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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8월
평점 :
폴 오스터는 여태까지 두권 읽었습니다. 최근작으로요.
2010년작 Sunset Park
2012년작 Winter Journal
둘다 2013년 하반기에 읽었네요.
둘다 원서로 읽으면서 고생고생하다가 지쳐버려서는 그 이후로 폴 오스터는 쳐다도 안 보고 있었습니다.
문장 자체도 넘 길고... 내면 독백이 엄청 길다 보니, 영어 읽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영어 공부라는 생각으로 도리어 버텼지... 이걸 우리말로 읽으려면 끝까지 과연 갔을까 싶었습니다.
내용이나 주제는 좋았지만, 그 얘기하는 스타일이...
그때는요.
금요일 갑작스럽게... 먼 지방의 상갓집에 다녀와야 해서, 편도 4시간 반의 버스 안에서의 시간을 위해 이 책을 구매했습니다.
아. 근데 힘들었습니다. 확실히 폴 오스터는 저와 잘 맞지 않는 스타일인 건 여전한 것 같습니다.
중요한 주제들로 생각나는 것은,
1. 삶에서의 우연
2. 타인에 대한 관찰자와 피관찰자, 그리고 그 역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관찰
3. 뭔가 이해되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집착, 결국은 자신에 대한 집착...
먼저 1번, 삶의 우연성
세번째 소설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누가 뭐래도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이런 문장을 폴 오스터가 자신의 소설 안에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넣었다는게 조금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 세번째 소설의 화자를 통해서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작가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담아낸 것으로 느껴 집니다.
삶의 '우연성'에 대한 이런 인식이 2번의 주제에선 마치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해 보니, 뭔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거죠. 겉으로 보기에 이해가 안되니, 그 내면이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늘 어떤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요. 하지만 정작 들어가 보면 거기엔 별 게 없어요. 적어도 다른 누군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다른 것은 많지 않다는 거죠."
그래봐야 내면도 별거 없다는 얘기입니다. ^^
그러다 보니, 상대방도 그렇지만 자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결국 하게 됩니다.
"블랙의 내면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고, 그래서 일단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서자 그는 더 이상 다른 어떤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설령 블루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블랙이 있는 곳은 바로 거기다."
"저 친구를 보라고. 블루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세상에서 가장 슬퍼보이는 인간 아닌가.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방금 한 말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만큼의 상호 이해와 상호 합일의 순간이 이리도 슬프고 적대적이고 기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삶의 우연성'과 '이해불가능성'이 드리운 그림자가 이리도 무겁고 묵직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우연적'이거나 '무의미해 보이는' 상황을 본능적으로 견디기 힘들어하는 인간의 본성은 그 '우연성'과 '무의미성'을 이겨내기 위해 계속 앞으로든 뒤로든 나아갑니다. 그게 3번 주제인 집착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게시판에서 본 폴 오스터의 인터뷰에서의 작가의 말이 이 소설을 제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이성적인 사고가 발동해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데, 그 낯설고 기이한 일들이 만약 매일 매일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처럼 "실재"하는 일이라면 어쩌겠는가 하는 겁니다."
결국 1번 삶의 우연성을 2번의 타인에 대한 관찰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게 되면, 3번의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는 것.
이러한 인식을 자기 나름의 형식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본 게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밀어붙여 본다는 식의 얘기를 <12월10일>의 저자인 손더스도 어디선가 인터뷰에서 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재미있어 한다면 그 말도 안되는 소리를 어느 정도 참아 낼까? 그 대답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다 참아 낸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까지도 그 책을 읽는다는 게 그 증거지요. 그 책은 지금도 여전히 아주 재미있어요.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 재미가 - 누구나가 책에서 얻어내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폴 오스터는 참 대단한 작가입니다.
삶에 대한 자신만의 인식, 그 인식된 여러 삶의 이야기들에서 일반화된 '우연성'이라는 특징.
그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설정으로서의 '타인에 대한 관찰'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유도되는 집착이라는 인간의 성격적 특성.
심지어 그 길이 '파멸'과 '얽매임'이란 것을 알면서도 쉽게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이런 것들을 참으로 현란하게, 살짝 기괴하게, 하지만 실감나게 그려낸 것 같습니다.
(*여기서 후기를 마치면 딱 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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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폴 오스터는 여전히 제 스타일은 아닌 것으로...ㅎㅎ
왜냐하면 저는 저 1번과 3번에 대해서 작가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의 생각이라서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세계관의 차이입니다.
(개인적인 부분의 얘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니 감안해서 봐주시길... 즉 종교적인 부분입니다.)
위에 인용한 작가의 말을 다시 쓰자면,
"누가 뭐래도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이 부분이 드러내는 작가의 세계관 뒤에는 참으로 복잡 다양한 세계관의 역사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귀동냥으로 파악한 현대 서구 문명에서의 세계관의 흐름, 그에 따른 인간관의 흐름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시대에 공인된 기독교적 세계관이 가톨릭 교회의 타락으로 위기를 맞고 이를 개혁하려는 종교 혁명으로 갱신되는 것 같다가 종교 전쟁의 잔인한 모습으로 사실상 힘을 상실하기 시작한 뒤에, 근대 유럽에서의 과학과 이성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난 것은 신의 존재를 배제한 과학적, 이성적 세계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은 19세기에 이미 그 한계를 보이다가 결국 20세기에 일이차대전의 충격으로 인해 그 힘을 상실하고 맙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게 명확해졌으니까요.
종교던 이성이던, 뭔가 거대한 흐름 안에서 같이 흘러가는 것으로서 삶을 보던 시대는 지나가 버린 거죠.
삶에 목적이 있다는 믿음이 부정되고, 삶의 우연성, 그로 인한 부조리함이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저런 흐름의 소산들은 인간 지성의 놀라운 결실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역시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제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더군요.
근본적인 차이는 결국 신 또는 초월적 존재를 배제하느냐 인정하는냐 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서 이해할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 다음, 그 너머의 일들에 대해 '우연'이라고 칭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이성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기독교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종교에서라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너머에 대해서는 '내가 모를 뿐, 뭔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게 기독교적인 판단이며, 이런 부분은 다른 대부분의 종교들도 공유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근본적인 인식의 틀로 삼고 있는 저로서는 폴 오스터가 이 뉴욕3부작을 통해 얘기하려는 바가 간접적인 차원에서는 (즉 초월적 존재가 배제된 인식이 삶의 준거가 될 때 어떤 상황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리마인드) 도움이 되었지만, 직접적인 차원에서는 사실 큰 관심이 없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냥... 제 스스로... 뭔가에 대한 집착도 잘 없고.... 내가 뭘 모른다고 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지도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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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폴 오스터란 작가는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제가 위에서 풀어낸 구조는 그냥 이 작가의 이 풍성하면서 의미가 중층적인 소설을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그냥 저의 생각이 한번 따라가 본 구조일 뿐입니다. 이 소설은 그 이상의 의미들이 담겨 있기에 그런 간단한 구조는 이 소설 안에 포함된 많은 요소들의 극히 일부분을 드러낼 뿐이라 생각됩니다.
읽고나서 머릿 속에서 오만 생각이 떠돌아다녀서.. 정신없게 만듭디다...
"하지만 이 친구가 글을 쓸 줄 안다는 거, 그거 하나는 분명해, 내가 그 책을 읽은지 벌써 두 주가 더 지났는데, 그뒤로 내내 그 책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으니까. 계속해서 그 생각이 다시 떠오르는 거야, 그것도 언제나 전혀 그럴 법하지 않은 순간에.
.... 거기엔 뭔가 강력한 것이 있는데, 정말로 이상한 것은 내가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있다는 거야."
이리 될까봐... 거품은 거품으로 덮는다고... 다른 책으로 빨랑 넘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