 사회운동가였다.
이 책은 여태까지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그러한 장르, 그러한 카테고리의 책이다. 모든 내용이 낯설고 어렵게 다가왔다. 이 책은 사회학 책이라고 해야할까. 참으로 어렵고, 무겁게 다가왔지만, 마음에 울림이 깊게 남았던 책이다.
이 책은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 (the brokenhearted, 마음이 부서진 자들)의 정치’라고 정의 한다. 이 책에서 마음이란 말을 라틴어의 원래 의미를 되살려 정의한다.
“마음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단지 감정만이 아니라 자아의 핵심을 가리킨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 통합되는 곳이고, 지식이 보다 인간적으로 충실해질 수 있는 장소다. 우리가 자아와 세계라고 이해하는 모든 것이 마음이라고 불리는 중심부에서 하나가 될 때 자신이 아는 바에 따라 인간적으로 행동할 용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주요 관심사로 민주주의의 인프라의 두가지 층위를 형성하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보이지 않는 역동, 그리고 그 역동이 형성되는 가시적인 삶의 현장들’을 이야기 한다. 어떤 제도나 시스템 등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의제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마음이 부서진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서로 비슷한 형태의 슬픔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비록 그 경험이 상반된 결론으로 이끌었을 지라도 그 마음이 부서진 경험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이 책은 그렇게 민주주의의 위대한 성취에 대해서 독자와의 공통의 이해를 확인하고, 그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다. 자신과 다른 편을 적으로 몰아붙이는 분노의 정치를 비판하며, 갈등과 긴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임을 재삼 강조한다. 마음의 역동이다.
현대에 이르러 사생활에 대한 강조가 강해지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이었던 공적 생활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어떻게 공적인 삶을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의 성찰의 결과를 정리한다. 그것을 위한 두가지 제도로 교육과 종교를 꼽는다.
독실한 퀘이커 교도로서 전체주의적 압제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신념을 간직하고 퍼뜨린 선배 퀘이커 교도의 얘기를 언급한다. 영국 식민지 시절 미국의 퀘이커 교도였던 존 울만은 링컨보다도 앞서 노예를 해방시킨 주인공이다. 20년을 주변 퀘이커 교도를 설득한 존 울만의 노력의 결실로, 퀘이커교는 남북 전쟁 발발 80년 전에 노예를 해방시켰다.
저자는 올바른 마음의 습관인 민주적 마음의 습관을 이루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며, 그 노력에는 매우 깊은 자아 성찰, 영적인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미국의 수도사이자 작가였던 토마스 머튼의 예를 든다. 그넌 숲 속의 수도원의 완전한 침묵 속에서 억안된 자들의 목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들었다.
물론 저자는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절대 낙관적이지 않다.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도전적인 것은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간극의 한쪽에는 세상의 어려운 현실이 있고, 그 반대 쪽에는 실제로 이 세계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삶이 있다. 이런 종류의 가능성이 부질 없는 꿈이나 환상이 아니며, 우리가 자신의 삶 가운데에서 목격해 온 대안적 현실이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오직 상상 속에서만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현재의 순간 속에 살아간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하는 일 어느 것도 변화를 일으킬 것 같지 않은 기분이 종종 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많은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하며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글을 길게 인용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생애 안에 성취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진실하거나 아름답거나 선한 것은 어느 것도 역사의 즉각적인 문맥 속에서 완전하게 이해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고결하다 해도 혼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칫하고 있는 이 무렵, 우리는 다시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우리는 참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마음의 습관에 대해서 얼마나 성찰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그러한 우리 마음의 내적 인프라가 없다면, 겉보기의 모든 진보와 발전은 결국 사라지고 언제든지 민주주의는 제자리 걸음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경향신문 서평
http://myungworry.khan.kr/254
(201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