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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12월 10일 : TENTH OF DECEMBER
조지 손더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2015.07.14>
스포는 최대한 줄이려 했지만, 작은 힌트 조차 스포가 되기도 하더군요. 순서를 7,8,9 가 아니고 제 글이 짧은 순서로 9,8,7로 재배열 했습니다.
9. 나의 기사도적인 대실패
이건 그냥 웃고 넘어갔습니다. 무슨 깊은 의미가 더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8. 집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과는 좀 다른 면이, 어디에선가 항상 전쟁, 전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뒤에도 수많은 전쟁/전투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War Veteran이라고도 하는 실전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이 많습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이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우대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그들도 매우 잘 훈련되어 있고 규율이 있습니다.
(미국의 몰래카메라 같은데서 나온 장면인데, 어떤 가게에서 주인이 아랍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물건 판매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욕을 하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이 사람들 같은 나라 사람들 때문에 이 나라가 힘들다. 그런 난감한 말들을 모욕적으로 합니다. 그 대목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 아랍인을 왕따하거나 이러는게 아니라, 물건 파는 주인을 비난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직 군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가장 적극적으로 그 아랍인 편을 들었습니다.
'내가 중동에서 싸우는 적은 적이고, 지금 여기 이 사람은 미국 땅에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는 우리 헌법이 규정한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뭐 이런 말을 하면서 아랍인 편을 들었습니다. 워낙 감탄스러웠고 멋졌으니, 바다 건너 저한테까지 알려졌겠지요.)
그런 배경에서 8번 단편 집을 보는데, 이런 참전 군인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네요. 맏아들인 주인공이 집을 비운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직도 진행형으로 발생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닥쳐오는 일들이 자신의 통제 밖에서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게 닥쳐왔을때 그가 보이는 반응이 안타깝습니다. 뭔가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막판에 나오는데, 저자는 참전 군인들이 귀향후 겪을 수 있는 어려운 현실을 짚어 보려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만 우대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얘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조금 먼 얘기로 다가오기는 합니다.
7. 셈플리카 걸 다이어리
세 명의 아이들과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배려하는, 평범한 중산층 가장의 이야기로 받아들여 집니다. 그런데 그 주위 이웃은 장난이 아니더군요. 초반에 나오는 생일파티 장면의 집은 미국의 0.1% 수준이더군요. 대저택이 줄지어 있다는 동부 해안 지역이 아닌가 싶네요. 라파예트가 들렀던 집이라 하는데, 미국 독립전쟁 시절 프랑스 지원군의 라파예트를 의미하는 건지... 세상에.
그러다보니, 사춘키의 큰 딸이 그런 부자 친구들 사이에서 당장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는 어떻게 느낄지 이 아빠는 노심초사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매우 럭셔리한 생일파티를 열 수 있게 됩니다만, 불운 하게도 그런 어쩌다 한 번의 럭셔리함이 이 가족의 발목을 잡습니다.
아빠는 독백을 합니다. '아내와 그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력했는데 결국 이런 꼴이라니' 라며 한탄을 합니다.
정말 왜 그렇게 된 걸까요.
앞으로 열심히 조심해서 살면, 이런 불운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까요? 그럴까요?
이 아래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 단편에 대해서 작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쓴 것일까를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제 자신의 생각은 여러가지로 투영은 될 수 있었는데, 작가의 의도는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완독 후에 뒤의 해설을 읽는데, 작가는 아니고, 작가를 인터뷰한 사람이 한 말 중에 제 생각과 많이 오버랩되는 말이 있더군요.
'우리 시대'를 (중략) '일부 사람들이 자식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자신과 가족의 자존심을 높여줄 몇 가지 물건들을 사기 위하여 절실하게 일자리를 찾고 있는 시대'로 (중략) 정의한다면 조지 손더스는 진정 우리 시대를 위한 작가이다.
이 문장이 이 단편 '셈플리카 걸 다이어리'의 등장인물들에게 작가가 가지는 문제의식이 이 인터뷰어의 의식과 공감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조금 다른 애기인데, 현대 경영학계의 구루 중의 한명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성공 기업의 딜레마 (또는 혁신기업의 딜레마'라는 책에서 제시한 'Disruptive Innovation' 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Innovation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disruptive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sustaining 한 것이라 합니다. 어떤 기업이 Sustaining Innovation만 가지고 열심히 연구개발하고 노력을 해봐야 그 시장에 Disruptive 한 기술이 들어오면, 그 열심과 노력이 더 기업의 실패를 확고히 한다는 사례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많은 것을 바꿔야 합니다. 기술과 시장을 보는 프레임, 또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PC의 시대가 도래할 때 수동 기계식 타자기를 더 열심히 만들었던 회사도 있습니다. 애플에 밀려 사라지다시피 한 노키아나 블랙베리도 이 경우로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게 참 어렵습니다. 내가 뭔가 열심히 하면 할 수록 상황은 더 어려워지는 것. 그 열심이 도리어 상황을 빨리 악화시키는 것. 전 이 단편에 나오는 가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열심히 노력 할 수록 더 어렵게 되는 상황 아닌가. 이 가족은 뭔가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가.
평생 죽어라 노력해도, 미국 0.1% 수준의 부를 소유한 집안을 이 가족이 쫓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 가족하고 비교하면서 스스로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뭔가 더 새로운 것을 구매해서 소유해야 한다면, 언젠가는 또 꺼꾸러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단편의 끝에 나오는 사건만 아니었으면 큰 딸의 생일파티는 잘 땜빵했겠지요. 하지만, 그 동생들도 사춘기가 곧 찾아올 것이고, 생일파트는 매년 한 번씩 합니다. 이런 식이면 나중에는 프롬 (고등학교 졸업 축하 무도회) 까지도 지속되겠지요.
이게 적절하고 올바른 접근 방법일까요. 아빠로서 딸의 그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잘 다독이려 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무척이나 안쓰럽고, 공감이 많이 되기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그다지 지속 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것. 전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준비하면서도 뭐가 문제가 될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더군요.
셈플리카 걸에 대한 그의 사고 방식은 그가 가지고 있는 그런 한계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그는 지극히 당연하게 셈플리카 걸의 존재를 합리화합니다. 그것이 그들을 위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 단편 속의 세계는 그런 억압구조를 지극히 당연하게 합리화 하고 있고, 이런 억압구조에 대한 표현으로서 셈플리카 걸, 그 낯설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현실 속의 비슷한 억압구조가 혹시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 가족의 한계는 이 단편의 세계에서의 시대적, 사회적인 통념을 그와 그의 아내가 그대로 받아들이며 쫓아가려 하는 것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지배적인 통념 안에서 그것이 부추기는 대로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그런 통념에 대한 추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 높은 자존심은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질 뿐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외적인 것에서 행복과 자존감의 근원을 찾게 될 때, 이는 결국 그 외적인 것의 노예로 스스로를 종속시키게 되는 결과가 되고, 도리어 불행의 시작이 되게 됩니다. 이를 지극히 처절하게 그려낸게 반지의 제왕의 골룸의 모습이지요.
자유는 그러한 욕구에 대해서 No라고 말할때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여러 책에서 나오는 얘기지만서도 심지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장인의 강한 의견은 지극히 적절합니다. 그가 단지 인색해서 도와주지 않으려 한건지 어떤지 모르지만, 도와줘 봤자 끝도 없이 반복될 것이기에 어느 시점에서는 끊어주는게 사실 미덕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저 가족은 어떤 길을 가야만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시각, 작가의 주관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그렇게 열어 두고 싶은 것 같습니다. 저도 거기까지 주워 섬기기에는 무리스러워서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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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플리카 걸 관련 아티클들
Semplica girl에 대해 결국 소설 중간에 나옴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구글 검색을 했더니
Saunders 의 이 단편이 검색이 되더군요.
이건 어떤 다른 작가의 요약 및 평입니다.
이건 NPR의 기사인 것 같구요.
이건 New Yorker에 실렸던 본 소설의 거의 전문인 것 같습니다.
이건 이 단편 Semplica Girs에 대한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습니다.
Section 명이 page turner 인가 봅니다~
아래 두개는 영문 비평 인 것 같습니다. 읽기 쉽지 않네요.
미국에서도 화제의 소설이었나 봅니다.
이 단편집 뿐만 아니라 이 Semplica Girl 이란 것 자체가.