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의 책은 처음 읽어봅니다.















이 책은 원서인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을 읽었습니다. 영어 때문에라도 꾸준히 원서를 읽으려 하는데, 원서를 읽으면 여러가지로 힘들기 때문에 게으른 마음에서 늘 선택을 주저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원서로 선택한 이유는...


1. 빌 브라이슨이 필력이 좋다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셔서, 그 영어문장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2. 우리말 책보다 킨들 원서가 더 쌌습니다. 

3. 오더블이 있었습니다. 오더블로 들으면서 같이 읽으면 집중이 더 잘됩니다.


그렇게 11월 15일에 읽기 시작했는데, 14일이 걸려서 11월 29일에 완료했습니다.

물론 이 책만 읽은 건 아니고, 그 사이에 <배려>라는 책과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등도 읽고, 또 다른 영어 원서를 100페이지 정도 진도를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 은근히 지루해서 자꾸 다른 책에 손이 가더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저는 좀 지루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고, 필력이 있다는데, 왜 저는 지루하게 느꼈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를 한 문장으로 쓰자면,


이 책은 (알게 모르게) 기자 또는 기자 출신 작가가 쓴 티가 강합니다.


예전에는 이 점을 잘 인식하지 못했는데, 올해 들어 묘하게 공통점들이 느껴지더군요.


올해 읽은 책들 중에 다음과 같은 책들이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대부분 필력들은 출중합니다. 특히 1, 4, 5번의 필력은 훌륭합니다.


1. 소셜 애니멀 - 데이비드 브룩스

2.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니콜라스 카

3. 생각은 죽지 않는다 - 클라이브 톰슨

4. 로봇 시대, 인간의 일 - 구본권

5. 회사의 언어 - 김남인
































이 책들 중에 저는 4번과 1번은 올해 읽은 그 분야의 책 중에서 거의 1순위로 좋은 책이라고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부터 얘기하고자 하는 다른 책들의 단점일 수 있는 특징을 가지지만, 단점을 거의 보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번은 챕터 하나하나는 재미있는데, 결론이나 마무리 없이 갑작스럽게 책이 끝나버려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런 건 편집자가 잡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2번과 3번은 중요한 얘기들을 제시하지만, 제시하면서 "이러니까 큰 일이야" 또는 "이러니까 괜챦아" 라는 정도로 끝납니다. 그런 얘기라면 각각의 책들의 절반 분량이어도 충분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책들에 특징적이면서 단점이 되는 것을 무순위로 생각나는대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해당 사항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검은 색은 다른 책들에서 느껴진 단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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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전체 적으로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룹니다.

  . 전체적으로 분량의 2/3만 되었어도 참 좋고 임팩트가 더 있었을 것 같습니다.

  . '많다'라는 주관적인 느낌이 나오게 되는 것은 각각의 주제의 상호 연관성이 떨어지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 이 책은 우주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지질학, 대기학, 고생물학, 생물학. 인류학 등 많은 주제를 얕게 다룹니다. 많으니 얕을 수 있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 과학책이니 얕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 책을 보다 세분화 해서 물리학, 생물학, 인류학 등으로 나눠서 썼으면 각각에 대해서 통일해서 썼으면 어떨까 하는 느낌입니다. 


2. 1.번과 연결되면서 하나하나의 주제는 나열식이 되고 맙니다. 깊게 파고들어가는 맛이 없습니다. 

  . 하나의 주제에 해당된 분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그렇겠지 싶습니다.

  . 그 얘기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중에서 궁금하게 있다면, 다른 책을 찾아보는게 낫다는 것이지요.

  . 즉 이 책은 한 번 읽은 다음에 다시 읽을 필요는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 저는 양자역학 쪽이 전공이라서 그 쪽 부분을 어떻게 풀어서 설명했는지 좀 기대를 하고 봤는데,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얘기를 하려면 참 많은 얘기들을 할 수 있을 텐데, 전혀 없었습니다. 도리어 양자 역학을 얘기하다가 소립자 물리학으로 빠져버리더군요. 더 어렵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의미도 거의 없는 분야인데 말이지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인 생물학에서도 그런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이 생기니 더욱 지루하더군요.


  2페이지 서문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우주가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주 오랫동안 우주는 없었다"


 저는 이 말이 살짝 궤변이라는 느낌입니다. 마치 빅뱅 이전에는 우주가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빅뱅 이전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이라는 말이 성립할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나중에 본문에서는 제대로 설명을 하는 것 같던데, 서문에서는 왜 저리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기자 출신이다 보니 물리학의 기본적 부분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신의 마음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470페이지가 넘는 책을 시작하는 2번째 페이지에서 말입니다. 



3. 각 챕터별로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갈 때, 제시하는 근거가 때로는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 여기저기서 인용을 하는데, 가끔 아니다 싶은 인용도 있습니다.

  . 인용을 제대로 하는지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자기 의견에 맞는 실험결과라고 갖다 붙이는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 이 책은 과학사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역사지요. 저자는 대부분의 경우에 매우 성실하게 여러 등장인물의 연관 관계, 뒷 이야기 들도 조사해서 배치해 놓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은 인정합니다 때로는 여러 저널의 주요 논문을 인용해서 그 분야의 학문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상하다 싶은 출처를 당당하게 근거로 내세웁니다. 몇번이나 저자는 Economist의 기사를 인용합니다. 저자가 기자 출신이어서 인정을 하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Economist를 인용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라면 Economist를 인용하겠지요. Economist를 인용하더라도, 어떤 아티클의 어떤 저자가 얘기했다는 것을 본문에서 인용하는게 맞습니다. 그 아티클의 저자를 먼저 언급하면서 인용해야 하는데, Economist만 인용하는 것은 저로 하여금 더 큰 불신에 빠지게 합니다. 저자 명과 아티클 제목이 주석으로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본문에 인용할 때는 그 저자를 먼저 인용해야 하는데, 안 그러고 있으니.. 참...


  . 그리고 후반부로 갈 수록 인터뷰가 많아집니다. 구두 인터뷰 내용을 따옴표 치고 바로 인용하는데, 이 역시 저로서는 믿음이 가지 않는 인용입니다. 제 자신 누가 와서 구두로 인터뷰하다 보면, 제 전문분야라도 틀리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해서 주관적인 인상이 언제라도 객관적인 데이타와 논리를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할 때에는 아무래도 글로 쓸 때보다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되고 책임도 무겁게 느끼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4.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가지는 책이 주는 기승전결의 구성이 전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 저자가 제시한 주제가 좀 빈약하거나, 주제는 괜챦은데, 책의 구성 요소들이 그 주제를 제대로 지지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 마지막 챕터에서의 책의 결론은 저자 자신도 힘이 빠져 있습니다.

 

  .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몇개 문단은 주제라고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마무리 멘트로 느껴집니다. 저자는 We enjoy not only the privilege of existence but also the singular ability to appreciate it and even, in a multitude of ways to make it better. 라는 말을 하는데, 이 문장의 make better라는 부분은 사실 앞의 책 내용에 거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보여주지 않고 막연한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식의 마무리는 과학을 다루는 책, 역사를 다루는 책에 맞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신문 칼럼이나 에세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면 제목을 Essay on a short history on nearly everything 이라고 하는게 맞겠지요. 제목이야 어쨌든 저자는 이 책을 그냥 즐거운 이야기책으로 구성하려 한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했나 봅니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라면 입문서 정도로 읽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 두번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기자 출신 작가분이 쓴 책은 신중하게 골라야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저하고는 잘 안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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